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C녹십자가 JW중외제약의 A형 혈우병 치료제 ‘헴리브라피하주사’(HEMLIBRA, 성분명 에미시주맙 emicizumab)를 저격하는 보도자료를 내 치열한 시장 경쟁의 서막을 올렸다.
녹십자는 헴리브라의 혈전이상사례 보고율이 기존 8인자제제보다 2.8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21일 발표했다. 이 회사는 지난 17~19일 미국 메릴랜드주 내셔널하버(National Harbor)에서 열린 미국출혈장애학회(Bleeding Disorders Conference, BDC 2023)에 참가해 미국 식품의약국(FDA) 의약품 이상사례보고시스템(Adverse Event Reporting System, FAERS)에 보고된 헴리브라와 8인자제제의 혈전이상 사례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21일 밝혔다.
미국출혈장애학회(BDC)는 출혈 장애에 대한 전문가들이 모여 관련 지식과 최신 연구를 공유하는 국제 학회로 미국혈우병재단(NHF)에서 올해 75번째로 주최했다.
이번 연구는 최봉규 GC녹십자 데이터사이언스팀장과 신주영 성균관대 약대 교수, 한국혈우재단 부설의원 유기영 원장 등이 공동 발표했다.
연구진이 지난 5년간(2018년~2022년) FAERS 데이타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헴리브라 투여 후 발생한 이상사례 총 2383건 중 혈전이상 사례는 97건으로 전체 이상사례(2383건)의 4.07%를 차지한 반면, 8인자 제제는 1.44%(9324건 중 134건)에 그쳤다. 즉 헴리브라의 전체 이상사례 대비 혈전이상 사례 보고율이 8인자제제보다 2.83배 높게 나왔다.
앞서 지난 3월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결과가 출판됐다. 유럽의약품안전관리시스템 데이타베이스(Eudravigilance database)를 이용한 연구에서 헴리브라 투여 후 발생한 혈전이상 사례 보고율이 반감기연장(Extended Half-Life, EHL) 8인자제제(반감기연장제제)보다 약 2.77배 높게 확인됐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우회제제(bypassing agent, BPA)와 병용을 제외한 헴리브라 단독 투여군에서도 8인자제제 대비 혈전이상 사례가 약 1.84배 높았다는 점이다.
혈우병의 우회제제란 고역가의 8인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인자에 대한 항체가 생겨 합병증으로 출혈이 계속되는 경우에 8인자 보충제 대신에 이를 우회해 지혈효과를 낼 수 있는 약물이나 치료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게 7인자 활성화제와 활성형 프로트롬빈 복합체(aPPC), 혈장분리교환술 등이다. 헴리브라는 약리기전 상 우회제제에 속하지는 않는다.
최근 연구에서 헴리브라와 aPPC 등 우회제제(BPA)와 병용했을 경우 심각한 혈전 질환이 발현됐다는 임상 결과는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헴리브라 관련 혈전이상사례 총 97건 중 우회제제(BPAs) 병용이 없는 단독요법에서의 혈전이상사례가 총 62건으로 우회제제(BPA) 병용이 있는 혈전이상사례 35건보다 더 많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한국혈우재단 유기영 원장은 “미국 FAERS에 보고된 리얼월드데이터(RWD)를 이용해 헴리브라와 8인자제제의 부작용 사례를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양한 혈우병 신약 출시를 반기지만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혈전이상 사례를 포함한 실제 의료현장에서 혈우병 신약의 안전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녹십자가 경쟁제품인 헴리브라를 공격하는 것은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다. 이는 헴리브라가 지난 5월부터 항체를 가진 중증 A형 혈우병 환자는 물론 항체가 없는 비항체 중증 A형 혈우병 환자에게도 급여가 적용되면서 그동안 이 시장을 주름잡은 GC녹십자가 영업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란 관측이다.
2019년 혈우병 백서에 따르면, 국내 A형 혈우병 환자 1746명 중 비항체 환자가 1589명으로 90% 이상이다. 지난 5월 헴리브라 급여 확대 이전에는 중증 항체 환자에게만 헴리브라 급여가 적용돼 극소수에게만 혜택이 적용돼왔다. 하지만 5월 이후 급여 확대가 이뤄지면서 시장을 잃게 된 녹십자가 적극 대응에 나섰다.
녹십자의 경우 국내 시장 1위로 평가받는 다케다 ‘애드베이트주’(유전자재조합 8인자)를 공동 판매 하는 동시에 자사 제품인 ‘그린진에프주’(beroctocog alfa)와 ‘그린모노주’(인간 혈액응고인자 8인자)를 판매하며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한국혈우재단이 운영하는 일명 ‘서울의원’에서는 국내 혈우병A 환자의 절반가량을 커버하고 있으며 주로 녹십자 관련 제제를 처방 중이다.
의약품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2년 애드베이트는 195억원, 그린모노 66억원, 그린진에프 27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다케다의 반감기 연장 장시간형 제제인 ‘애디노베이트주’(성분명 유전자재조합 8인자 결합 rurioctocog alfa pegol) 68억원까지 더한다면 해당 시장 매출의 상당수를 GC녹십자가 독식하고 있는 셈이다.
헴리브라는 지난해 76억원의 처방 매출을 기록했는데 5월 급여 확대를 계기로 혈우병 시장을 둘러싼 녹십자 대 중외 간 맞대결이 가열되고 있다.
중외제약 관계자는 “혈우병의 경우 항체 환자가 10%, 나머지 90%는 비항체 환자라고 보고 있다”며 “헴리브라가 최근 비항체 환자에까지 급여가 확대 적용됨에 따라 기존 시장을 잠식하다보니 녹십자가 견제에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녹십자가 발표한 데이터의 출처인 FDA 의약품 이상사례보고시스템(FARES)은 자발적 이상사례 보고 시스템으로, 전체 약제의 이상사례가 모두 수집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상사례의 중복과 보고 누락 등이 가미된 불안정한 자료”라고 전제하면서 “헴리브라와 8인자제제의 전체 이상사례 수는 각각 2383건, 9324건으로 8인자 제제의 이상사례가 3배 이상 많고, 혈전 이상반응 사례 역시 헴리브라 97건, 8인자제제 134건으로 8인자제제의 이상사례 보고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전체 이상사례 대비 혈전이상 비율을 갖고 혈전이상 부작용을 부각시킨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시장 점유율이 비슷한 상황(헴리브라 51%, 8인자제제 49%, IQVIA 22년 4분기 기준)에서 8인자제제의 전체 이상사례 수는 FARES 자료만으로 봐도 월등히 높은 것이라고 역공했다.
특히 같은 데이터에서 조사된 중대한 이상반응(SAE)은 헴리브라 2383건 중 1545건(64.8%), 8인자제제 9324건 중 7675건(82.3%)로 8인자제제의 SAE 발생 건수와 비중 모두 헴리브라보다 높게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혈우병 환자들은 지혈제 투여 시 혈전이상반응 외에도 출혈성 뇌혈관질환과 같은 중대한 이상반응이 다양하게 발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GC녹십자는 전체 부작용이 아닌 혈전이상 부작용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시인했다. 아울러 지난 3월 유럽에서 발표된 혈우병 A 치료제 안전성 연구에 대한 확인 및 검증 차원에서 이번 연구가 추진됐다고 덧붙였다.
중외 측은 헴리브라는 A형 혈우병 치료제 중 유일하게 기존 치료제(8인자 제제)에 대한 내성을 가진 항체 환자와 비항체 환자에 모두 사용할 수 있으며, 1회 피하주사로 최대 4주 간 예방 효과가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헴리브라는 혈액응고 제8인자(9인자에서 10인자로 캐스케이드되는 과정을 매개)의 혈액응고 작용기전을 모방해 혈액응고 제9인자와 제10인자에 동시에 결합하는 이중항체 기술을 적용한 혁신신약으로, 비(非) 응고인자 치료제에 속하기 때문에 기존 응고인자 제제와 기전 상 차별화된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