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무려 10개사에서 보툴리눔톡신을 만들다보니 전세계에서 가격이 가장 쌉니다. 그러다보니 눈가주름 미간주름 위주의 서구보다는 보디톡신(종아리보톡스, 승모근보톡스) 시술이나 한국 특유의 사각턱 시술 등이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대량 투여와 잦은 시술은 보툴리눔톡신 내성을 일으킬 수 있고, 순수 보툴리눔톡신(뉴로톡신)을 함유한 제품을 쓰는 게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서구일 대한코스메틱피부과학회 부회장(모델로피부과 대표원장)은 14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가진 학회 기자간담회에서 보툴리눔톡신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보툴리눔톡신(이하 톡신)에 내성이 생긴다는 것은 미용치료용 또는 질병치료용으로 톡신을 쓰려 해도 더 이상 효과를 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서 부회장은 “톡신에 내성이 생기면 더 이상 미용치료 안 받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톡신으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치료(뇌졸중 후유증, 편두통, 사경증 등)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손해”라며 “내성이 생긴지 모른 체 과잉 투여하면 굳은 표정이 오래가는 문제도 초래된다”고 지적했다.
내성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면 학회가 2017년부터 진행했던 ‘365’ 캠페인의 주제처럼 ‘3번 이상 맞고, 최근 6개월 내에 시술받고, 한 번에 50유닛 이상을 맞는’ 사람들은 톡신 내성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번의 시술에 100유닛 이상의 고용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보디톡신이나 질병치료를 위해서는 한 번에 300유닛 이상이 사용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2년 이상 사용하면 이용자의 12%에서 항체가 발견된다. 자주 쓰거나 한 번에 고용량을 투입할수록 내성 위험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는 20대부터 시술받는 등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화장품처럼 미용 목적의 톡신을 소비하는 경향이 늘면서 반복 시술이 늘어나 내성 발현이 문제시된다.
톡신은 제품의 성분에 따라서도 내성 발현에 큰 차이를 보인다. 대다수 제품은 복합단백질(300~900kDa, 외피)이 뉴로톡신(150kDa, 코어)를 감싸고 있다. 복합단백질은 톡신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전으로 생겼는데 이는 항체 생성을 유발해 내성이 생기는 요소가 된다. 신경과 근육과 마비시켜 미용 및 치료 효과를 내는 실제 주인공은 뉴로톡신이다.
뉴로톡신만 순수하게 함유한 제품은 내성 발현 문제가 적다. 멀츠의 ‘제오민’, 메디톡스의 ‘코어톡스’가 대표적인 외산, 국산 제품이며 나머지 톡신 제품은 복합단백질이 존재한다. 서 부회장은 “그동안 톡신 시술을 해오면서 약 50명의 톡신 내성 환자를 접했고 대다수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은 사람이었다”며 “2010년대 초반부터 제오민, 5년 전부터 코어톡스 등 순수 톡신으로 변경한 이후로는 아직까지 내성이 발생된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오민과 코어톡스가 내성 위험에서 자유롭지만 제오민은 출시한 지 10년이 넘으면서 데이터가 많이 축적된 반면 코어톡스는 아직 입증 자료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코스메틱피부과학회는 올해 안전한 보툴리눔 톡신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고 지속 가능한 시술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내성분 캠페인’을 기획했다. 내가 맞는 톡신 성분을 알자는 의미와 내성을 줄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학회가 20~45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올 여름에 조사한 결과 1년에 2회 이상 시술하는 사람은 전체 이용자의 82%에 달했다. 2017년 조사에서는 3개월 미만 주기로 시술받는 환자 비중이 11%였는데 2022년 조사에서는 3%로 낮아져 건전 사용 인식이 자리잡는 모습을 보였다.
서 부회장은 “100유닛 이하 용량으로 얼굴은 3개월, 종아리나 승모근 등 몸 부위엔 6개월 단위로 시술을 받는 게 좋다”며 “10개의 톡신 제품이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투약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 많은 시술량을 보이고 있는데, 마치 공장처럼 정해진 양을 습관처럼 일관되게 시술하는 의료는 지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에서 100유닛 한 병 톡신 가격은 100달러인 반면 국내서 국산 제품은 1만5000~2만원선이다.
설문조사 대상자들은 톡신 제품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로 △안전성(83.3%) △효과 및 지속 기간(65.6%) △가격(55.8%) △병원 추천(20.7%) △제조공정 및 성분(18%) 등을 꼽았다. 특히 브랜드 인지도를 꼽은 사람은 30.7%로 5년 전의 7%에 비해 크게 늘었다. 그만큼 제품의 성분과 특성을 꼼꼼하게 따지는 의료소비자가 늘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안전성을 중요시한다는 답변과는 달리 본인이 시술받은 톡신 제품명에 대해선 51.3%가 모른다고 답했다. 부위별 권장 시술 주기에 대해서도 64.4%가 모른다고 답했다.
서구일 부회장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맞는 톡신의 브랜드를 모른다는 게 흥미롭다”며 “국내 시판되는 모든 제품이 안전하고, 효과도 대등소이하며, 제품을 교차사용해도 무방하지만 내성 발현에서 차이가 나므로 주기적으로 톡신 시술을 원하는 사람은 내성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서 원장에 따르면 질병관리청은 올해 연말까지 톡신 균주의 원천을 가려내 출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는 제품은 허가를 취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엘러간, 멀츠, 메디톡스 외에 대다수 제품이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미 대웅제약의 ‘나보타주’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로부터 수입금지 명령을 받았고 사실상 이해당사간 합의(손해배상)를 통해 미국 현지에서 수입금지를 풀고 영업 중이다. 업계에서는 대다수 국산 톡신업체들이 메디톡스 균주를 도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7년부터 5년 이상 끌어온 보톡스 균주 논쟁이 어떻게 귀결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