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증후군은 1970년대 후반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D.카일리가 제창한 개념으로, 어른들 사회에 끼지 못하는 ‘어른아이’ 증후군을 겪는 남성들을 일컫는 의학 용어다. 피터팬 증후군은 사춘기 이전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각 단계에서 증상을 보인다.
초등학생~중학생 시기의 피터팬 증후군의 증상은 무책임함이다. 육체적으로는 성숙했지만 언제까지나 어린이로 있고 싶은 마음에 책임감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중학생 나이에서의 피터팬 증후군 증상은 불안이다. 겉으로는 명랑하게 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 무책임한 성격까지 더해지면 사람이 한없이 나태해지거나 자괴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대학생 정도 청년기에서의 피터팬 증후군 증상은 성 역할의 갈등이다. 여성에게 남성다움을 어필하면서도 어떤 측면에선 여성의 모성애를 갈구한다.
20대 중반의 피터팬 증후군 증상은 자기애(自己愛)다. ‘나르시시즘’이라고도 하는데, 필요이상의 완전함을 추구하며 현실에서 달성 불가능하다고 여기자 현실 세계를 도피하는 증상을 보인다.
사회인의 피터팬 증후군 증상은 남존여비사상이다. 여성을 완전히 이해한다며 남녀가 동등하다는 페미니스트를 스스로 자처하지만, 실제로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 떠맡기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적으로 무능하며 매사에 무기력하고 스스로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다.
젊을수록 자유분방하고 속박을 거부한다고 단정짓는 것은 요즘의 현실에 맞지 않다. 몸은 다 컸지만 마음이 유약하고 덜 성숙해 자유보다 간섭과 통제를 선호하고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어른아이’, 이른바 ‘피터팬증후군(Peter Pan syndrome)’이 전세계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피터팬증후군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동화 속 피터팬처럼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고 언제까지나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현대인의 심리적 질병이다. 피터팬은 현실도피적인 캐릭터로 책임감이 없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회피한다.
오히려 동화 여주인공인 웬디를 자신의 엄마나 되는 것처럼 쫓아다니며 의존하고, 자신보다 한참 작은 요정 팅커벨과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실제 피터팬증후군 환자도 어린이처럼 보호받고 의존하길 원해 어른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책임·비사회적·자기중심적 행동을 보인다.
업무 생산력이 가장 왕성한 젊은층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야기한다. 노동력 감소로 경기가 침체되고, 사회구성원간 교류가 사라져 가정이 붕괴되며 덩달아 문화 수준도 퇴보할 수밖에 없다. 환자 개인의 삶도 불행해진다. 무기력감과 의존성은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져 우울증과 성격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피터팬신드롬은 흔히 부모에게 얹혀사는 캥거루족과 동일시되지만 경제적 상황보다 심리적 문제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최근엔 정부지원 감소 및 조세부담 증가에 부담을 느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거부하는 중소기업을 의미하는 경제 용어로 사용된다.
피터팬증후군은 주로 여성보다 젊은 남성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의존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미국 임상 심리학자 댄 카일리(Dan Kiley)는 1970년대 후반 경기침체와 여권신장으로 남성의 사회정치적 힘이 약해지면서 여성에게 의존적인 모습을 보이는 남성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고 피터팬증후군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경제양극화와 취업난으로 좌절한 일부 남성들은 실패 이유를 ‘여성’에게 돌렸다. 여권 신장과 여성의 사회 진출로 자신들이 설 곳을 잃어버렸다는 그릇된 생각은 ‘여혐(여성혐오)’으로 이어졌다. 반대로 어떤 남성은 능력있는 여성에게 환상과 동경심을 갖고 과도하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샷다맨’이라는 신조어도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왔다. 샷다맨은 가게 문을 닫을 때 사용하는 ‘샷다(덧문을 뜻하는 셔터의 일본식 발음)’와 ‘맨’의 합성어로 여자가 일하는 가게에서 문만 닫아주는 남자, 즉 유능한 여성 곁에서 호의호식하는 남자를 의미한다. 다만 피터팬증후군이 남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여성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피터팬증후군 환자는 의존성이 강하고 책임감이 없는 것 외에도 근거 없이 큰소리를 치는 게 특징이다. 이들의 계획은 현실보다 이상에 바탕을 둬 언제나 야심차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다. 실행이 불가능한 말뿐이라도 다른 사람의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위인지(meta cognition)’ 결핍과 관련된다. 상위인지는 자신의 생각에 대한 생각, 즉 지금 떠올리고 있는 생각과 계획이 어떤 모습인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약속을 지키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실망감과 낭패를 준 경험을 떠올리며 또다른 계획과 약속을 하기 전 스스로 현실적인 범위를 조정하지만 피터팬들은 과거의 실패에서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호언장담을 지속하고 약속을 남발한다”고 설명했다.
실행력과 결단력도 부족한 편이다. 이상은 높지만 실천하지 않아 현실과 자주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환상의 세계에 몰두한다. 삭막하고 차가운 현실보다는 상상 속 세계가 더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피터팬들의 이런 환상을 ‘백일몽(day-dreaming, 白日夢)’이라고 표현한다.
백일몽은 자신에게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 직·간접적으로 충족되는 비현실적인 세계를 생각하거나 상상하는 과정 또는 그런 꿈을 의미한다. 현실세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과도한 욕망을 저지하려고 행동하는데, 백일몽은 그 저지 상황을 해결하는 일종의 도피현상이다.
크게 정복자형과 순교자형의 두 유형으로 구별된다. 박두흠 교수는 “정복자형 백일몽은 자신을 강력한 힘, 지식, 높은 지위, 인기, 명성을 얻는 승리의 주인공과 동일시하면서 자아실현·우월성·지배력 등 만족의 기쁨을 얻는다”며 “반면 순교자형은 실패·무능·근심에 싸인 비극의 주인공과 동일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백일몽이 습관화되면 자아를 현실과 격리시켜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우울증 등이 동반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이나 감정을 자기만의 논리로 정당화하고,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도 특징이다.
피터팬증후군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정도가 심하지 않다면 어린 시절 즐겼던 놀이나 장난감을 통해 유년기를 추억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일종의 ‘힐링’이 될 수 있다. 몇년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씨가 뜨거운 인기를 얻은 것도 1980년대 유년시절을 보낸 20~30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최근 색칠공부, 애니메이션 등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유년시절 즐기던 장난감, 만화, 과자, 의복 등에 향수를 느껴 다시 찾는 20·30대 성인계층을 ‘키덜트(Kid와 Adult의 합성어)’로 부르기도 한다.
피터팬증후군은 정식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아 특별한 예방법이나 치료법은 없다. 다만 현실도피, 우울감, 불안감 등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질 수 있어 전문 상담기관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 보통 상담을 통해 근본 원인을 파악한 뒤 항우울제 등을 투여해 우울증 증상을 개선한다. 정신적인 문제는 최소 6개월 이상 상담 및 치료를 받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