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논문서 바이러스 억제 효과 발표 … 실제 치료제 복용자 완치 사례 SNS 등 떠돌아 … 신풍제약·전문가 “임상결과 나오기 전까지 신중해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연일 하루 1000명대를 웃돌면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신풍제약의 말라리아치료제 ‘피라맥스정’(성분명 피로나리딘·아르테수네이트, Pyronaridine·Artesunate)이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회사 측에 문의가 급증하고 있고 실제 처방·조제가 가능한 병의원, 약국을 찾는 경우도 늘어났다.
줄곧 수출만 해오던 피라맥스는 올해 4월 국내 유통을 시작해 3분기까지 매출이 1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만통 이상 판매됐고 2만명 이상이 복용한 셈이다. 아직까지 부작용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국내에는 피라맥스 외에도 GC녹십자 혈장치료제 ‘GC5131A’, 셀트리온 항체치료제 ’CT-P59’, 종근당 혈액항응고제 및 급성췌장염 치료제 ‘나파벨탄(나파모스타트)’, 대웅제약 ‘호이스타정(카모스타트)’ ‘니클로사마이드 주사제’ , 한국유나이티드제약 ‘UI030(부데소나이드+아포르모테롤, 흡입복합개량신약), 제넥신 ’GX-17(지속형 인터루킨-7)‘ 등 14개 제약사가 12개 성분을 임상시험 중이다.
이들 중 유독 피라맥스가 잘 나가는 이유가 뭘까. 우선 피라맥스의 성분인 피로라니딘과 아르테수네이트가 결합되면 여러 바이러스에 대한 항생제 역할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특히 피로나리딘은 에볼라 바이러스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 아르테수네이트 역시 쥐 실험을 통해 사이토메갈로 바이러스(Cytomegaloviral diseases, 제5형 인간 헤르페스 바이러스(Human Herpesvirus 5; HHV-5))의 부하를 20배 가까이 줄인 게 확인됐다.
‘피라맥스’, 코로나19 억제 효과 … 영국·국내 연구진 논문 발표
말라리아 치료제로 개발된 이 약물은 코로나19에 대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나타낸다는 게 다수의 논문으로 발표됐다.
영국 런던 세인트 조지스 의과대학(St George's University of London) 연구팀에 따르면 사람 폐 세포(Calu-3 cell)에 바이러스를 감염시키고 약물을 투여해 경과를 살폈고, 피로나리딘과 알테수네이트가 하이드록시클로로퀸보다 각각 16배, 57배 강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보였다.
연구팀은 또 코로나19 질병 진행 과정을 4단계로 나눠 피로나리딘·아르테수네이트의 치료 가능성을 살폈다. 피로나리딘·알테수네이트 복합 성분은 △1단계 감염됐으나 무증상 △2단계 바이러스성 폐렴에서, 아르테수네이트 성분은 △3단계 진행성 호흡부전 △4단계 성인 호흡곤란증후군 및 복합장기부전에서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은 ‘Repurposing Antimalarials to Tackle the COVID-19 Pandemic’(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항말라리아제의 약물재창출)로, 기생충학 국제학술지 ‘Trends in parasitology’ 2021년 1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19일에 이미 전자 출판됐다.
지난 7월 고려대 의대 미생물학과 교수진, 질병관리본부와 신풍제약 등은 피로나리딘과 아르테수네이트는 인간 폐상피세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A형 독감 바이러스에 대해 높은 효과를 나타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참여한 연구진은 피로나리딘과 아르테수네이트의 항바이러스 효능을 아프리카 초록색원숭이 신장에서 유래한 섬유아세포인 베로(VERO) 세포와 폐상피세포(칼루-3)를 대상으로 검증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베로세포와 폐세포에 피로나리딘과 아르테수네이트를 주입한 후 24시간 지켜본 결과 베로세포에서는 효과가 미미했다. 이와 달리 폐세포에 주입하면 바이러스의 복제 속도를 억제하는 데 높은 효과를 보였다.
특히 아르테수네이트는 폐세포에서 A형 독감 바이러스 성장 억제에 더 높은 효과를 보이며 코로나19 또는 독감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아르테수네이트 활성대사물인 디하이드로아테미신(DHA)은 염증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어 패혈증으로 인한 폐손상에서도 직접적인 보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주목할 만한 것은 아르테수네이트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억제 효과가 베로세포에서는 한 때 코로나 치료제로 주목받았던 하이드로클로로퀸보다 미미했지만, 폐세포에서는 훨씬 뛰어났다는 점이다.
논문은 폐세포는 인간의 기도 상피세포에서 파생된 것이라 임상 단계에 있는 코로나 치료제로 가치를 부여한다면 베로세포에서 나타난 효과보다 대표성이 더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피라맥스 판매합니다” 온라인서 버젓이 리스트 나돌아 … 효능 있다는 후기도
이같은 예비적 연구에 온라인과 SNS상에서는 구입 가능한 약국 리스트가 공유되고 있다. ‘피라맥스정’은 코로나19 치료 신약후보물질로 경증 및 중등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 중이지만 임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투여받을 수 없다. 전문의약품으로 말라이아에 걸린 사람만 의사의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예방약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이를 상비약처럼 구비해 놓거나 예방 목적으로 복용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에 잘못된 정보의 확산과 심각한 오남용 문제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블로거는 ‘코로나 치료제 피라맥스 구입 방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리고 제품 사진과 구입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는 글을 블로그에 게재했다. 의약분업 예외지역 약국명을 공개하고 사전에 전화로 재고 확인을 하고 1인당 구입 제한이 있는지, 구입 조건이 있는지를 물어 보라는 안내로 구입 경로와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런 게시글을 올리는 블로거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효과가 있다는 복용 후기 또한 쉽게 검색되고 있다.
신풍제약·약사회 “피라맥스는 말라리아 확진자만 먹는 약”
‘피라맥스정’은 2011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산신약 16호로 허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유럽 의약품청(EMA)에서도 허가를 획득했다. 2018년 9월 27일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으로 승인받았다. 2011년 이후 지금까지 말라리아 치료제 등으로 쓰이면서 별다른 부작용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정이 아무리 다급해도 피라맥스정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이기 위해선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아무리 급속하게 확산돼도 2상까지는 마친 결과물이 있어야 긴급사용승인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헀다.
신풍제약 측은 피라맥스 코로나19 임상 2상이 순항 중이며 내년 4월 중 환자모집이 완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1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2상 시험계획을 승인받고 고려대 구로병원을 필두로 경북대병원, 고려대 안산병원, 아주대병원, 인하대병원, 한림대 성심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국립중앙의료원, 삼육서울병원 등 10개 병원에서 환자모집을 진행 중이다.
당초 올해 12월 중에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임상시험 참여기관들이 주로 중증환자의 치료에 집중하는 전담병원이라, 경증 및 중등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피라맥스 임상 환자모집이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신풍제약은 유제만 대표이사 명의로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안내문에서 “피라맥스는 말라리아치료제로 허가받은 전문의약품으로, 말라리아로 확진된 경우에 한해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복용할 수 있다”며 약물 오남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대한약사회도 최근 ‘피라맥스정 판매 주의 및 허가사항 준수’라는 공문을 통해 “일부 의약분업 예외지역에서 피라맥스정이 코로나19 예방 및 치료제로 불법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약사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약사회는 “의약품 전문가인 약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피라맥스 판매 시 허가사항을 준수하고 비윤리적 판매행위가 재차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을 이용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검증되지 않은 의약품을 판매하는 행위가 지속될 경우, 해당 약국 및 회원에 대해 고발 조치하고 약사회 약사윤리위원회에 징계를 요청하는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단호히 취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여전히 온라인상에는 피라맥스를 처방·조제할 수 있는 병·의원과 의약분업 예외지역의 약국 정보가 공유되고 있어 오남용에 대한 우려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늦어지는 임상 두고 “정부에 밉보였냐” 뜬소문도 … 신풍 “시스템 순리에 따라갈 뿐”
현재 ‘피라맥스정’과 관련된 모든 게 이슈다. 복용 후 약효가 너무 좋은 나머지 “효과가 좋은데 다른 치료제에 비해 임상이 너무 더디다. 혹시 정부에 밉보인 거 아니냐”, “임상환자 모집이 8명밖에 되지 않았다더라” 등의 뜬소문과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시작된 국내 유통을 두고서도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치료 유망후보로 떠오르자 오프라벨 처방을 기대해 뒤늦게 국내 유통을 시작했다는 설도 떠돈다. ‘피라맥스정’은 말라리아 치료제라는 특성상 국내엔 수요가 없어 아프리카 쪽에만 공급하는 수출용 의약품이었다.
신풍제약 관계자는 “말라리아 치료제여서 우리나라엔 환자가 없어 해외로 수출을 많이 했는데 병원에서 연락이 오고 찾는 사람이 있다보니 유통하게 됐다”며 “어떤 의료인은 대놓고 극찬을 하기도 하고 환자들도 코로나바이러스 치료제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뭐라고 코멘트 하기가 조금 그렇다. 아직 임상이 끝난 것도 아니고 한데 많은 분들이 찾아서 얼마 전에 회사 홈페이지에 자제를 요청하는 안내문을 올렸다”고 말했다.
임상에 진척사항 관련 떠도는 낭설에 대해선 이 관계자는 “환자 8명 모집도 낭설이다. 이건 우리가 의료기관에 문의해도 알려주지도 않는 부분”이라며 “어디서 8명이라는 숫자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임상이 늦어지는 것도 ‘우리가 정부에 밉보였냐’고 하는데 그런 건 없고 정부 시스템에 맞게 따라가는 것”이라며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끝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한 건 알지만 임상결과가 확실하게 나온 게 아니어서 신중하게 약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목소리들이 치료제 개발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효능이 나오지 않은) 의약품에 대한 지나친 맹신은 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