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개원 40주년을 맞는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숙원인 새 병원 건립에 나선다. 기존 건물을 사실상 모두 허물고 2023년부터 2030년까지 기존 진료 기능을 유지하면서 총 3단계(0~2단계)에 걸친 대역사가 이뤄진다.
내년 초순부터는 주차장 확보가 주를 이루는 0단계 사업이 진행된다. 병원 뒤쪽으로 주차 전용 지하 건축물을 조성하고, 병원에 인접한 학교의 주차장 일부를 빌려 고객 이용에 지장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1단계 사업은 2017년에 지어진 기존 1동을 리모델링해 16층(약 80m) 높이로 수직 증축한다. 이 새 병원 메인 건물에는 응급부, 진료부, 수술부, 병동부가 수직으로 연계되는 ‘수직 집중형’으로 들어선다. 이르면 2026년말, 늦어도 2027년초에 완공될 예정이다.
2단계 사업은 새 병원 메인 건물과 기존 2·3동이 철거된 자리에 들어설 건물을 수평으로 확장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확장된 공간에는 외래진료실, 장례식장, 행정부서, 임상연구 시설 등이 들어갈 예정이다. 10층 50m 높이로,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 메일 건물과 수평 증축한 신 건물 사이에는 길이 120~150m의 복도(hospital spine)이 만들어져 개방감을 주고 편안한 외래진료 대기, 원활한 통행을 유도한다. 또 여기엔 LED 미디어 월을 설치해 다양한 정보전달을 도모한다.
이같은 청사진은 전임 윤동섭 병원장(현 연세의료원 의료원장)에 의해 그려졌고 후임인 현 송영구 병원장이 바통을 이어받아 추진된다. 윤 전 병원장은 서울시와 협의해 강남세브란스 보유한 매봉공원 인근 부지(3만3799㎡)를 기부채납하고 용적률을 250%에서 470%로 끌어올렸으며, 건물 층고를 최고 42m에서 80m로 올릴 권리를 확보했다.
새 병원은 총 21만6500㎡(약 6만5500평)에 달하는 건축 면적을 확보했다. 기존 공간의 약 2.5배 규모다.
새 병원은 기존 병원의 딱딱한 외관에서 벗어나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탄소배출 절감을 위한 외장재가 도입되며 환자와 내원객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지하에는 드롭 오프 존(Drop-Off Zone, 주정차 전용구역)이 마련된다.
지상부에 도곡근린공원 녹지축을 연계한 계단식 조경을 설치해 환자와 교직원은 물론 지역 주민에게도 힐링 공간으로 사랑받는 친환경적 도시 숲을 조성한다.
강남세브란스 새 병원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의료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AGV(Automated Guided Vehicle) 로봇을 이용한 물류시스템을 도입해 의료진의 업무 효율을 높인다. 미래 교통 및 운송 수단으로 각광 받는 도심 항공교통(UAM) 상용화에 대비해 건물 옥상부에 헬리포트도 구축한다. 응급 헬기나 UAM 에어 앰뷸런스 등이 이착륙할 예정이다. 아울러 미래 팬데믹 상황에 대비해 환자, 의료진, 방문객의 동선을 분리한 병동과 외래 배치, 엘리베이터 활용 계획을 설계에 반영했다.
본래 강남세스란스병원은 1983년 당시로서는 의료 불모지인 강남과 성남, 용인, 광주 시민의 의료서비스 개선을 위해 독일 차관을 받아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강남 도심이 확장됨에 따라 1994년, 2005년, 2017년에 잇따라 건물이 신축됐음에도 협소한 부지 탓에 원활한 진료 기능 수행에 애를 먹었다. 현재 교수 연구실과 행정부서들이 병원 인근 독립 건물로 나가면서 진료 공간을 확충했음에도 진료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영구 병원장은 12일 인터컨티넨탈호텔 서울코엑스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1983년, 의료 인프라가 부족했던 서울 강남지역에 뿌리를 내린 강남세브란스병원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서울 강남지역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지역으로 이끌어 왔다”며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이 이상적인 조화를 이뤄 극대화된 효율성을 갖춘 ‘도심형 스마트병원’을 만들어 ‘최고 그 이상(Beyond the Best)’이라는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환자와 의료진 모두 고생했다”며 “ ” 첨단 의료시설은 물론 대규모 감염병 유행에 대비한 강화된 의료환경 요건을 충족시키는 진정한 ‘도심형 스마트병원’의 표준으로 새 병원을 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건립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병원이 지속적으로 운영되는 만큼, 환자들이 불편을 겪을 수 있고 분진, 소음 등의 불편으로 외래 환자 수요가 10% 정도 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지금도 불편한 주차 등의 문제가 있음에도 환자들이 꾸준히 내원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병원에 고객의 신뢰도가 높은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송영구 원장은 간담회에서 새 병원 건립 계획 외에 △연구중심병원으로의 신속한 전환 준비 △책임경영제 참여에 따른 든든한 자립 구조 확립 △핵심 선도진료 분야의 경쟁력 강화 등을 설명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연세의료원이 올해 처음 시행하는 책임경영제도의 첫 번째 참여 기관으로 선정됐다. 올해 3월부터 책임경영제 시행에 들어갔고 1년간 유효하다. 성과에 따라 1년 추가 연장될 예정이다.
책임경쟁제 안착화시켜 시범사업으로 본사업으로 승격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의료원 산하 병원은 의료원으로부터 인사권, 예산집행권을 통제받았다. 이 때문에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할 간호사 증원, 정부 협력사업 수주 등이 지체되고 실기하는 문제가 초래됐다. 이에 따라 도입된 책임경영제는 병원장의 예산 지출 재량이 기존 5억원에서 30억원으로 확대됐으며 보직자 인사나 정규직 증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송영구 병원장은 올해 상반기에는 재무·고객·프로세스 분야 9개 항목이 포함된 경영지표에 역점을 두어 시범사업을 시행했고, 하반기에는 새병원의 성공적인 건립을 포함한 중장기 전략과제 및 전략지표 분야까지 확대해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세의료원 산하 여러 기관 중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게 시범사업 기관으로 선정된 것은 그동안 보여 온 재정구조의 안정성과 명확한 목표 지향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책임경영제는 병원 미래 발전을 이끌 원동력이기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세부 과제를 수행해 갈 예정이고, 올해 시범사업 진행 속도를 높여 본사업으로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중심병원 전환 위해 인재, 공간 등 인프라 적극 확장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최근 구축한 세포치료센터, 첨단재생의료 연구시설, 혁신 의료기기 실증지원센터, 강남 빅데이터 연구실 등을 병원 연구력 증진 코어 조직으로 삼아 연구력 증진에 매진할 계획이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미한 의료산업화, 디지털 헬스케어, 디지털 치료제, 메타버스로 대변되는 가상공간, AR/VR 기반의 새로운 치료 시스템 및 의학교육 활성화, AI와 빅데이터 조합, 디지털 치료제 개발, 비대면 진료 플랫폼 구축까지 커버하는 연구중심병원을 만들 계획이다.
이 병원에는 연세대 강남캠퍼스가 들어서 있다. 의료기기산업학과와 융합의학과 등 2개과가 석박사 인재 양성을 목표로 운영 중이다. 대학원 설립 3년차에 재학생이 100명에 이르고 있다.
송영구 병원장은 “10년 동안 변함없는 연구중심병원 지정 제도를 뚫고 새로 진입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며 “연구 관련 휴먼리소스와 연구 전담 공간 확보, 체계적 연구비 지원 등 연구 인프라 확충으로 언제라도 연구중심병원에 합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핵심 의료 분야 더욱 키워 국내 톱5 의료기관 입성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세계 의료시장에서 겨룰 수 있는 다양한 의료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의료기관 중 가장 많은 수술 치료 실적을 쌓은 갑상선암센터, 국내 대동맥질환자의 약 30% 정도를 치료하는 대동맥 수술팀, 대한민국 최초로 유방암 ‘수술 중 방사선 치료(IORT)’를 시행한 유방암 센터, 한국 최초로 유니티 장비(MR-Linac 방사선 치료기)를 도입해 방사선 암치료의 신기원을 연 방사선종양학과, 2022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AI 활용 내시경 장비 개발 등이다.
이밖에 미래 의료의 핵심이 될 AI 활용 정밀의료센터, 국내 척추전문병원들이 해결하지 못한 환자를 의뢰해 ‘대한민국 4차 척추병원’으로 각광 받는 척추병원, 의료산업 최고위자 양성기관으로 주목받는 연세의대 강남캠퍼스, 디지털 진단 분야 선두주자인 치과병원, 우리나라 로봇수술의 첫 문을 연 로봇수술센터 등 수 없는 최초와 최고의 기록이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담겨있다.
최근 발표된 뉴스위크 선정 세계 특화병원 순위에서 정형외과를 위시한 총 8개 분야에서 순위에 올라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지닌 진료 분야 우수성을 입증했다.
송영구 병원장은 “규모로서 빅5나 빅10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의료서비스의 품질로서 국내 톱5에 입성하는 것을 추구한다”며 “협소한 진료공간과 주차난에도 불구하고 개원 이래 환자들이 계속 증가하는 것은 이런 목표에 도전할 자격이 있음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