정부와 산업계에서 원격진료 허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9일 오후 3시, 협회 3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격진료 허용에 강력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발전된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환자의 건강과 진료에 도움을 주는 것은 환영한다”며 “그러나 원격진료 허용은 의료전달체계 및 1차의료기관 존립기반 붕괴, 의료접근성 악화, 의료시장 혼란 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와 산업계가 국민에게 원격의료시장의 크기를 부풀려 알리고 있다”며 “원격의료 산업의 경우 포커스가 의료기기에 맞춰져 있어 경제부흥 및 국민편익증진에 기여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전망했다.
이어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가속화된다”며 “이 때문에 중증질환 진료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할 대형병원이 외래진료에 매달리고 있는 기형적 구조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협회는 정부나 일부 정치인들이 원격진료를 주장하면서 ‘의료접근성의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안맞다고 지적했다. 협회 관계자는 “국내의 의료접근성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이는 동네마다 촘촘히 들어선 개인의원 덕분”이라며 “원격진료를 허용하면 지리적 접근성을 바탕으로 생존해 온 동네의원들은 붕괴될 것이며 이로 인해 의료접근성은 오히려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관련 법규의 부재도 반대 이유로 꼽았다. 노 회장은 “원격진료로 인한 ‘오진’은 누가 책임지며, 원격처방과 원격조제 문제는 또 어떻게 다룰 것이냐”고 반문하면서 “관련 법규가 없는 상황에서 원격진료 허용은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협회는 제한적 허용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 회장은 “의원급 의료기관에만 원격진료를 허용한다 해도 제도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없기 때문에 결국 대형병원 중심의 원격진료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며 “의료격오지 등 접근성이 떨어진 지역에 한정해 허용하는 것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을 의학분야에 적용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가 많았다”며 “그 이유는 사람의 건강상태를 수치적으로 환산하여 측정할 수 있다는 ‘환상’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치적으로 환산할 수 있는 사람의 건강상태는 체온·혈압·혈당·맥박·동맥혈산소포화도·심전도 정도에 불과한데 IT기술을 이용해 다른 건강상태를 측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 회장은 “정부와 산업계는 섣부른 원격진료 실험이 5000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의료체계의 기반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법개정을 강행한다면 의료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한 의사들의 매우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