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효율성, 합리성 등에 대한 의심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각 대학에서 위촉한 입학사정관이 수능시험 점수나 내신성적도 아닌 인성과 재능, 발전 잠재성, 수학능력 등만을 평가해 그것도 대개는 서류전형과 단 한번의 면접을 통해 뽑는다고 하니 입학사정관이 신이나 점쟁이, 엄청난 도덕가가 아니고서야 이를 믿을 수가 없다.
2010년 9월 한 교육업체 대표는 트위터에 “아내가 연세대 입학사정관”이라며 지인에게 자제의 대입 합격을 도와주겠다는 뉘앙스의 특혜를 약속하는 듯한 글을 남겨 파문이 일으켰다. 당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 고위층 자녀의 잇단 공무원 채용 비리에 이어 대입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불거지자 “이게 이명박 정부가 말한 공정한 사회냐”는 격앙된 반응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입학사정관제는 올해 더 활성화됐다. 2013학년도 입학사정관전형은 123개 대학에서 4만3138명을 선발한다. 지난해(4만2163명)에 비해 소폭 늘어나 정원의 11.5%를 선발한다. 언론이 좋게 말하는 이른바 ‘입학사정관제 선도대학’들을 기준으로 하면 정원의 24%를 입학사정관전형으로 선발한다고 한다. 서울대는 80%, 서울교대와 카이스트, 포스텍, 울산과학기술대 등은 거의 100%를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다.
입학사정관전형도 정시모집을 줄이고 수시모집 인원을 늘리고 있다. 수시모집으로는 4만1734명을 뽑아 지난해(3만2851명)에 비해 8883명을 더 뽑는다. 반면 정시모집으로는 2226명을 뽑아 지난해(9312명)에 비해 7086명이 줄어들었다. 대학 인재상에 맞는 학생을 선점하고 지원자 풀을 넓히기 위해서란다.
입학사정관제와 관련, 최근 대전 지적장애인 집단성폭행에 가담한 학생의 내역을 담임교사가 입학사정관 서류에 적지 않고 은폐했다가 나중에 발각돼 이 학생이 입학했던 성균관대에서 입학 취소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초 성적 위주 대신 발전가능성을 보고 학생을 뽑겠다는 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더욱이 입학사정관제 서류를 부모는 물론 전문 글쟁이가 대리 작성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지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면 합격을 취소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지만 그게 말 한마디로 쉽게 사라질 일인가. 여기에 교육과학기술부는 제출서류를 간소화할 것, 학업성적 평가는 최소화할 것 등 입학사정관 전형에 감놔라 배놔라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대입전형은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별정직 공무원 선발에서 기관장의 입김이 닿는 현대판 음서제(蔭敍制)와 다를 게 없다고 필자는 본다. 음서제가 무엇인가. 고려·조선 시대에 부친이나 조부가 관직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웠을 경우 그 자손을 과거에 의하지 않고 특별 임용하는 제도다.
왜 입학사정관제가 음서제와 다를 바 없느냐 하면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사회적 배경이 든든할 경우 2010년 교육업체 대표의 트위도 파동에서 보듯 입학사정관이 될 만한 사람을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더 합격점에 가까운 입학사정관 전형 서류를 작성해 제출할 것이며, 이것이 서류심사나 면접에서 유리하게 작용해 낙점(합격)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교육업체 관계자들은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이른바 ‘스펙쌓기 경쟁’이라고 부른다. 그 ‘스펙’을 쌓기 위해선 부모의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형에서 요구하는 자녀의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특수학원이나 고액 특별과외를 보내야 하고, 입학사정관 서류 대필 글쟁이에게 돈을 갖다 받쳐야 하며, 공동체의식·봉사정신·책임감·리더십이 출중한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하기 위해 외국 또는 가난하고 소외된 곳에 일부러라도 리더십교육이나 봉사여행을 보내야 한다.
물론 교육 당국자들과 대학들은 이를 부인한다. 이들은 “실제 소질과 능력 없이 스펙만 쌓아서는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과할 수 없다. 심층면접 등을 통해 스펙만 쌓은 학생들과 실제 잠재력이 있는 학생들을 구분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막말로 주소지가 서울 강남 주소지에 특목고 출신이면 전형에 어떻게 유리하게 작용할 지 누가 판단하고 걸러내겠는가. 오로지 입학사정관과 학부모, 시험관리자인 대학만 믿으라는 말인가. 더욱이 대학이 인생의 8할을 좌우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엉망으로 입시관리가 이뤄져서야 되겠는가.
입학사정관제를 미화하는 사람들은 획일적 잣대로는 측정해낼 수 없었던 숨은 자질, 특별한 소질을 가진 학생들이 이 제도를 통해 입학한 뒤 학업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는 몇가지 성공스토리를 ‘신화’처럼 내세운다. 하지만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학생들과 학부모가 이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려면 이 제도의 개선으로는 부족하고 아예 폐지돼야 한다.
입학사정관으로 선임됐다는 소식이 퍼지면 당사자에게 엄청난 청탁전화가 걸려 온다고 한다. 게다가 입학사정관제를 처음 정착시킨 미국의 경우 선의를 가진 선진적인 제도로 출발한 게 아니고 유대인 학생들의 명문대 입학 러시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의 백인 주류세력들이 만든 ‘개구멍식(우회로)’ 입학전형으로 고안됐다고 하니 의도를 알면 알수록 그 순수성에 더욱 의심이 간다.
필자는 2000년대 이후 외환위기로 경제양극화가 심해지고 강남에 고액 과외나 고액 대입학원이 성행하면서 지방이나 서울 변두리 고교생의 명문대 입시가 어려워진 것을 볼 때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재력을 바탕으로 자녀를 보다 쉽게, 편법적으로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입학사정관제를 찬성했거나 도입을 옹호 또는 묵인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말은 어느 행사나 모임에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이 모여 성황을 이뤘다는 좋은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원전은 입추지지(入錐之地)로서 중국 사기(史記)에 따르면 벼슬에 오르지 못하거나 한직인 사람이 송곳 하나 꽂을 만한 땅도 나라로부터 받지 못해 빈한함을 한탄하는 말로 쓰였다. 좋은 대학에 못가면 입추지지를 한탄하는 신세가 되는 게 우리나라다.
입학사정관제는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한 타락하기 쉬운 제도인데도 왜 우리나라 언론은 비판을 삼가는가. 언론 종사자들도 자녀가 그 덕을 보길 은근히 바라는가. 이에 앞서 왜 학생과 학부모, 전교조나 교총은 침묵으로 일관하는가. 민란이라도 나야 할판에 조용한 게 참으로 이상하다. 당장 폐지를 부르짖어 없애야 할 게 입학사정관제다.
교육당국은 당장 변별력이 잃은 ‘물수능’을 원래대로 학력평가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복잡한 대입제도를 단순화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런 저런 전형 형태에 적응하느라 지식의 절대량이 부족해지고, 교우관계와 수면·운동에 써야 할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식의 절대량이 부족한데 무슨 응용이 되고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가. 최선이 못된다면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입 본고사를 부활하든지, 아니면 과거 학력고사 위주의 평가에 몇가지 항목에 가중치를 두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