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하면 내년 3월초 허가 가능 … 고용량서만 일상능력개선, 정통 평가지표 미충족, 2건의 3상서 일관성 못 보여줘
예상보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긴 했지만 바이오젠이 파트너사인 에자이와 함께 치매 신약후보물질인 아두카누맙(aducanumab)에 대한 바이오신약승인신청(Biologics License Application, BLA)을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했다. 지난해 3월 임상 3상 중간평가 결과 주요 효능을 충족시키지 못해 중단했던 바이오젠은 지난해 10월 임상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할로윈 주간을 앞두고 다시 허가 신청을 내겠다며 부활을 선언하더니 기어코 실행에 옮겼다.
올 1월 많은 애널리스트들이 수 주 내에 BLA를 신청해 연말까지 적응증을 획득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바이오젠은 지난 4월 올 3분기 내에 신청서류 제출을 마치기 위해 FDA와 눈을 맞추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8일 허가 서류가 접수됨에 따라 FDA는 최대 60일 동안 접수 인정 여부를 결정하고 이와 동시에 ‘우선심사’ 여부도 통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오젠은 유럽, 일본 등 기타 여러 시장에서도 아두카누맙의 허가신청이 이뤄지도록 보건당국과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
아두카누맙은 단일클론항체(Monoclonal antibody)의 일종으로 뇌 속에 쌓이는 노폐물인 베타아밀로이드(Aβ)의 응집을 차단하거나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허가가 나온다면 전혀 새로운 기전의 알츠하이머병 치매 치료제가 될 전망이다.
2015년 임상 1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 3상에서 2건의 임상시험을 동시에 진행했다. 여러 종의 원자 혹은 원자단이 반복 연결되며 형성돼 가장 난해한 베타아밀로이드(Aβ)의 올리고머(oligomer) 형태를 공격하는 기전을 확인했다. FDA 의약품신속심사(패스트트랙) 대상에 오르는 등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약으로 꼽혔지만 효능평가 기준 미달로 올해 초 시험을 중단했다.
아두카누맙의 운명은 FDA와 그 대표인 스테픈 한(Stephen Hahn) 국장이 기존 승인 표준(관행)에서 벗어나는 파격을 보일지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그동안 제약사들은 유효성을 입증할 실질적인 근거를 보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바이오젠은 위약보다 크게 나을 것 없는 임상 결과(치매척도점수)를 바탕으로 FDA에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허가 신청엔 초기 및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EMERGE’ 및 ‘ENGAGE’ 연구와 1b상 ‘PRIME’ 임상 결과가 근거로 동원됐다. EMERGE 연구는 고용량의 아두카누맙을 복용해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임상적 치매 증상 개선 지표를 보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환자군인데도 ENGAGE 연구에서는 위약을 복용한 환자보다 같은 치매 척도나 인지기능이 악화되는 결과를 나타냈다.
게다가 2019년 3월 개발 중인 의약품이 치료제로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 임상시험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무용성 평가(futility analysis)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임상시험을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이 회사는 7개월 남짓 지난 10월 무용성 분석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며 고용량을 복용한 소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즉 의도치 않게 ENGAGE 임상에 참여한 환자 가운데 고용량 투여군이 비정상적으로 적게 배정됐고(상대적으로 EMERGE 임상에선 많이 배정됐고) 이에 따라 통계 해석에 왜곡이 빚어졌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아두카누맙이 임상적 기능 쇠퇴를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를 추가해 보여주기도 했다.
바이오젠은 지난 8일 EMERGE 및 ENGAGE 시험의 임상 데이터를 새 단장해 공개했다. 피험자들은 간이정신상태검사(Mini-Mental State Examination, MMSE)에서 24~30점을 맞은 경증 환자였다.
1638명의 환자가 참여한 EMERGE 임상 결과 아두카누맙 투여군은 기억력, 방향감각(orientation), 언어구사력 등 인지력 및 기능의 퇴행 속도가 괄목할 만하게 둔화됐음이 눈에 띄었다. 특히 개인금융업무, 청소·쇼핑·빨래 등 가사활동, 독자적 외출 등을 포함한 일상생활 활동능력의 감퇴 속도가 더디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78주차에 도출된 임상치매등급평가 통합점수(Clinical Dementia Rating Sum of Boxes, CDR-SB)를 치료 시작 시점과 비교한 결과 고용량의 아두카누맙을 투여받은 환자는 임상적 퇴행이 통계적으로 괄목할 만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1647명이 참여한 ENGAGE 시험에서 고용량의 아두카누맙으로 치료를 진행한 환자들은 MMSE와 13개 항목의 ‘알츠하이머병 인지력 보조평가 척도’(Alzheimer’s Disease Assessment Scale-Cognitive Subscale, ADAS-Cog 13), 18개 항목의 경도인지장애 대상 ‘알츠하이머병 협력연구-일상생활능력평가’(Alzheimer‘s Disease Cooperative Study-Activities of Daily Living - Mild Cognitive Impairment 18-items version, ADCS-ADL MCI 18) 등의 지표를 적용했을 때 임상적 퇴행이 일관되게 감소한 것으로 입증됐다.
또 EMERGE 임상에서 26주차 및 78주차에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영상진단한 결과 저용량 또는 고용량의 아두카누맙으로 치료를 진행한 환자들의 아밀로이드 플라크 부담(amyloid plaque burden)이 위약 대조군에 비해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ENGAGE 임상의 경우 CDR과 인지기능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평가됐지만, 바이오젠 측은 세부자료를 보면 오히려 EMERGE 임상에서 확보된 결과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라고 신뢰를 심어줬다.
이밖에 MMSE 점수가 20~30점인 알츠하이머병 전조증상 또는 경증을 보이는 환자들이 참여한 1b상 PRIME 임상과 이를 연장한 LTE 임상 결과가 신청 서류에 포함됐다. PRIME 임상 결과 아두카누맙은 용량-시간 의존적으로 아밀로이드β 플라크뿐만 아니라 임상적 퇴행까지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LTE에선 48개월차까지 이같은 임상적 퇴행 감소가 지속된 것으로 관찰됐다.
이번 바이오젠의 BLA 제출 행보에 대해 투자기관인 제프리스(Jefferies)의 애널리스트인 마이클 이(Michael Yee)는 “BLA 제출이 늦어진 것은 FDA가 더 많은 분석자료와 정보를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3분기 초반에야 BLA 신청이 들어간 것은 지난해 12월 FDA의 중추신경계 심사 부서가 재정비되면서 알츠하이머와 뇌퇴행질환, 편두통 및 기타 질환 등 2개 조직으로 나뉜 탓도 있다”고 조망했다.
마이클 이와 투자기관인 캔터 피츠제럴드(Cantor Fitzgerald)의 애널리스트인 알레시아 영(Alethia Young)은 “FDA가 오는 9월초까지 신청 접수 여부를 결정하고, 처방약사용자수수료법(PDUFA)에 따른 신속심사를 통해 2021년 3월초까지 심사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향후 일정을 예측했다.
영과 그의 동료들은 “합리적으로 보면 FDA가 신청을 받아들일 것”이라면서도 “임상 통계 처리와 2건의 3상 임상에서 일관되지 않은 결과를 보인 점 등 복잡난해한 이슈를 감안할 때 결코 쉽게 승인을 받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RBC캐피털마켓의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아브라함(Brian Abrahams)은 승인 가능성을 30%로 점쳤다.
바이오젠의 CEO인 미셸 부나초스(Michel Vounatsos)는 보도자료에서 “알츠하이머병은 기억력과 독립성, 종국엔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초적인 일상능력을 강탈해 가는 파괴적인 질환”이라며 “아두카누맙의 BLA 제출은 이같은 증상과 질병의 병리적인 요소를 감소시킬 수 있음을 알리자 하는 첫 사례이고, 알츠하이머병 커뮤니티와 소통하면서 FDA의 심사가 원활히 진행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베어드(Baird)의 애널리스트인 브라인 스코르니(Brian Skorney)는 “산더미 같은 데이터를 갖다줘도 아두카누맙은 임상적 이점을 가져다주지 못했다”며 부활의 기회를 일축했다. 그는 작년 12월 “만약 바이오젠이 이같은 임상 데이터 처리 방식을 다른 연구에도 적용했다면 주가가 떨어졌을 것”이라며 “그런 데이터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결국 “기준은 FDA가 유효성을 입증할 실질적인 근거에 의해 승인한다는 것이고, 아두카누맙의 누적된 임상 데이터는 그 표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이라고 혹평했다.
아두카누맙의 승인에 중요한 또다른 변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통적인 심사 잣대에 맞지 않아도 특정 지표에서 상당한 유효성이 입증된다면 난치희귀질환에 한해 적극적인 승인을 촉진하는 분위기가 지난 하반기부터 조성돼왔으나,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부실 대응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어두워지면서 여기에 희망을 거는 것조차 어둡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