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앞둔 환자의 대다수는 불안함 감정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 근원에는 ‘마취’와 관련된 게 많다. 마취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나 불쾌한 심리상태가 예상되는 수술에서 불가피한 진료지만 환자들은 두렵기만 하다.
‘혹시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또는 ‘마취로 인해 머리가 나빠지면 어쩌나’하는 걱정과 반대로 ‘수술 도중 마취에서 깨어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등 일명 ‘마취공포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취와 관련된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상식들이 인터넷 또는 항간에 괴담처럼 떠도는 탓에 마취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김규남 한양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의 도움말로 수술 시 반드시 필요한 마취에 얽힌 오해와 진실에 대해 알아본다.
전신마취를 하고 나면 머리가 나빠지거나 기억력이 떨어진다?
마취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잘못 알려진 속설이다. 일반적으로 일회성의 단기간 마취는 장기적인 부작용이 없다고 보고되고 있다. 다만 수술 후 미미하게 잔존하는 마취제의 약효로 인해 평소보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신마취를 하면 마취제가 혈액을 통해 뇌로 운반되고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다. 뇌의 대사와 활동이 둔화돼 무의식·무감각 상태에 도달한다. 전신마취에 사용되는 최근의 흡입 및 정맥마취제는 거의 대부분이 마취 종료 후 곧바로 빠르게 배출되거나 대사돼 뇌세포의 기능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건망증이 생긴 것을 간혹 마취로 인한 후유증이나 부작용으로 인해 머리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스트레스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건망증이 생긴 것이지 마취를 받았다고 해서 머리가 나빠진 것은 아니다.
다만 노인환자의 경우 전신마취 후 일시적으로 인지기능이 감소하는 섬망이 발생해 회복이 더딜 수 있다. 섬망은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수술 후 1주일까지는 30%, 3개월까지는 10%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개 3개월 정도면 회복된다. 마취 중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잘 유지된다면 특별한 문제가 없으나 수술 중 혈압 유지가 안 되는 경우가 길어지면 뇌세포에 영향을 줘 뇌기능이 저하될 가능성도 있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마취통증의학과 의사가 수술 중 환자를 항상 확인한다.
수술 전에는 평소 복용하던 약물도 삼가야 한다?
평소 복용하던 대부분의 약제들은 수술 당일에 복용해도 괜찮다. 하지만 일부 약제의 경우 마취에 사용되는 여러 약제들과 상호작용을 일으켜 마취제나 마취보조제의 약물 작용을 비정상적으로 증강 시키거나 작용시간 연장 등을 가져와 마취 관리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복용 약물 자체에 의해 부작용 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수술을 앞둔 환자라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복용하고 있는 약물이나 과거 복용했던 약물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 등을 마취 전에 의료진에게 숨김없이 알려야 한다.
마취 전엔 반드시 금식을 해야 한다?
전신마취를 할 경우 근 이완과 기관 내 삽관이 필요하다. 만약 금식을 하지 않은 경우 마취 중 무의식 상태에서 구토를 하거나 위장에 남아 있던 음식물과 위산이 기도로 역류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치사율이 높은 흡인성 폐렴이나 질식 또는 기도 폐쇄 등 위험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하다.
따라서 수술을 앞둔 환자의 경우 수술 전에는 최소 8시간은 금식을 해야 하며 수술 전 음식을 먹은 시간과 종류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마취 전 반드시 금주와 금연을 해야 한다?
만성적으로 음주를 즐겨 알코올에 내성이 생긴 사람의 경우 마취제에 대한 반응성이 저하되거나 내성이 생겨 평균보다 많은 양의 마취제가 필요하게 되며 마취제에 대한 민감성도 떨어져 반응 여부를 예측하기 쉽지 않아 수술 중 불안전성을 초래하기 쉽다. 따라서 안전한 마취를 하기 위해선 수술 전 최소 3~4일 이내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흡연의 경우도 기관지 분비물을 증가 시키고 분비물을 배출하는 섬모운동을 억제해 분비물이 제거되지 못하게 하고 점점 축적되어 작은 기관지들이 막히게 한다. 이로 인해 수술 중 기관지 안에 가래가 차 호흡이 안 되거나 기관지 수축에 대한 위험성이 있고 수술 후 폐렴, 무기폐 등 폐 합병증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어 적어도 수술 전 4∼6주 정도는 반드시 금연을 해야 한다.
또한 흡연은 기관지 자극에 대한 반응성을 비흡연 환자보다 증가시켜서 마취 중 기관지 경련 발작으로 인한 호흡마비를 일으킬 위험도 증가시키게 된다.
임산부가 마취를 받으면 기형아를 출산한다?
많은 여성들이 임산부가 수술 등으로 인해 마취를 받게 되면 기형아를 출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임신초기 첫 3개월은 태아세포분열이 왕성한 시기로 마취 뿐 만이 아니라 항히스타민제, 호르몬제제 등 여러 치료약제나 환경호르몬 등 많은 원인이 기형아 발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면 임신 중 마취를 한다고 해서 기형아를 출산한다고 볼 수 없고 또한 기형이 유발 하지 않는 약물과 마취 방법을 선택하면 안전하다. 다만 임신부는 음식물이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 일반인과 같은 금식 시간을 적용하면 위에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위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마취를 할 때 더욱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노인 환자는 마취가 더 위험하다?
노인 환자 수술 시 마취에 중점을 두는 것은 일시적으로 뇌 기능이 저하될 수 있는 ‘섬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임상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술 후 한 달까지 약 30% 환자에서 보고되고 있으나 3개월 내에는 대부분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노인 환자의 경우 젊은 환자에 비해 체력과 면역력 등 모든 부분에서 저하된 경우가 많은 만큼 더욱 세밀한 마취 방법이 필요하고 수술 후 관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현대의학과 마취 방법이 과거와 달리 발달한 만큼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수술 중 마취가 깰 수도 있다?
아주 드물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마취 중 각성이라고 해서 대략 0.1~0.2%의 낮은 확률이지만 보고가 되고 있다. 현재의 마취 방법은 정맥마취제를 통해 환자의 의식을 빠르게 소실시킨 후 흡입마취제를 사용해 의식을 계속 소실시키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과정 속에서 만약의 사고로 인해 마취 약제가 전달이 되지 않는 경우 환자의 의식이 깨어있는 경우는 있다.
이는 마취가 어려운 산과수술·심장 수술·응급수술일수록 더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러나 각성을 방지하기 위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이 수술 내내 환자를 살피며 환자에게 뇌파 감시장치를 사용해 적절한 마취 심도를 맞추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술 중 악몽을 꾸거나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의 순간을 마취가 풀렸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당황하지 말고 자신이 경험했던 순간을 의료진과 비교해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취에 따른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 중 심한 통증과 메스꺼움 또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또 환자에 따라서는 호흡곤란이나 부정맥 등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심장병이나 폐질환 등이 있는 환자가 전신 마취를 하고 나면 이미 신체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 기능이 더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런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수술을 위한 마취 전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료진에게 정확히 알리고 반드시 숙련된 마취 전문의가 있는 병원에서 수술해야 혹시라도 발생 가능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마취 후 깨어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가장 불안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할까 염려하는 것이다. 과거에 그런 경우가 가끔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사용하는 마취제는 부작용을 개선해 안전성이 매우 높아져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의 마취 진료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이며 수많은 장비들을 동원해 마취 중 환자의 상태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고 있다.
더욱이 마취과 전문의는 수술 전 검사 등을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할 뿐 아니라 수술 중 최적의 신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맞춤형 진료를 하며 환자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따라서 환자가 위중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수술 받는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경우라면 마취제만으로 생명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위험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수술과 마취를 앞두고 있는 환자들은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고 자신이 치료받고 있는 모든 질환에 대한 정보와 복용하고 있는 약물을 담당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약물이 조절되지 않거나 임의로 약물을 복용할 경우 수술 중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