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진단기업인 일루미나(Illumina)는 2016년 분사시켰던 그레일(Grail)을 다시 인수키로 했다. 분사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수십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해 급성장한 그레일을 방치하느니 다시 사들여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심산에서다.
그레일은 탕자처럼 일루미나를 떠났다. 수익성 없이 돈만 축낸다는 시각에 분사했다. 이후 원활한 펀딩과 액체생검(liquid biopsy) 시장의 급성장으로 오명을 벗고 새로운 면모를 갖췄다.
과거 낭비적 투자로 생각했던 액체생검은 최근 수년 새 급부상했다. 그레일은 수만명 환자의 샘플 데이터를 바탕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액체생검의 위력을 창출해낼 수 있었다.
그레일은 9일(현지시각) 나스닥 상장(IPO)을 위한 신청서를 제출하고 자사의 테스트 상업화가 2021년으로 성큼 다가온 지금을 성경 속 비유처럼 ‘탕자가 집으로 돌아갈 적기’로 여기고 일루미나에 귀의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블룸버그는 16일 일루미나가 그레일과 합병 협의에 들어갔고 현재 가치에 30%의 프리미엄을 얹은 80억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재인수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빠르면 이번 주 안으로 최종 합의안이 나올 예정이다. 거래가 성사된다면 일루미나의 인수합병 역사상 제일 비싼 인수 사례가 될 전망이다. 한동안 진단 의료기기 전문회사였던 일루미나가 다시 진단검사 제품 생산 및 유통에 뛰어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루미나는 2015년에 모든 액체생검 일감을 그레일에 몰아주기 시작하더니 2016년 1월 분사시켰다. 시리즈A 투자로 1억달러를 모아준 건 덤이었다. 당시 투자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 아마존 회장 겸 CEO 제프 베조스(Jeff Bezos)의 투자회사 베조스익스페디션스(Bezos Expeditions), 아치벤처파트너즈(Arch Venture Partners) 등이 참가했다.
그레일은 이후에도 약 19억달러의 거금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ristol Myers Squibb), 미국 머크(MSD), 존슨앤드존슨이노베이션(Johnson & Johnson Innovation), 배리안메디칼시스템즈(Varian Medical Systems), 텐센트(Tencent) 등에서 투자받았다.
일루미나는 현재 그레일의 주식의 15%를 갖고 있다. 2017년 그레일은 일루미나가 보유한 자사 지분을 일부 인수했다. 이런 까닭에 양사의 이사회는 끈끈한 유대를 갖고 있다.
16일 재합병 뉴스가 터지자 일루미나의 주가는 10% 떨어져 321달러가 되었다. 합병 후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시장에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그레일은 자사의 혈액검사가 50가지 이상의 초기 암을 감별할 수 있으며 종양조직이 나온 위치를 밝혀 암 전문의의 진단 수고를 덜어줄 수 있는 데이터를 공개했다.
그레일은 이같은 액체생검 진단서비스의 출시를 내년으로 잡았다.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갤러리(Galleri)로 명명된 이 검사는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기 전까지 진단검사기관 전용 테스트(Laboratory Developed Test)로 판매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