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택치료 환자에 대한 약 배달에 의약품 도매업체를 포함키로 입장을 세운 것과 관련 약사들의 거센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대한약사회장 후보와 경기도약사회장 후보가 이의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서는 등 반발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이번 결정은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재택치료자가 증가함에 환자들에 대한 의약품 전달과 수령 방식 등의 불편을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앞서 의약단체와 의약품유통협회 등은 최근 보건복지부와의 실무회의에서 코로나 확진 환자의 재택치료의 의약품 조제, 전달 방식에 관한 논의를 갖고 이 같은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결정 내용이 알려지면서 약사들의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현 경기도약사회장이자 차기 선거에서 재선에 나선 박영달 후보다.
박 후보는 26일 “약사회는 그동안 국민건강을 위해 약사 역할을 다각화하고 의약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그러나 이번 재택환자에 대한 전달방식을 도매업체에 배달하게 한다는 소식은 그동안 약사들의 노력을 한 순간 버리는 선택”이라고 날 선 비판을 했다.
박 후보는 또 “도매직원이 조제약을 배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의약품은 단순 전달하는 일반상품과 달리 복용방법·보관방법·마약류·생화학적 제제 등 환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여러 가지 주의사항 등 숙지가 필요하고 특별히 관리돼야 한다”며 “코로나19 확산을 핑계로 도매 직원을 통해 조제약을 배송하는 것은 약사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편의성만을 주장하며 지역 약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행태”라고 반박했다.
이어 “코로나19는 현재 제1종 법정전염병으로 관리되고 있어 모든 조치들이 정부의 보건재정으로 충당되는 현실에서 터무니 없는 비용을 제시하며 배송 책임을 지역약사회에 미루는 정부와 대한약사회의 태도에 경악을 금하지 못한다”며 “새로운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지역약국이 건강증진 거점 역할 또는 지역 통합 건강증진 서비스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방문약사가 직접 약을 전달하는 것이 해결책이며 다른 어떠한 대안도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최광훈 대한약사회장 후보도 정부 결정 비판에 가세하고 나섰다. 최 후보는 29일 대한약사회관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며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일반인에 의한 약 배달은 약사법상 불법”이라며 “그러나 대한약사회는 코로나 확진자의 재택 치료에 있어 도매직원의 조제약 전달을 허용해 약사에 의한 대면 투약 원칙을 스스로 내팽개쳤다”고 비판했다.
최 후보는 또 “재택치료 환자에게 방문약료 제도를 응용해 국가가 약사를 고용해 화상 또는 인터폰 통화로 복약지도를 하고 약을 전달할 수 있었다”며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양보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있는데 대한약사회는 어이없게도 일반인에 의한 약 전달에 합의하며 제2의 전향적 합의를 했다”고 질책했다.
이어 “대면 투약의 원칙이 깨지는 순간 약 배달은 물론 온라인 약국과 법인약국 등의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이고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도매 직원에게 약 배달을 허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복지부의 계획이 발표되면 청사 앞에서 집회도 진행하고 항의의 뜻도 전하는 한편 도매상에도 이번 일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에 대한 반발은 지역 약사회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약사회는 “배달앱을 통한 의약품 전달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라며 최대한 가족 또는 이웃을 통해 전달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약사회 일각에서는 재택치료자의 경우 대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약사가 직접 전달할 필요성이 있느냐, 보건소나 약국이 직접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현실을 감안할 때 의약품 도매상이 최선의 대안일 수 있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하지만 회원들의 반발이 워낙 심해 이 같은 의견은 묻혀버리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재택치료 환자에 대한 약 배달에 도매업체를 포함키로 하는 결정과 관련된 약사들의 반발은 이미 일정 부분 예견됐던 부분이다. 결정 이전부터 이미 약사들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특정 거대 도매업체가 강력한 로비를 벌여 도매업체의 배달이 가능하도록 하는 결정이 나올 것이란 예측과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지오영과 백제약품은 지난해 전국 약국에 독점적으로 코로나19 방어용 공공마스크를 공급해 현 정부가 특혜를 줬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대다수 약사들은 설마 했던 도매업체의 약 배달 가능성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불만과 비판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보건소 직원 또는 방역 업무에 시달려 병가를 내거나 휴직, 퇴직하는 공무원들도 증가하고 있어 처방약 전달을 도매업체에 일임하자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약사들은 공무원의 편의를 위해 약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며 위법 행위를 정부 스스로 조장하고 있다며 대한약사회와 약사회장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일부 회원은 김대업 약사회장이 정계 진출을 위해 공적 회무 기능을 사적인 이익 추구에 마비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아직 정부의 최종 결정이 발표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섣부른 예단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미 약사회장 후보자들과 지역약사회 등이 강력한 반대 의지를 표명하고 강행 시 철회를 위한 실력행사를 예고하고 있어 재택치료 환자에 대한 도매업체의 약 배달은 성사가 불투명하다. 만약 현실화될 경우 정부와 약사들의 극한대립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