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사렙타·솔리드바이오사이언스 3파전 한창 … 유전자 스키핑→ 삽입→유전자가위 편집으로 진화
한동안 유전자치료제 개발을 멀리했던 릴리가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 전문기업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Durham) 소재 바이오기업 프리시전바이오사이언스(Precision BioSciences)에 1억3500만달러를 투입해 뒤센근위축증(Duchenne muscular dystrophy, 또는 뒤센근이영양증, DMD)을 비롯한 3가지 유전자치료제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고 지난 20일(현지시각) 밝혔다.
릴리는 선불금 1억달러를 지불하고 프리시전 주식을 3500만달러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또 개발 및 상용화 마일스톤으로 프리시전에게 제품 당 최대 4억2000만달러를 지불키로 약속했다.
이번 계약에 따라 프리시전은 전임상 연구와 임상시험승인(IND)에 필요한 연구까지를 담당하고, 이후에는 릴리가 임상개발과 상업화를 주도하기로 했다.
뒤센근위축증을 제외하고는 두 회사는 계약해 포함된 다른 표적 질환들을 밝히지 않았다. 이 소식에 프리시전의 주가는 발표 전 19일 종가 9.68달러에서 20일 장중 최고가 10.72달러로 10% 이상 급등했다.
이번 제휴로 지난 7월 최대 4억4500만달러 규모의 B형간염에 대한 협업을 길리어드가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파트너를 잃은 프리시전이 새로운 힘을 얻게 됐다.
릴리는 2019년 1월 항암제 전문기업인 록소온콜로지(Loxo Oncology)를 80억달러에 인수하면서 항암제 시장 게임에 늦게 뛰어들었다. 이는 항암제 신약에 ‘식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시그널이라고 당시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릭스(David Ricks)는 밝혔다.
그러나 릴리는 여전히 CAR-T와 유전자치료제 분야에 거리를 둬왔다. 현재로서는 많은 환자들이 사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릭스는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단일유전자결함을 고치는 유전자편집 치료제는 엄청나게 희귀한 유전자 결함 질환들에만 관련이 있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당시에는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후 릴리는 논조를 바꿨다.
릴리의 신형 치료제 담당 부회장인 앤드류 아담스(Andrew Adams)는 20일 보도자료에서 “프리시전과의 협력은 이전에는 약물을 사용할 수 없었던 표적과 적응증을 다루기 위해 유전자편집과 같은 새로운 치료 양식을 적용해 변혁적인 잠재력을 이끌어내려는 우리 비전의 실현에 또 다른 이정표를 제시한다”고 말했다.
양사는 프리시전의 ARCUS 게놈 편집 플랫폼을 사용해 새로운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할 예정이다. 이 기술은 내장된 안전스위치를 이용해 스스로 차단하기 전에 DNA 절편을을 삽입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귀소성 엔도뉴클레아제(homing endonuclease)라는 천연 효소를 기반으로 한다. 이 스위치는 게놈의 다른 곳에서 원치 않는 표적 밖의 편집을 방지하도록 설계됐다.
뒤쉔근위축증은 디스트로핀(dystrophin)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같은 이름의 단백질이 생성되는 것을 막는다. 이것이 없으면 심장을 포함한 근육섬유가 쇠약해져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소재 사렙타(Sarepta)는 뒤센근위축증(DMD) 치료제로 ‘엑손디스51’(Exondys 51, 성분명 에테플리센 eteplirsen)과 ’비욘디스53’(Vyondys53, 주성분 골로더센 golodirsen) 등 두 가지를 각각 엑손 51과 엑손 53 유전자를 건너뛰도록(skipping) 유도하는 약물로 시판 중이다. 이들 약물은 DMD 환자의 약 5분의 1에 효과가 있다.
예컨대 정상인은 DMD 관련 엑손 서열이 48, 49, 50, 51, 52 순서로 잘 정렬돼 있다. 하지만 엑손 51 환자는 49번과 50번이 결여돼 있다. 그런데 51번만 남아 있으면 성숙된 mRNA가 불안전해서 디스트로핀을 형성하지 못해 병이 생긴다. 엑손디스 51은 아예 51번을 제거함으로써 48번과 52번이 직접 연결되도록 유도한다. 이럴 경우 기능적으로는 디스트로핀이 생성되기 때문에 증상이 개선된다. 엑손디스 51은 엑손 51의 일부에 상보적인 인조 DNA 조각(phosphoramidite morpholino)이다. 비욘디스 53도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엑손 결여가 아닌 디스트로핀 돌연변이를 치료하는 유전자요법은 더 많은 환자에게 적용될 수 있다. 이를 노리는 화이자는 PF-06939926 유전자치료제로 1상을 마치고 연내에 3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하지만 1상에서 적잖은 부작용이 노출돼 3상에 들어갈 수 있을지 불안한 상황이다.
사렙타는 잘린 버전의 디스트로핀을 활용하는 마이크로디스트로핀 (micro-dystrophin)를 삽입하는 유전자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풀 버전의디스트로핀을 탑재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고용량을 아데노관련바이러스(AAV) 벡터(운반체)에 실어 체내에 주입하면 혈액을 타고 여러 근육에 정착해 디스트로핀 생산을 유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렙타는 이와 관련, SRP-9001로 2상을 진행 중이며 내년 초에 임상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3상은 이르면 올해 안에 시작된다. 애널리스트들은 시판될 경우 연간 최대 수십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소재 솔리드바이오사이언스(Solid Biosciences)는 같은 방식의 SGT-001로 임상 1/2상을 진행 중인데 안전성 문제로 중단됐다가 지난 10월 1일 재개가 허가돼 내년 초에 신규 환자를 등록받을 예정이다. 이르면 2022년에 데이터가 나올 전망이다.
솔리드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달 2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노바토(Novato) 소재 울트라제닉스(Ultragenyx)와도 제휴했다. 울트라제닉스가 주가에 50% 프리미엄을 얹어 솔리드 주식 780만주를 4000만달러에 사들이고 SGT-001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다.
일본 아스텔라스도 올해 12월 ASP-0367 유전자치료제로 1상을 시작, DMD 신약개발 경쟁에 뛰어든다. 유전자치료제 요소와 유전자 기반 의약품을 결합한 변형된 형태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의 에디타스메디신(Editas Medicine), 보스턴버텍스파마슈티컬스(Vertex), 스위스 크리스퍼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 등이 크리스퍼유전자 가위 편집 방식으로 DMD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화이자, 사렙타, 솔리드바이오사이언스가 추구하는 게 유전자 삽입 방식이라면 이들 업체는 유전자 편집이란 더 수준 높은 방식으로 접근한다.
버텍스와 크리스퍼테라퓨틱스는 지난해 6월 초 DMD 및 근위축증 1형(myotonic dystrophy Type 1, DM1, 근디스트로피 1형) 치료제 공동 개발을 위해 버텍스가 1억7500만달러 선불을 지급하고 최대 8억2500달러의 마일스톤을 지급토록 하는 계약을 맺었다. 두 회사는 이미 겸상적혈구빈혈과 지중해빈혈에 대한 유전자치료제를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버텍스는 크리스퍼유전자가위 전문 업체인 매사추세츠주 워터타운(Watertown) 소재 엑소닉스테라퓨틱스(Exonics therapeutics)도 1억7500만달러 어치 주식을 매입하고, 최대 8억2500만달러를 성공 보수금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인수했다.
낭종성 섬유증(cystic fibrosis) 치료제로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버텍스는 여기에 치중된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하기 위해 이처럼 2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한꺼번에 감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