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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건강
영화‘82년생 김지영’ 현실적 육아일까 페미니즘 단면 일까
  • 김광학 기자
  • 등록 2022-03-30 15:12:56
  • 수정 2022-03-30 15: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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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대선서 젠더갈등 심화되었지만… 그러나 여성의 유리벽은 점차 깨지고 있다

1982년 봄에 태어나 누군가의 딸이자 아내, 동료이자 엄마로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지영’(정유미). 때론 어딘가 갇힌 듯 답답하기도 하지만 남편 ‘대현’(공유)과 사랑스러운 딸,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항상 든든한 가족들이 ‘지영’에겐 큰 힘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하는 ‘지영’. ‘대현’은 아내가 상처 입을까 두려워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고 ‘지영’은 이런 ‘대현’에게 언제나 “괜찮다”라며 웃어 보이기만 하는데... 


평범한 주부 1982년생 김지영은 장난감 정리, 빨래 등 가사노동과 육아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어느새 노을이 진 하늘을 맥없이 바라본다. 먹고 살만한 중산층 가정에, 다정한 남편, 지영을 소중히 여기는 시댁과 친정 식구들까지 모자란 점 없어 보이는 그녀가 정신과적 문제를 얻는다. 요즘엔 정신질환이 일어나는 원인을 생물학적·사회적·심리적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시도가 이뤄진다. 한두 가지 원인으로만 정신적 문제가 생기는 법은 없고 대부분 복합적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이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유발된다는 생물학적 측면, 취업준비생의 우울증은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 출생 세대) 등 기성세대의 일자리 장기 독점에 따른 사회구조적 모순,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은 심리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대개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영화에서 김지영의 경우 여성차별의 잔재가 여전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그가 겪는 우울증과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s, 解離障碍)의 요인으로 묘사된다. 


유은정 서초좋은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김지영이 겪은 정신과적 증상은 엄밀히 말하면 우울증(우울장애)이나 히스테리(신경증: 강박장애의 일종)가 아닌 해리장애”라며 “억압을 심하게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여성으로서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참고 살면서 자기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지 못한 억울함이 누적돼 인격이 부서지면 해리장애에 이를 수 있다”며 “보편적인 여성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고, 영화에서는 김지영이 극단적인 사례의 하나로 이런 측면을 표현하고 있지만 1980년대 이후 태어난 한국 신세대 여성이라면 누구도 이런 해리장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해리장애란 한 사람 안에 둘 이상, 평균 5~10가지의 정체성이 다른 자아가 존재해 성격이 때때로 급작하게 변화하고 기억상실, 빙의(憑依: 귀신들림), 둔주(遁走: 일상의 도피, 돌변적 여행이나 직업전환 등을 감행) 등을 보인다. 과거에 다중인격장애라고 불렀다. 김지영도 영화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이런 증상을 여기저기서 보인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많은 한국 여성이 그녀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방아쇠가 돼 그동안 억눌렸던,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속시원하게 분출했다고 입을 모으는 분위기다. 


김지영이 태어난 1982년은 갓 밀레니얼 세대로 접어든 시기다. 이 세대는 1980~1996년까지 출생해 대학 진학률이 높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자기표현 욕구가 강하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에 적극 주장하기 시작한 세대다. 국내외 SNS를 타고 급속히 확산된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시위도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한 대표적인 기성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밀레니얼세대가 사회에 진출하는 시기에 즈음해 남녀차별금지법(1999년 2월 발효) 등 제도적인 개선이 시도됐으나 현실에 반영되기에는 그 벽이 견고했다. 여전히 만연한 남아선호사상, 직장에서의 제한된 여성 입지 등 남성 중심의 지배적인 분위기와 보이지 않는 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장숙랑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는 보건사회연구원 주최 컬로퀴엄에서 ‘한국의 청년은 행복한가’를 주제로 한국과 일본 청년의 정신건강 상태을 비교 분석했다. 성별,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여성 자살률은 1900년부터 꾸준히 상승했고 1980년 이후 출생자부터 상승 곡선이 가팔라진다. 


장 교수는 “일본의 2차 세계대전 이후 청년 시기를 거친 1901~1920년대생 여성 자살률과 1982년 이후 여성 청년의 자살률이 비슷하다”며 “우리나라 신세대 여성이 전쟁 트라우마를 겪은 것도 아닌데 이를 의심할 정도로 자살률이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김지영은 결혼 후 출산, 육아, 시댁과의 갈등 등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산후우울증을 경험한다. 보건복지부의 ‘전국 보건소 산후우울증 판정 현황’에 따르면 산후우울증 고위험군 판정 산모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산후에 발생하는 정신적 문제는 정도에 따라 산후우울감, 산후우울증, 산후정신병 총 3가지로 나뉜다. 산후우울감은 산모의 50%~90%가 겪는 가벼운 우울증으로 특별한 치료 없이 회복된다. 산후우울증은 10~20%로 발생하며 적극적인 치료가 요구되는 경우다. 산후정신병은 1%로 드물며 환청, 망상 등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나 입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유은정 원장은 “산후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불면증, 식욕저하, 지나친 피해의식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삶의 리듬이 깨지면서 영화 속 대사처럼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 가슴이 답답하거나 한숨이 나오는 증상을 겪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산모는 출산 후 호르몬의 영향을 받아 신체적, 정신적으로 급격한 혼란을 겪기 때문에 일반 우울증보다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모유수유를 하지 않는 전제 하에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남편이나 가족이 함께 상담을 받거나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여행을 하는 것도 도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 영화엔 마땅한 악역이 없다. 여성들이 겪는 서사나 고민의 원인이 개개인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부분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성이 개인으로서 홀대받는 문제에 그칠 게 아니라 지구의 절반인 여성의 상처가 치유돼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예상과 달리 적잖은 남성 영화관람자들이 극장 입장 전과 다르게 관람 후 영화 속 주제에 수긍했다고 하니 남녀차별의 완화는 속도가 느릴지언정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 김연수는 소설 ‘세상의 끝 여자친구’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 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회의적이다. 내가 희망을 발견하는 건, 이런 인간의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란 것이 존재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의 인생을 살아 볼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도 않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라고 적었다. 


한편 20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젠더갈등으로 표출 되었다.  젠더 문제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 역시 지대하다. 젠더 이슈가 성평등 제고가 아니라 젠더 갈등이란 구도로 부각되는 것도 특징이다. 그 영향으로 젠더 공약을 두고 대선 후보 간 입장차는 첨예하다. 대선에서 각 후보의 공약이 비슷하게 수렴된다는 통설은 젠더 분야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어떤 공약을 내놓느냐가 곧 어떤 지지층을 대변하느냐로 치환되고 있다.


각 후보가 젠더 갈등이란 프레임을 인정한 후 그 속에서 표를 얻기 위해 ‘젠더 전쟁’의 대리전을 뛰는 셈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냐, 존속이냐로 대표되는 대선 후보의 극명한 입장차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2030세대 남성 표심을 잡으려는 후보는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이 공식처럼 됐다. 젠더 공약이 어느 지지층을 대변하느냐의 지표가 되다보니 공약 쏠림 현상도 나타났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지극히 편향된 신세대 여성상을 보여줬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다른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아직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우위인 남성이 여성의 사소한 상처의 편린들을 멍먹하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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