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과중한 업무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사고 건수가 많아지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마련이 절실하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를 위해 ‘종현이 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5일 성명서를 통해 “의료사고는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에 의사가 보호를 받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전공의의 과중한 근무여건을 개선하고 의료사고배상보험 가입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종현이 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의 이름이 이렇게 불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0년 모 대학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던 정종현이란 이름의 9살 난 남자아이가 치료 도중 숨지는 의료사고 발생했다. 사고 당일 종현이의 치료를 맡은 이 대학병원 전공의 A씨는 과중한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늦은 저녁이 되자 피로 때문에 집중력이 극도로 떨어지고 만다. 이 상태에서 A씨는 처치실에서 종현이에게 정맥•척수강주사 두 가지 항암제를 투여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후 사고가 터지고 만다. 종현이는 극심한 두통과 엉덩이를 뜯는 듯한 통증을 호소했고 이후 다리로부터 온 마비증세가 상체쪽으로 진행되는 상행성마비 증세를 보였다. A씨가 급히 응급치료에 나섰지만 하루가 지난 후 종현이의 콩팥기능이 정지됐고 이틀 후에는 의식불명 상태에 들어가 깨어나지 못하다가 일주일 후에는 결국 사망했다.
이후 병원 측은 사망원인에 대해 ‘급성 뇌수막염에 의한 합병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세는 정맥으로 투여돼야 하는 항암제 ‘빈크리스틴’이 척수강으로 투여됐을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증세와 일치했다. 전공의의 순간적인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판단하면 정맥과 척수강으로 각각 투여되어야 할 ‘빈크리스틴’과 ‘시타라빈’이 바뀌어 들어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의협에 따르면 이런 유형의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국내 발생건수는 약 9건으로 보고되고 있다.
유가족은 병원 측에 종현이의 사망이 의료사고임을 인정할 것과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이를 묵살하고 만다. 유가족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즉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이 사고에 대한 사실조회 및 진료기록감정을 대학병원에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이를 거절해 재판은 현재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더구나 종현이의 치료를 담당했던 전공의 A씨의 처지는 병원이 책임을 모두 회피하면서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병원 측이 이번 사고를 모두 전공의의 책임으로 돌려 재판에서 지더라도 유가족에게 지급한 합의금을 전공의에게서 다시 받아내는 구상권을 청구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대학병원 교수들은 의료사고배상보험에 가입돼 있어 의료사고가 일어나더라도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전공의들은 현재 의료사고배상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의협은 “현재 전공의들은 주당 100시간 일하지만 의료사고배상보험조차 가입돼 있지 않아 의료사고 책임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며 “전공의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은 환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전공의 근무시간을 주당 60시간 이내로 의무화하고 의료사고배상보험가입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6일부터 열흘 동안 의료사고로 피해를 입은 종현이의 유가족을 위한 모금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