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의미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높은 수행의 경지를 의미한다.그러나 대다수 보통사람들은 제 아무리 의지를 갖고 인생을 경영하려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인간은 생물이기 때문에 두려움 기쁨 우울함 등을 통제하지 못한다.본의 아니게 신경계의 지배를 받아서다.
마음은 물질에서 발현한다
신경계는 신경세포,신경전달물질,세포간 전기이동 등에 의해 작동된다. 마음은 심장이 아닌 뇌(중추신경계)에 있다.1662년 영국의 신경해부학자 토머스 윌리스가 이런 주장을 펴기까지 인간의 영혼은 다들 심장에 있다고 믿었다. 신경계 작동의 3요소 중 인간의 심리를 좌우하고 질병상태를 초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다. 이 물질은 시냅스(synapse:신경세포간 연접틈새)에서 시냅스후(後) 수용체와 결합함으로써 신경신호를 전달한다.수용체가 자물쇠라면 신경전달물질은 열쇠로 화학구조에 따라 특정 수용체에만 결합한다
신경전달물질은 기분 통증 혈압 소화기능 등 인체의 거의 모든 영역을 콘트롤한다.여러 신경전달물질이 시의적절하게,다른 신경전달물질과 조화를 이루면 마음 뿐 아니라 몸도 건강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각종 심신질환으로 고생하게 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 약도 개발한다.특정 수용체에 특정 신경전달물질이 결합하는 것을 촉진하거나 반대로 방해함에 따라 다양한 약리작용이 나타나고 이를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함으로써 신약이 탄생하는 것이다.
신경계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뇌는 신경세포의 집합체로 신경원(neuron)이 기본구조다.중심구조라 할 세포체(cell body),세포물질(soma),신경돌기로 나뉜다.신경돌기에는 전화선에 해당하는 축삭(axon)과 수신안테나라 할 수 있는 수상돌기(dendrite)가 있다.축삭은 몸의 아주 먼 곳까지 이르기 때문에 1·이상이 되지만 수상돌기는 2㎜이상인 경우가 거의 없으며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진다.
인체를 지배하는 신경세포물질은 세포핵과 인접한 소포체(ribosome)에서 합성된다. 핵에 담겨진 DNA정보는 전사과정에 의해 mRNA로 복사된다.소포체에서는 mRNA 정보를 바탕으로 염기서열을 읽어 아미노산의 종류를 결정하고 20여종 아미노산의 다양한 조합으로 베를 짜듯 무수한 단백질을 합성한다. 이 중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의 대다수가 신경전달물질이다.
신경전달물질은 화학구조의 속성에 따라 크게 아미노산(염기성 아미노기와 산성 카르복시기를 같이 가진 화합물),아민(암모니아의 수소 원자를 알킬기 등 탄화수소기로 치환한 유기화합물),펩타이드(두 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물질)로 나뉜다.
흥분과 억제의 하모니
아미노산류로 가장 대표적인 GABA(gamma-aminobutyric acid)와 글라이신(glycine)은 억제성 신호물질이다.GABA는 미상핵 담창구 흑체 대뇌피질 변연계에서 작용한다. GABA 시스템이 활성화되면 불안과 경련,간질이 억제된다.대부분의 신경안정제와 간질약이 GABA계를 활성화하는 약이다.
GABA의 결핍은 헌팅턴 무도병을 유발한다.헌팅턴병은 안면경련,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떨림(진전),발 뒤틀림을 주된 증상으로 하는데 죽은 사람의 뇌 무게를 재보면 15~20% 감소돼 있다고 한다. 이런 감소분의 상당 부분은 GABA를 신경전달물질로 삼는 뉴런들의 손상이다. 아울러 글라이신이 증가하면 우울증,운동실조(運動失調)가 심해지고 중추신경계 및 소화기계에 장애가 일어날 수 있다.
글루타메이트(glutamate)는 아스파테이트(aspartate),호모시스테인(homocystein)과 더불어 흥분성 아미노산 신경전달물질이다.중추신경계에서 흥분성 신경독소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최근 정신분열증이 늘어나는 것도 이 물질의 섭취증가가 아닐까 추정된다.
화학조미료인 MSG(mono sodium glutamate)는 나트륨과 글루타메이트의 합성물질이다.글루타메이트는 다량 섭취하면 뇌에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뇌신경세포가 죽거나 손상된다. 어린 동물의 뇌일수록 글루타메이트에 대한 감수성이 높다.중국음식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은 화학조미료를 듬뿍 넣고 조리한 중국음식을 먹고 나면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불편하며 목,등,어깨,얼굴에 압박감이나 통증,저림을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1~2시간 후면 회복되지만 일상화되면 몸에 결코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아민류는 카테골계인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노르아드레날린과 동일)과 도파민(dopamine),인돌계인 세로토닌(serotonine)과 히스타민(histamine),아세틸콜린(acetylcholine) 등이 있다.
부신수질에서 생성돼 교감신경에서 작용하는 노르에피네프린은 외부의 스트레스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혈관수축,혈압상승 등의 흥분을 일으키는 호르몬이자 신경전달물질이다.적대적인 자극에 대응하는 호르몬으로 생존에 필요하지만 불안과 각성을 수반하므로 평시에도 많이 분비된다면 심신건강에 좋을 리 없다.
중뇌 흑질 선조체에서 만들어지는 도파민은 보행 등 운동조절,감정·동기 부여,욕망과 쾌락,인식과 학습 등에 영향을 미친다.도파민의 분비가 과다하거나 활발하면 조울증이나 정신분열증을 일으키며,반대로 줄어들면 우울증이 유발된다.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가 손상돼 일어나는 운동장애가 파킨슨병이다.
도파민은 ‘사랑과 창조의 호르몬’이다.연애에 빠지거나 멋진 감동이나 지적인 희열에 잠기는 것은 도파민 덕분이다.식욕·성욕· 예술가적 기질을 자극하는 가장 강력한 생체친화적 각성제라고도 할 수 있다.만약 도파민이 줄어들어 세로토닌이 우위인 상태가 되면 불행감이 커지게 된다.
세로토닌은 마음 정리하는 교통경찰관
세로토닌은 일명 ‘조정의 호르몬’으로 불린다.기분이 지나치게 들뜨거나 가라앉는 것을 조절하여 차분하게,평상심으로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충동을 제어토록 한다.따라서 세로토닌 분비량이 모자라거나 신경수용체에서 빨리 소실되면 우울증,불안,스트레스성 폭식,충동장애,강박증,알코올·도박·게임중독,공황장애,생리전증후군 등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 된다.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에 빠지게 돼 ‘행복호르몬’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적절한 표현인지는 재고해봐야 한다.
소화기능은 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창자의 수축연동을 관장하는 세로토닌 결핍은 원인 모를 기능성소화불량이나 과민성장증후군을 야기하게 된다.세로토닌의 90%는 위장관에,나머지 10%는 뇌에 담겨져 있다.자살,충동적 폭력,성범죄를 시도한 사람은 뇌내 세로토닌 농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돼 있다.세로토닌이 낮으면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공부도 못한다.
밤에는 세로토닌 스위치가 꺼지고 멜라토닌 호르몬이 증가해야 하는데 이런 작동이 고장되면 수면장애도 나타난다.멜라토닌은 수면과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물질로 어두워지는 밤에는 몸속에서 분비량이 늘어나 잠을 유도하고,낮에는 그 양이 줄면서 각성상태를 유지하게 한다. 아울러 편두통이나 군발성 두통은 혈관수축을 담당하는 세로토닌 수용체의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이 오래전에 밝혀졌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요즘 가장 많이 처방되는 우울증 치료제는 세로토닌의 고갈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들이다.기능성소화불량 치료제는 위장관에서 세로토닌의 특정 수용체에 작용해 위장관운동을 촉진시키는 기능을 한다.세로토닌을 높이는 방법은 단백질 식품과 비타민B군을 충분히 섭취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명상과 스트레칭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다.
엔도르핀은 스트레스 상태에서 통증을 완화시킨다.길을 가다 갑자기 불한당에 주먹으로 한대 맞았을 때 통증을 채 느끼기도 전에 맞주먹을 날릴 수 있는 것은 순간적으로 분비되는 엔도르핀의 강력한 진통성 마약효과 때문이다.마라톤이나 장거리 달리기에서 사점(dead point)을 넘어서면 달리는 쾌감을 느끼는 것(Runner’s High)도 엔도르핀이 분비되는 덕분이다.
노화에 신경전달물질이 한몫
자율신경은 크게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나뉜다.교감신경이 아드레날린을 분비해 흥분과 긴장상태를 유지한다면 부교감신경은 아세틸콜린을 분비해 그 반대인 안정과 이완을 조성한다. 무방시 상태로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을 때 몸에서 생기는 변화가 교감신경의 영향이라면 석양이 지는 9월 저녁 호숫가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식사하는 정경은 부교감신경 영향이 극대화된 상태라 할 것이다. 이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세틸콜린은 혈압강하,심장박동 억제,호흡수 감소,소화관운동 촉진,근육수축 등의 생리작용을 나타낸다.
아세틸콜린은 기억의 등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알츠하이머병(치매)는 신경원내 미세소관의 형태를 지탱해주는 타우 단백질이 깨지면서 세포체에 축적돼 엉키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부추기는 게 환자의 뇌에 축적되는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이다.알츠하이머병의 결과로 거의 대부분 아세틸콜린이 부족해지게 되며 인지장애가 심해진다. 현재 쓰이는 대부분의 치매치료제는 아세틸콜린의 고갈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치료에는 역부족인 형편이다.한편 파킨슨병이 대뇌 중 아세틸콜린에 대한 도파민의 상대적 부족으로 일어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처럼 우리의 인체는 신경전달물질들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의해 작동하고 특정 물질이 튀는 행동을 하거나 연주를 중단하는 순간 질병이란 적신호가 켜지게 돼 있다.인체나 노화되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도 감소한다.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평균 농도는 10년마다 각각 5%씩 감소하며 이는 인지기능과 수면기능,우울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마음씀씀이가 신경전달물질의 장난이기도 하지만 꾸준한 건강관리와 긍정·절제로 신경전달물질의 작용이 건강에 유리하게 발휘될 수 있도록 조정할 수도 있으므로 일체유심조가 꼭 달성하기 힘든 목표만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