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브란스병원 연구진, 환자 32%에서 유전자 이상 규명·맞춤형 치료 가능성 제시
한국인에서 뇌전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실마리를 찾았다. 이번 연구에 따라 한국인의 뇌전증 맞춤 치료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강훈철·김세희 연세대 세브란스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교수와 최종락·이승태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팀은 한국인 뇌전증 유전적 소인의 단서를 찾아 국제학술지 ‘에필렙시아’(Epilepsia, IF 5.6) 최근호에 게재했다고 14일 밝혔다.
뇌전증은 전 세계 인구의 1%에서 발생하는 신경질환으로, 중추신경계의 감염이나 뇌 이상 발달, 뇌종양 등 여러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최근 다양한 연구를 통해 SCN1A, SCN2A, GABRA1 등 유전자의 변이가 중추신경계의 발달과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소아 뇌전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전성 뇌전증 연구가 서양인을 대상으로 이뤄져 한국인에서 뇌전증을 유발하는 유전자 정보가 부족한 상황이다.
연구팀은 뇌전증 증상을 보이지만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957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이상을 확인하기 위해 진단용 엑솜 시퀀싱(exome sequencing)과 질환별 차세대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패널 검사를 실시했다.
분석 결과 전체 수검자 중 32%인 310명에서 뇌전증 관련 유전자의 이상이 나타났다. 경련을 일으키는 드라벳증후군 환자는 SCN1A 유전자에서 이상을 보였다. 사지를 일시에 굽히거나 뻗는 동작을 반복하는 영아연축 환자는 STXBP1, SCN2A, CDKL5 유전자에서 이상이 나타났다. 이밖에 영유아 뇌전증을 유발하는 KCNQ2 유전자와 CHD2, SLC2A1, PCDH19, MECP2, SCN8A, PRRT2 유전자 등의 이상도 확인했다.
유전자 이상이 나타난 뇌전증 환자 310명 가운데 145명(47%)은 SCN1A, STXBP1, SCN2A, KCNQ2 등 흔히 발견된 11가지 유전자 중 하나 이상의 유전자에서 이상 변이를 보였다. 또 전체 환자 957명 중 47명(5%)만 여러 번 반복되는 공통 변이(3개 특정 염기서열의 반복)를 보였고, 대부분 환자는 희귀 변이(공통변이가 아닌 것)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발굴된 공통복제수변이(common copy number variation·CNV)들은 유전체 상에서 유전자지역보다는 유전자와 유전자 간 유전자사이지역(intergenic region)에 위치하고 있고 유전자지역 내에서도 단백질 합성 정보를 갖고 있는 엑손(exon)보다는 주로 단백질로 합성되지 않는 인트론(intron)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 달리, 1% 이하의 발생 빈도를 보이는 희귀복제수변이(rare copy number variation)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엑손지역에서 발견된다.
드라벳증후군을 앓는 환자의 대부분은 SCN1A 단일 유전자에서만 이상을 보였고 진단율은 87%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심한 아동기 발작 간질을 유발하는 ‘레녹스-가스토증후군’ 환자와 영아연축 환자는 두 가지 이상 유전자에서 변이가 관찰됐으며 진단율은 각각 33%와 22%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 연구에서 나이에 따른 뇌전증 유전자 진단율도 통계가 나왔다. 신생아에서 뇌전증 진단율은 43%로 가장 높았고, 2~5세의 경우 20%로 뇌전증 진단율이 가장 낮았다.
유전자 원인이 확인된 환자 310명 중 111명(36%)의 환자에서 유전자검사 결과를 기반으로 맞춤형 치료 계획 수립이 가능했다. 또 일부 환자에서는 과거 뇌전증 환자 치료 자료를 바탕으로 효과적이었던 약물이나 식이요법 시도가 가능했다.
김세희 교수는 “이번 유전자 분석을 통해 뇌전증을 효과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한국인에 특화된 유전 변이 데이터를 구축하면 뇌전증 환자에게 맞춤형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