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이전 허가된 희귀약 중 최소 11개가 제형 변경 통해 독점 기간 연장 … 제네릭 진입 막는 독소 없애려 입법
미국 정치권이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1983년 제정한 희귀 의약품법이 최근 수년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한 첫 걸음에 나섰다.
미국 하원은 지난 17일(현지시각)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는 두 가지 경로 중 하나로 7년간 희귀약의 독점판매권을 보장받으려면 시판 후 12년간 미국 판매를 통해 연구개발 비용을 회수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희귀의약품 독점권에 대한 공정성 법안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미국 펜실베니아 하원의원 마델린 딘(Madeleine Dean)에 의해 공동 발의됐다. 이 법안은 제약사들이 오래된 약들을 활용한 희귀의약품지정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막는다고 한다. 지난 2월 상원에 같은 이름의 동반성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미국에서 20만명 미만의 환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질환을 치료하고자 하거나, 개발자가 의약품 판매로 개발 비용을 회수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 7년간의 시장 독점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경로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받은 경우 현행법은 제약사가 시장에서 자신의 제품이 수익을 거둬들일 수 없는 것을 재차 증명하지 않아도 동일한 약품의 새로운 버전(제형)에 대해 시장 독점을 연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런 허점을 고치려는 게 법안의 취지다.
이런 입법 행위는 미국 버지니아주 체스터필드 소재 인디비오르(Indivior)의 오피오이드 중독 치료제인 부프레노핀(Buprenorphine) 관련 논란에서 비롯됐다.
이 약은 혀 아래 부분으로 투여되는 설하제로 오피오이드 위기가 시작하기 훨씬 전인 1994년에 ‘서브텍스’(Subutex)라는 상표로 7년 독점권과 함께 FDA 첫 승인을 받았다. 인디비오르는 2016년 ‘서브로케이드’(Sublocade)라는 새로운 주사제형에 대한 승인을 얻었고 또 7년 독점 권한을 받았다.
FDA는 2019년 말 인디비오르가 이미 수십 억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근거로 다른 부프레노핀 제네릭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당초의 희귀의약품 지정을 철회했다. 그러나 법의 허점은 그대로였다.
이에 하원은 법률이 제정되기 전에 이미 처리된 희귀약 독점권의 경우 시판 승인일로부터 60일 안에 최초 시판 후 12년 이내에 연구개발비를 회수할 것으로 합리적으로 예상하지 못했음을 증명해야 함을 제약회사들에게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됐다. FDA는 증명이 불가할 경우 독점 권한을 회수한다. 희귀의약품 지정과 최종 시판 승인 사이에는 종종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제약사들은 그동안 엄청난 폭리를 챙겨왔다.
업계와 일반인들은 희귀의약품법에 따른 동일 의약품의 영구적 독점을 자주 비판해 왔다. 새로 개발된 신약이 임상적으로 이전에 승인된 버전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제약회사가 증명할 수 없는 한 실질적으로 동일한 희귀약의 연속적인 독점을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FDA가 이를 막는 규정을 2017년에 도입했으나 그 이전에 출시된 희귀의약품은 적용을 받지 못해 문제로 지적돼왔다.
예컨대 미국 뉴저지주 우드클리프레이크(Woodcliff Lake) 소재 이글파마슈티컬(Eagle Pharmaceutical)은 혈액암 치료제 ‘트레안다’(Treanda, 성분명 벤다무스틴 Bendamustine)과 새로운 치료제인 ‘벤데카’(Bendeka, 성분명 벤다무스틴 Bendamustine)가 이런 허점을 이용했다.
둘 다 같은 활성 성분이 들어가고 만성림프구성백혈병 및 이전 치료에 듣지 않는 진행성 지연형(indolent, slow-growing) B세포 비호지킨 림프종을 적응증으로 한다. 그러나 벤데카는 단지 폴리카보네이트(olycarbonate) 또는 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acrylonitrile-butadiene-styrene, ABS) 소재 주사기에도 호환해서 쓸 수 있고 약물 주입 속도가 트레안다보다 빠르다는 이유로 독점권을 승계했다.
벤데카는 트레안다의 희귀의약품 독점권이 만료되자마자 2015년 말 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글파마가 벤데카에 대해 7년간의 독점권을 얻으려 들자, FDA는 벤데카 승인 후 지정된 ‘임상적 우위’ 규정을 들어 이를 저지하려 했다. 이글은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작년 2월 FDA에게 패소를 안겨주었다. 이에 따라 벤데카의 독점권은 2022년 12월까지 확보됐고 비논리적 판결로 30억달러의 비용이 환자의 지갑이나 의료보험 재정에서 지출돼야 한다.
FDA의 추산에 따르면 2017년 이전에 출시된 최소 11개의 약물이 ‘임상적 우월’ 조항 때문에 희귀약 지정이 거절됐지만 벤데카 사례 때문에 소송 등을 통해 그런 혜택은 유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