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정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팀(송윤민 KAIST 박사과정, 정재권 고려대 의대 박사과정)은 기분장애 환자에서 우울증상의 발생이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수학적 모델로 규명했다고 23일 밝혔다.

기분장애는 안정적인 기분 조절의 어려움으로 상당 기간 정상 범위보다 처지는 상태로 유지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들뜨는 경우로, 양극성장애(조울증)과 주요우울장애(우울증)을 포함한다.

기분장애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반복적으로 기분의 악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기분 증상 악화에 수면 패턴과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이 연관 있다는 사실은 경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이 직접적으로 기분증상의 악화를 가져오는 지, 또는 기분증상의 악화가 역으로 이들의 교란을 일으키는지에 관한 인과관계는 아직 밝혀져 있지 않았다.

이에 공동 연구팀은 기분장애 전향적 코호트 연구에 참여한 환자 중 장기간 수면과 일주기리듬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한 139명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환자들은 스마트폰으로 매일 기분 증상에 관한 설문을 작성했다. 연구진은 웨어러블기기 기반으로 얻어진 수면 패턴과 수학적 모델에 의하여 일주기 생체리듬 정보를 계산해냈다. 총 4만일 이상의 매일의 웨어러블기기 정보와 기분증상 정보를 확보했고, 전이 엔트로피(transfer entropy) 방법을 사용하여 매일의 기분증상에 영향을 미치는 수면패턴과 일주기 생체리듬의 인과관계를 분석했다.

600일 이상 웨어러블을 착용한 환자를 분석한 결과, 주요우울장애와 양극성1형장애(조증 위주)에서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이 기분증상의 악화에 각각 66.7%와 85.7%의 높은 인과관계를 가지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양극성2형장애(경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남)에서는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았다. 반대로 기분증상의 악화가 일주기 생체 리듬의 교란을 일으키는 인과관계는 모든 종류의 장애에서 뚜렷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수면패턴 자체는 기분증상에 인과관계가 없었다.

이는 기분장애 환자에서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이 기분 증상에 직접적인 원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일주기 생체리듬을 회복시키기 위한 규칙적인 수면과 적절한 빛 노출이 기분장애 환자가 안정적인 기분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임을 확인해준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김재경 교수는 “장기간 수면패턴이 무너지면 비로소 일주기 생체리듬의 교란이 발생하며, 2주가량의 객관적인 수면 및 빛노출 정보가 있으면 일주기 생체리듬을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며 “수면패턴이 아닌 일주기 리듬이 직접적으로 기분증상 악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말했다.

이헌정 교수는 “이번 발견은 실제 기분장애 환자의 치료에서 기존 약물치료에 더하여 디지털 치료기기를 이용해 일주기 리듬을 측정 및 관리하게 되면,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Causal dynamics of sleep, circadian rhythm, and mood symptoms in patients with major depression and bipolar disorder: insights from longitudinal wearable device data’라는 제목으로 저명 학술지 ‘eBioMedicine’(IF-=11.1)에 ‘이달의 주목할 만한 논문’으로 선정됐다. 또 BRIC의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에도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