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진료보조 인력 PA(Physician Assistant)를 임상전담간호사(Clinical Practice Nurse, CPN)라는 용어로 대체하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겠다고 결정하자, 의료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17일 PA 명칭을 CPN으로 바꾸고 대상이 되는 PA 160명의 소속을 간호부에서 진료부로 변경하는 등 공식적으로 PA를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역할과 지위 및 보상체계 등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는 PA를 인정할 수 없다며 기존 의사 인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보건의료 노조는 의대 정원 확대 등으로 의사 수를 늘려 PA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PA는 대형병원에서 수술할 외과의사가 부족하자 고육지책으로 남자 간호사를 위주로 수술보조 목적으로 자체 육성한 인력이다. 이들은 집도의가 원활하게 수술할 수 있도록 수술도구를 사용해 도와주고 웬만한 절개, 지혈, 봉합, 소독 등을 대리한다. 레지던트가 기근 현상을 보이자 이들이 할 일을 PA가 대신하고 있다. 주로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등 레지던트가 태부족한 곳에 배치돼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간호사 업무는 ‘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보조’로 한정돼 엄밀히 말하면 PA가 하는 행위는 대부분 ‘불법’에 해당한다. 하지만 의료 일선에는 PA가 수술보조를 넘어 병동 회진, 처방, 처치, 진료기록 작성, 진단서 발급까지 의사 업무를 대리하고 있어 불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가 8개 대학병원을 조사한 결과 PA 인력은 717명, 한 곳 당 90명에 가까웠다. 이를 전국 병원으로 추산해보면 약 1만명에 달한다. 병원간호사회는 최근 7년 동안 PA 수가 4배가량 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시도의사회에 이어 전공의들도 서울대병원의 PA 양성화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0일 “무면허 의료보조인력 문제는 한 사람의 병원장 단독으로 결정 내릴 만한 무게의 사안이 아니다”며 “무분별하게 자행된 의료기관 내 무면허 의료행위는 수련병원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서울대병원 임상전담간호사 규정이라는 초법적 발상을 규탄하고, 결정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협의회는 “국민건강 증진과 생명보호에 있어 선도적인 위상을 지닌 서울대병원이 스스로 의료법을 파괴해 국민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불법 의료행위자에 대한 합법화 시도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의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PA 간호사에게 맡기자고 주장한 것은 편의주의에 편승해 진료비 증가를 목적으로 상업주의적 의료 가치를 지닌 일부 의료기관의 이익 창출을 지원하겠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시도의사회 회장들은 “‘임상전담간호사’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킨 PA 인정을 통해 기형적인 직역을 탄생시키려는 시도는 대한민국 의료인 면허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태롭게 할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서울대병원에서 제기한 PA 인정 시도가 전국의 상급병원으로 확산되면 의료의 파국을 맞을 갈등의 촉매가 될 것”이라며 “만일 PA 인정 결정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서울대병원을 불법 병원으로 간주하고 전국의 의사단체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성명을 통해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을 서울대병원에서 앞장서서 불법을 자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불법으로 규정된 PA를 법 개정도 없이 앞장서 그 제도화를 밀어붙이는 불법적 행위는 서울대병원이 나서서 해서는 안 될 역할”이라며 “서울대병원의 PA에 대한 입장 발표는 법을 무시하는 것으로 이처럼 오만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어 대개협은 “PA라는 말을 CPN으로 바꾼다는데 전담간호사는 현재도 다양한 분야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직군”이라며 “여기에 임상이라는 단어 하나 덧붙여서 은근슬쩍 PA를 합리화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 분명한 불법일 뿐”이라고 전했다.
대개협은 “일부 외국에서 인정되는 PA는 정규대학 과정과 이후 수년간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배출되는 자격으로, 해당 국가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제도이지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우리나라는 많은 전문의들이 있어서 충분한 대우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이들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PA같은 제도가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개협은 “서울대병원의 이번 PA관련 입장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하며 당장 불법 PA 인정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며 “작은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근본적인 자세로 돌아가 주 임무인 후학 양성과 연구는 물론 필수의료 복원을 고민하고, 해결책 제시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우용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외과 교수, 서울대 의대 졸)은 “미국에서는 PA를 2년 교육과정을 거쳐 제도적으로 양성하고 있다”며 “환자 안전을 감안해 PA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병원들이 PA를 어떻게 제도화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한지역병원협의회는 “PA 제도 도입이 전공의 근무시간 축소와 관계있다는 사실은 전공의의 업무를 PA에게 이관하는 것을 전제를 담고 있다”며 “전공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PA를 합법화하는 것은 대학병원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인 교육의 의무를 저버리고 전공의들을 그저 잡무원이나 기간제 일용직처럼 취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병협은 “부족한 의사 인력의 공백을 메우는 가장 좋은 선택은 의사인력(교원)을 많이 고용해 전공의의 역할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라며 “PA에게 몸을 맡기는 것보다, 의사 인력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 환자에 도움이 되는 것이지만, 대학병원은 PA제도를 선택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수가와 임금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은 자명하다”고 분석했다.
지병협은 “대학병원의 연구와 교육 기능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지만, 수입 증대를 위한 진료의 확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PA 제도는 주치의 한 명이 여러 수술을 동시에 진행하는 불법의 온상이 될 것이고, 동시에 늘어나는 수술이 연구와 교육이라는 대학병원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동기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병협은 “서울대병원의 PA 제도 도입은 일개 병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수익 증대를 위해서는 불법도 서슴지 않고, 전공의 교육 따위는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는 대학병원의 극단적인 이기심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복지부는 불법에 엄중하게 대처해야 하며, 지역병원협의회는 서울대병원의 불법에 대해 결과 묵과하지 않고 적극 대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역시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립대병원이 현재 법적으로 불법인 행위를 공공연히 하겠다고 선언한 어이없는 행태”라며 “앞으로 불법인 PA 의료행위를 합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병의협은 “현재 전국의 상급종합병원 및 대형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의사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PA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그 분야도 의사 고유의 영역으로까지 넓어지는 등 불법의 정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며 “불법 PA 의료행위는 의료인 면허체계의 붕괴, 의료의 질 저하, 의료분쟁 발생 시 법적 책임의 문제, 전공의 수련 기회 박탈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높기에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병의협은 “그동안 불법 PA 의료행위 근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해 빅5 병원의 불법 PA 의료행위를 고발하고 보건복지부 행정처분 의뢰, 불법 PA 의료행위 관련 수사기관 자문 등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왔다”며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불법 PA 의료행위 근절을 위한 의지가 없었고, 대부분의 PA가 근무하고 있는 상급종합병원 및 대형병원들이 불법을 멈출 의사가 전혀 없었기 PA 문제가 근절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그동안 ‘PA는 의료법상 불법 인력’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햇으나 적극적으로 단속하거나 고발 조치 등을 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의 이번 조치가 불법 PA 인력들의 폭로나 내부고발을 달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라는 게 병의협의 관측이다. 병의협은 “전체 의료계의 모범이 되고 정도를 걸어야 마땅한 서울대병원이 앞장서서 불법을 자행하고 이를 뻔뻔하게도 공식화시키는 모습을 보면, 현재 대한민국 의료가 얼마나 왜곡돼 있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병의협은 “서울대병원에 불법적인 PA 합법화 시도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불법 행위를 공공연히 저지른 것에 대해서 국민과 의료계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이런 결정을 주도한 서울대병원 김연수 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다.
이어 “대한의사협회에 김연수 원장의 불법 행위에 대해 윤리위원회 회부를 통한 징계를 요청한다”며 “공공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울대병원의 불법 행위에 대해 감사원 감사 청구, 법적 고발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건의료노조도 성명을 통해 “현행법상 의사 업무의 불법적인 대리 행위에 대해 서울대병원이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개별 병원의 제도가 현행법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보건의료노조는 “PA 양산과 의사업무 대리행위의 본질적 문제는 의사부족”이라며 “PA 문제 해결을 이야기할 때 의사인력 확대방안이 당연히 우선 논의돼야 한다. 의사인력 확충 없는 개별 병원의 PA 공식화 선언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이어 “복지부가 서울대병원의 논의를 중단시키고 해법 마련을 위한 논의를 즉각 시작해야 한다”며 “대한의사협회는 물론 대한병원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대한간호협회 등 전 의료계도 보건의료노조와 함께 문제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할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무면허 의료보조인력 양성은 의사와 간호사 간 협력의 근본을 뒤흔든다”며 “그동안 비용효율성을 위해 의사가 해야 할 일을 간호사에게 떠넘겼던 게 지금 무면허 의료보조인력 현황이다. 이런 상황을 고착화하겠다는 것은 단순 미봉책에 불과하며 의료인 간 신뢰관계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대전협은 이어 “병원장의 독단적 결정에 앞서 범의료계를 포괄하는 전향적인 논의가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