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표적형 면역항암제로는 처음으로 삼중음성유방암(triple negative breast cancer, TNBC) 치료 적응증을 획득했던 로슈의 PD-L1 억제제 ‘티쎈트릭주’(Tecentriq 성분명 아테졸리주맙, atezolizumab)가 3상 확증시험에서 효과 재입증에 실패해 입지가 흔들리게 됐다.
티쎈트릭은 지난해 세엘진(Celgene)의 ‘아브락산’(Abraxane, 성분 알부민 결합 파클리탁셀, albumin-bound particle form of paclitaxel)과 병용요법으로 PD-L1 양성, 절제 불가능한 국소성 진행성 또는 전이성 TNBC 치료제로 가속승인을 받았다. 2상(IMpassion130, NCT02425891) 결과를 바탕으로 이전에 화학요법을 받지 않은 TNBC의 1차 치료제가 됐다.
그러나 로슈는 지난 6일(현지시각) 3상(IMpassion131) 연구결과 효과를 입증하지 못하는 실망스런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2상에서는 증상 악화 또는 사망위험을 20%가량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번 3상에서는 1차 지표인 무진행생존기간(PFS)이 유의할 만한 통계적 의미를 보이지 못했고 2차 지표인 전체생존기간(OS)도 부정적인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임상시험은 아브락산이 아닌 단순 파클리탁셀을 대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처방시장에서 밀릴 요인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로슈의 최고의학책임자(CMO)인 레비 개러웨이(Levi Garraway)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암과 면역시스템의 상호관계, 병용요법의 근간을 이루는 화학요법제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며 “공격적인 TNBC를 겪고 있는 환자를 위한 최적의 치료제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티쎈트릭의 실망스런 결과는 이미 작년 12월에 어느 정도 예견됐다. 당시 개최된 샌안토니오 유방암 심포지엄(San Antonio Breast Cancer Symposium) 이탈리아 연구자는 NeoTRIPaPDL1 임상연구 결과 유방암 수술 전에 티쎈트릭에 화학요법제를 병용하는 것은 화학요법제 단독 투여보다 이점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에 로슈는 이를 설욕하는 연구결과를 지난 6월 발표했다. 수술 전 티쎈트릭 및 화학요법제 병용이 화학요법제 단독 투여보다 수술 후 병리학적 완전관해(pathologic complete response, pCR)를 보일 경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티쎈트릭은 PD-L1 발현 양성 환자에게만 사용하게 돼 있으나 이 연구에서는 발현 여부와 무관하게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한 3상 IMpassion031 연구결과는 조만간 의학 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pCR은 수술 후 얼마나 암이 없는 상태가 오래가 지속되느냐를 나타내는 무사건생존기간(event-free survival)보다 중시되는 지표다.
티쎈트릭의 라이벌이자 표적항암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 머크(MSD)의 PD-1 억제제인 ‘키트루다주’(Keytruda, 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는 이와 대조적으로 NeoTRIPaPDL1와 똑같은 구도로 설계된 Keynote-522 임상에서 수술 전 화학요법제와 병용하면 단독으로 환자의 64.8%가 pCR을 보여 화학요법제를 단독 투여하는 경우의 51.2%보다 월등한 효과를 입증했다.
반면 티쎈트릭은 BRAF V600 유전자 변이 양성 진행성 전이성 또는 절제수술 불가 국소진행성 흑색종 적응증을 지난달 31일 획득했다. 로슈의 MEK 억제제 ‘코텔릭’(Cotellic, 성분명 코비메티닙, cobimetinib) 및 BRAF 억제제 ‘젤보라프’(Zelboraf, 성분명 베무라페닙 vemurafenib)와 병용하는 요법이 FDA로부터 우선심사를 거쳐 신속 허가받았다고 31일 공표했다.
이번 허가는 3상 IMSPIRE150 연구(NCT02908672)을 바탕으로 FDA 암연구센터(OCE)가 주도하고 미국·캐나다·호주 등이 공동 심사하는 ‘프로젝트 오르비스’(Project Orbis) 프로그램에 따라 이뤄졌다. 이 임상은 앞서 치료를 진행한 전력이 없는 BRAF V600 유전자 변이 양성 전이성 또는 절제수술 불가 국소진행성 흑색종 환자 514명를 대상으로 다기관, 이중맹검법, 위약대조 방식으로 진행됐다.
티쎈트릭+코텔릭+젤보라프 3중 병용요법군(시험군)은 무진행 생존기간이 15.1개월로 집계된 반면 코텔릭+젤보라프+위약을 병용한 대조군은 10.6개월에 그쳤다. 시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증상 악화 또는 사망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더 오래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입증됐다.
레비 개러웨이 CMO는 “BRAF V600 유전자 변이 양성 진행성 흑색종 환자들에게 면역관문억제제제(티쎈트릭)와 표적요법제(코텔릭, 젤보라프)를 병용 투여할 경우 증상 악화를 수반하지 않으면서 15개월 이상 생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FDA가 이들 병용요법을 승인함으로써 진행성 흑색종 환자들을 위해 중요한 진전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티쎈트릭 포함 3중 요법에서 가장 고빈도로 나타난 부작용은 발진(75%), 근골격계 통증(62%), 피로(51%), 간 독성(50%), 발열(49%), 구역(30%), 가려움증(26%), 부종(26%), 구내염(23%), 갑상선기능저하증(22%), 광민감성반응(21%) 등이었다.
로슈는 현재 폐, 생식비뇨기, 피부, 유방, 위장관, 부인과, 두경부 등에 생기는 암에 대해 다양한 3상 시험을 진행 또는 착수를 준비 중이다.
BRAF 억제제와 MEK 억제제
BRAF 유전자의 90%에서 V600E 변이가 일어난다. V600E 변이는 BRAF 유전자의 600번째 아미노산에서 발린(valine,V)이 글루타민산(glutamic acid, E)로 대체되면서 암으로 발전한다. BRAF-V600E 또는 BRAF(V600E)로도 표기한다. 단백질분해효소복합체(proteasome) 억제제가 잘 듣는지 알아보는 민감도 판정에 BRAF 유전자 돌연변이 검사결과가 지표로 활용된다.
체세포에서 발견된 BRAF V600E는 흑색종·유두갑상선암·대장암·난소암·비소세포폐암 등 다양한 암으로 발전하며, 생식세포에서 일어나면 심장얼굴피부증후군(cardiofaciocutaneous syndrome) 등 선천적 결손증을 일으킨다.
RAS-RAF-MEK-ERK 순으로 일어나는 발암 시그널 캐스케이드에서 BRAF 억제제는 BRAF-MEK 단계를 차단해 세포자살을 유도한다. MEK 억제제는 MEK-ERK 과정을 차단한다. MEK 유전자는 BRAF 유전자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MEK을 차단하는 약물은 BRAF 유전자 변이 흑색종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