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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에도 수차례 국회 방문, “절박한 아동병원 상황 알려야”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12-04 15:19:06
  • 수정 2020-12-07 18:4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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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 “아동병원 내년 말까지 25~30곳 폐업 예상 … 책임지는 사람 없다”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
박양동 대한아동병원협회 회장과 취재차 여러 번 전화 통화를 했으나 만난 것은 지난 1일이 처음이었다. 첫 인상은 사진이나 음성보다 여렸다.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물어보면서 알았다. 그가 지난 5월 암수술을 받고 불과 한 달 전에 동시간 항암화학방사선요법(Concomitant CheomoRadiation Therapy, CCRT)을 받은 암환자임을.

“지난 5월 초에 구강암을 발견했죠, 꽤 퍼져있어서 급히 수술했어요. 정강이 뼈 일부를 떼어 하악(아래턱)에 이식했어요. 이후 항암치료는 3코스, 방사선치료는 32번 받았습니다. 얼마 전 치료가 마무리됐죠.”

항암치료 중 창원-서울 오가는 강행군 … 투표권 없는 아동은 정책적 약자, 목소리 높여야

마스크 아래 숨겨진 턱에서는 수술 자국이 선연했다. 하지만 사진보다 한층 살이 빠졌다는 것 외에 환자의 기운은 느낄 수가 없었다. 눈빛도 강하고 주장을 담은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다. 항암치료 과정 중에서도 일정표까지 만들어가면서 서울과 창원을 오갔다고 했다. 국회와 보건복지부의 문을 두드리며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및 전문의의 입장을 설명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대안이 될 정책을 제안했다.

본지와 만날 당일도 그는 정책 건의를 위해 그가 운영하는 창원의 서울아동병원의 급한 일을 마치고 상경해 국회에서 업무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가방에는 회무와 관련, 그가 모은 자료와 이를 근거로 정리한 건의서가 무겁게 담겨있었다.

이날에 국회 방문의 주요 이유는 유소아가 많이 맞는 백신의 유통과정 문제였다. 백신 유통 기록이 아직도 수기로 작성돼 오류가 많고, 유통과정이 빠르고 투명하게 확인되지 않고 있으니 전산화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국회 요로에 전달하고 설득했다.

“집사람이 걱정을 좀 하긴 해요. 아무래도 치료가 마무리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죠. 할 수 있는 한은 하는 겁니다.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도 하고요.”

그가 회장으로 있는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저출산 시대를 맞아 소아청소년의 건강 증진과 아동병원의 경영 환경 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목적으로 2017년 공식출범했다. 앞서 2007년 9월 경성된 '전국아동병원협의회'가 전신이다. 그는 2017년 회장으로 선임된 후 올해 4월 다시 재추대돼 연임 중이다.

아동병원은 소아청소년과를 기반으로 소아를 치료하는 2차병원이다. 협회의 창립 목적처럼 2017년에도 아동병원은 저출산에 따른 위기상황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출산‧고령화로 영유아·청소년 인구가 줄어드는 게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원인이라면, 성인에 맞춰진 지금의 의료정책은 당장 눈앞에 펼쳐진 아동병원의 위협 요인이다.
 
일례가 지난해 진행된 병실 급여화 문제다. 당시 정부는 2~3인용 병실에 건강보험급여를 적용하는 법안을 진행하면서 1인실을 이용하는 아동 환자에 대한 지원을 막았다.

아동병원 입원환자 대부분이 감염병으로 입원한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감염 예방을 위해서라도 1인실 입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간신히 아동병원의 1인실 급여화를 이뤄냈다.

“아동은 투표권이 없어요. 정책적으로 언제나 가장 약자가 되기 쉽죠. 아동병원 정책이 현실과 괴리되기 쉬운 것도 그런 이유에요.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잘 닿지 않는 거죠. 그래서 저라도 더 크게 저 많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 심각한 아동병원의 위기 … 매달 1~2곳 순 폐업 수준

임기 이래 늘 아동병원의 위기와 싸워온 그지만 그 중 가장 힘든 시기는 단연 올해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유행으로 환자가 급감하면서 설상가상 아동병원 관계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이제 심각한 절망에 가까워졌다.

“협회 회원인 전국 아동병원의 수는 130여개지만 이번 달에만 2곳이 폐업해서 지금은 128개입니다. 겨우 한 달 남은 올해 몇 곳이 무너질지, 내년에는 몇 곳이 고난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소아청소년과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지난 5월 디지털 헬스케어 솔루션 대표 기업 유비케어가 자사의 원외처방통계 데이터 분석 솔루션인 ‘UBIST’(유비스트)를 통해 도출한 자료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의 처방조제 총액과 처방 건수가 3월과 4월 대폭 감소했다. 특히 4월에는 처방조제액 총액이 전년 동기 대비 52%, 처방건수는 76% 급감했다. 지난 1분기 요양병원수가는 작년 대비 마이너스 23.2%를 기록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지난달 자신의 SNS에 “이대로라면 소청과 병의원들의 90%가 올 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박양동 회장은 소아청소년과를 기반으로 하는 아동병원도 형편이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아동병원협회가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년 대비 2020년 3~6월 외래환자 수는 59%, 입원환자는 73%가 줄었다. 이에 따른 외래수익은 50%, 입원진료수입은 71%가 감소했다.

총 진료수입은 작년과 비교해 40%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병원 당 적자 금액은 5억~10억원 수준으로, 하반기부터 환자 감소 폭이 심화돼 차입 경영을 하는 곳이 대다수다.

“대부분의 병원들이 직원을 축소할 수 있는 만큼 축소하고 병실도 줄이며 버티고 있어요. 규모를 의원급으로 슬림화해 운영하는 곳도 많구요, 그나마도 버티지 못하면 폐업을 하죠. 월 1~2개꼴로 폐업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내년 말까지 25~30개 정도가 더 폐업을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입니다.”
 
글로벌 제약사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성공적이라는 뉴스가 나오면서 곧 코로나19가 종결되고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이가 많지만 박 회장은 낙관론을 경계했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이 2~3년은 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변이가 쉬운 RNA형 바이러스인데다가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시노백 등 백신개발사 중 어느 곳도 아동을 대상으로 한 백신 임상을 진행하지 않아 아동병원이 지나야할 코로나19 터널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영하 70도, 영하 20도란 보관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화이자와 모더나의 까다로운 mRNA 백신 관리규정도 열악한 아동병원 상황으로는 큰 짐이다.
 
중앙정부 지자체 간 인식 차이로 아동병원 ‘호흡기전담클리닉’ 승인도 지연

이런 코로나19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그와 협회가 내놓은 모색안은 ‘호흡기전담클리닉’ 신청이었다. 정부는 올해 가을‧겨울 독감 유행을 대비해 기존 의료기관의 신청을 받아 호흡기환자를 전담할 수 있는 클리닉 500곳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동형 음압기, 이동형 방사선촬영기, 산소발생기, 혈압계. 체온계, 산소포화도측정기 등 요구되는 장비와 조건에 비해 지원금은 1억원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이와 함께 감염병 관리에 대한 부담 등으로 병원들의 신청이 저조한 상황이다. 현재 설립된 호흡기전담클리닉은 84곳으로 정부 목표량의 15%에 불과하다.

이에 아동병원들이 호흡기전담클리닉을 자원했다. 그만큼 경영악화가 심각할 뿐만 아니라 감염병 사태 속에서 호흡기질환을 앓는 아동의 전담 치료기관이 절실해서다. 하지만 막상 아동병원이 클리닉 개설을 신청해도 지역보건소는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보류하면서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80개 병원이 지원을 했는데 상당수가 답을 받지 못해 승인이 지연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호흡기증상을 보이는 아동들은 선별진료소 등을 전전하며 치료를 제대로 못받고 있고 병원들은 심해지는 경영 악화에 발을 구르고 있습니다.”

그는 지역보건소에서의 승인이 늦어지는 이유로 호흡기전담클리닉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인식에 차이가 있어서라고 지적했다. 왜 필요한지, 수행 방안이 뭔지에 대한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요즘 회원병원들과 보건소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모으고 공유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심각해지는 아동병원‧소청과 위기 … 당장 개선 안 돼도, 누군가 눈앞의 문제 해결해야

코로나19를 넘긴다고 해서 아동병원 혹은 소아청소년과의 위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과 불합리한 수가 등은 아동병원과 소청과의 위기의 근본적인 요인이다.

저출산으로 환자는 매년 줄어드는데, 소청과는 비급여 진료가 거의 인정되지 않아 별다른 수익 구조도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업무 강도는 매우 고되다. 최근 대한신경과학회가 올해 추계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청과 전문의 1인당 연간 응급진료 건수는 경증 136.4건, 중증 213.7건으로 모든 진료과에서 가장 많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젊은 의사들은 소청과 지원을 피하고 있다. 최근 마감된 전공의 지원에서 소청과 지원율은 33%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가장 경쟁률이 높은 빅 5병원의 소청과도 모두 미달되는 사태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아동병원뿐만 아니라 소청과 자체가 의사들이 없어서 명맥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한 해답을 묻는 질문에 박 회장은 뜻밖에도 방법이 없다고 대답했다. 당장은 어떤 방법이 나오지 않는다. 의사 인력 양성도, 출산율도 단기간에 해결되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서 계획해야 하는데 어느 정권, 어느 정치가도 나서서 책임지고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응급의료학과도 응급실이 존폐 위기를 겪고 나서야 현실적인 수가가 반영되고 학과가 만들어졌지요. 조만간 아동병원과 소청과가 고사할 상황 쯤 되면 그때야 답이 나올까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그의 손에는 ‘소청과 의료 시스템 유지를 위한 정책 건의안’이 언제나처럼 들려있었다. 인구청 신설, 주거공급모델 도입, 고용환경 개선, 지방 출산 장려 정책 광역화 등 건의 사항이 가득한 서류 뭉치는 그동안 고심한 흔적과 노력을 보여준다.

당장은 어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암과 투병 중인 몸으로 서울과 창원을 오가는 이유를 물었다. “누군가는 그래도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야죠. 그래야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겠어요? 그게 내 소명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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