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다. 이제 ‘애완동물’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반려’라는 그 의미처럼 반려동물은 소중한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이가 있거나, 알레르기 체질이 있는 가정에서는 반려동물로 인한 천식, 비염, 아토피 등 알레르기질환이 큰 고민거리다. 실제로 천식 환자의 경우 반려동물의 털이나 비듬이 알레르기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반려동물에서 유래되는 알레르기의 주요 항원은 털에 묻어 있는 각질, 침, 비듬, 소변 등에 포함된 단백질 성분이다. 이로 인해 가려움증, 콧물, 재채기, 기침, 호흡곤란, 가슴 답답함, 두드러기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아이가 반려동물 근처에 가거나 만진 후 이 같은 증상을 보인다면, 병원에서 혈액검사나 피부검사를 통해 알레르기 항원을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알레르기 피부반응 검사는 반려동물 알레르겐(알레르기 유발 항원)을 피부에 떨어뜨리고 바늘로 ‘따끔’하게 찌른 후 15분 정도 기다려 양성인지 음성인지를 가린다. 만약 양성이라면 모기에 물린 것처럼 부풀어오르고 주변이 붉게 변한다. 혈액검사는 반려동물 알레르겐과 반응하는 면역글로불린E(IgE) 항체의 양을 측정함으로써 이 수치가 높을 경우 특정 알레르겐에 노출돼 항원항체반응(알레르기반응)을 일으킨 적이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참고하게 된다.
일각에선 지나치게 깨끗한 환경보다는 다양한 미생물에 ‘약하게’ 노출되는 것이 아이들의 면역 체계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른 바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을 주장한다. 실제로 반려견과 함께 자란 아이들이 알레르기 발생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절반가량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려동물은 다양한 외부 미생물을 실내로 들여와 아이들의 장내 미생물 구성을 풍부하게 하고, 면역조절 기능 강화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가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유아기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아동기 천식 발병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연구 결과가 일관되지 않으며, 유전적 요인, 기존 알레르기질환의 유무, 반려동물의 종류나 환경 등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반려동물 양육이 알레르기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일부 연구 결과만을 근거로 안심하기보다는 가족의 건강 이력과 환경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약 15~30%에서 알레르기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와 고양이 중 특히 고양이 알레르겐은 알레르기 증상을 개보다 2배 이상 일으킨다. 직접 고양이를 키우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이런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예컨대 아이가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옷에 묻혀 온 고양이 알레르겐에 의해 알레르기질환이 나빠질 수 있다. 또는 예전에 고양이를 키웠던 집으로 이사를 간 경우에 몇 달 동안 알레르기 증상이 심해져 고생할 수 있다. 강희 고려대 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강희 고려대 안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부모나 가족 중에 알레르기 천식 병력이 있는 경우, 강한 유전적 요인이 작용해 반려동물이 아이들의 알레르기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이미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거나 진단받은 아이의 경우, 반려동물 노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려동물 알레르기 예방을 위해서는 반려동물에게 정기적인 목욕과 빗질을 통해 털과 비듬을 제거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배설물은 바로 치워 청결을 유지하고 카펫이나 천 소파는 알레르겐이 쌓이기 쉬우므로 피하거나 자주 청소하는 등 환경관리에도 신경 써야 한다.
반려동물과의 접촉을 가급적 줄이고 접촉 직후에는 손을 씻는다. 반려동물을 침실에 재우지 않고 가능하다면 활동 공간을 제한한다. 카펫이나 오래된 가구를 치우고 마루바닥을 장판이나 나무로 바꾼다. 침구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뜨거운 물로 세탁한다. 고성능 공기정화 HEPA 필터를 장착한 공기정화기를 설치한다. 1주일에 2번 이상 헤파필터 공기정화기를 가동하거나, 이중 처리된 먼지주머니가 달린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
반려동물의 털을 깎는다고 알레르겐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물론 털에 알레르겐이 많이 묻어 있으므로 알레르겐의 양을 줄일 수는 있지만,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되지는 않는다.
알레르기 항원을 사전에 파악하고 항히스타민제나 스테로이드제 등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항히스타민제는 전신 부작용이 경미한 편에 속하므로 필요할 때마다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 보호자가 알레르기가 있더라도 반려동물과 절대로 헤어질 수 없다고 강한 의지를 보인다면 환경을 관리하고 항히스타민제 등으로 알레르기 증상을 적극적으로 치료하면서 반려동물과 함께 지낼 수는 있다.
반면 전신 부작용이 강한 스테로이드의 경우 입으로 흡입하거나, 코 안에 분무하는 제형일 경우 전신이 아닌 몸의 일부에만 작용하므로 부작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알레르기 증상이 경미하고, 환경 관리 및 약물치료를 통해 잘 관리된다면 충분히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다만 반려동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면역세포가 알레르겐을 기억하고 과민반응을 준비하는 ‘감작(sensitization)’ 반응이 심화돼 증상이 악화되거나 비염, 천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증상 변화를 면밀히 관찰하고 정기적으로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중요하다.
감작반응을 활용한 면역치료를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체질을 바꿀 수도 있다. 즉 “원인 알레르겐을 피할 수 없다면 싸워 이기자”라는 접근이다. 면역치료는 크게 초기 치료와 유지 치료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초기 치료는 처음에 낮은 농도의 알레르겐을 소량씩 투여하고 점차 양을 늘려 나가 부작용이 없으면서 증상이 나아지는 최대 알레르겐 농도까지 투여하는 단계다. 유지 치료는 일정량을 주기적으로 투여하여 이를 유지하는 단계다. 보통 3~5년 동안 치료하며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처음에는 알레르기 치료제를 함께 사용하게 된다.
강 교수는 “만약 가족 구성원 중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거나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천식 등의 증상이 유발된다면, 반려동물을 다른 곳에 맡기는 등 가정에서 직접 양육하는 것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건강이 최우선이므로 반려동물 입양 전 충분한 정보를 습득하고, 꾸준한 환경 관리 등을 통해 모두가 만족하는 동행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