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 논란을 무릅쓰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치료제로 첫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렘데시비르(remdesivir) 약값이 1병(바이알) 당 공공보험 가입자는 390달러(약 47만원), 민간보험 가입자는 520달러(약 63만원)로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책정됐다.
대다수 코로나19 환자는 5일의 치료기간 중 총 6개 바이알을 맞게 돼 390달러 기준으로 환자 1인당 2340달러의 약가를 부담해야 한다. 390달러는 미국 등 모든 선진국(developed nations) 정부 조달에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 5월초 적정 약가 결정을 위해 약물의 유효성을 측정하는 미국의 임상경제평가연구소(Institute for Clinical and Economic Review, ICER)는 임상시험에서 파악된 환자들의 수요로 볼 때 렘데시비르의 총 치료가치는 약 4460달러라고 추산했다. 지난달 24일에는 렘데시비르의 비용효과적인 적정 가치는 임상 결과와 길리어드와의 소통하는 과정에서 4580~5080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슬그머니 올렸다.
그러면서도 지난달 영국 정부가 저렴한 제네릭 스테로이드인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이 침습적 기계호흡을 하는 중증 환자의 사망위험을 35%, 비침습적 산소호흡기 치료를 받는 환자의 사망률을 20% 낮출 수 있다고 발표한 것을 의식, ICER은 만약 덱사메타손과 렘데시비르의 약효를 비교하는 논문(peer-reviewed paper)이 나와 덱사메타손의 표준치료로 인정된다면 렘데시비르의 가치는 2520~2800달러로 떨어질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또 렘데시비르가 실제 임상현장에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임상현장에서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 가치는 310달러로 전락할 수 있다고도 했다.
ICER이 계산한 10일분 렘데시비르 생산 원가는 10달러지만 치료효과는 그만큼 높다는 판단이다. 미국은 약가 책정에 정부가 관여하지 못하고 제약사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인도 정부는 지난달 21일 자국 제약사인 헤테로랩스(Hetero Labs)와 시플라(Cipla)에게 렘데시비르 제네릭 시판을 승인했다. 길리어드는 방글라데시, 북한,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남아프리카공화국, 필리핀, 벨라루스 등 저소득 127개국에 특허 비용을 받지 않고 제네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방글라데시는 세계무역기구(WTO)가 규정하고 있는 최저개발국가(LDC)에 포함돼 지난 5월 22일 복제약(제네릭) ‘벰시비르(Bemsivir)’를 출시했다.
ICER은 인도의 경제력과 길리어드의 브랜드를 감안할 때 렘데시비르의 치료 가치는 390~780달러로 산정했다. 인도는 렘데시비르 제네릭 한 바이알에 80달러의 가격을 매겼다.
렘데시비르의 허가 승인 임상인 ACTT-1 연구결과 중증 코로나19 환자에서 렘데시비르의 사망위험 감소효과는 위약 대비 7.7~13%로 나타나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데이터가 아니었다. 렘데시비르의 간과 신장 부작용 논란도 만만찮다. ICER이 단서를 달긴 했지만 하양 조정된 2520~2800달러의 가치를 의식해서 일까? 길리어드사이언스의 다니엘 오데이(Daniel O’Day) 회장은 결국 지난달 29일 내놓은 보도자료를 통해 환자 1인당 2340달러의 약가를 기준선으로 제시했다.
오데이 회장은 보도자료에서 “최근 수 주 동안 길리어드가 렘데시비르 약가를 어느 정도 선에서 책정할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다. 렘데시비르가 첫 번째 코로나19 항바이러스제로 떠오른 가운데 현재의 팬데믹 상황에서 약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실행방안(playbook)은 마련하지 못했다. 약가 책정과 관련, 막중한 책임감과 투명성 확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고 배경 설명을 했다.
그는 “임상시험에서 중증 코로나 환자의 회복기간이 위약(15일) 대비 4일 단축돼 조기 퇴원하는 효과는 환자 1인당 약 1만2000달러의 비용절감 효과로 이어진다”며 “렘데시비르가 제공하는 잠재적 가치(potential value)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치를 밑도는 선에서(well below this value) 렘데시비르의 약가를 결정했다”며 “시급한 세계적 수요가 촉발되고 있는 시점에서 포괄적이고 공평한 접근성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모든 선진국에 바이알 당 390달러의 약가를 책정한 것은 선진국 중 가장 낮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적정한(affordable) 수준으로 할인된 약가를 제시한 것으로서 개별 국가별로 약가협상을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오데이 회장은 단언했다.
신속한 공급을 위한 제조시설 확대, 수개월간 빈곤국에 지원된 렘데시비르 무상제공, 추가적인 유효성 및 안전성에 입증에 필요한 임상시험 비용 등을 감안할 때 결코 과도하게 약가가 책정된 게 아니라는 정황적 설명도 오데이 회장은 곁들였다. 공은 길리어드 뒷마당에 떨어졌다. 빈곤국에 기부하기로 한 초기물량 150만도스는 지난달에 거의 바닥 나 추가 생산이 필요하다.
길리어드는 미국 정부에 50만도스를 당장 공급해야 한다. 7월 생산분의 100%, 8~9월 생산분의 90% 정도다. 나머지는 임상시험용 의약품이다. 미국 정부는 아메리소스베르겐(AmerisourceBergen) 도매상을 통해 이윤을 붙이지 않고 공급할 예정이다. 병원이 6도스를 구입할 경우 출하가 3120달러(560달러짜리 6도스)에 도매 유통마진을 붙여 3200달러(도매가)를 지불해야 한다.
길리어드는 또한 미국 보건부(HHS)와 합의해 보건부와 각 주정부에 9월말까지 렘데시비르의 병원 공급을 책임지되, 이후로 공급 제한이 완화되면 보건부가 더 이상 공급을 관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데이 회장은 말했다. 이는 추후 약가가 올라갈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길리어드는 향후 임상연구에 돈 들어갈 일이 많다고 엄살을 떨었다. 코로나19 외래환자들에게 렘데시비르의 비강흡입형 제형에 관한 임상을 조만간 시작한다. 또 렘데시비르를 항염증제이자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인 로슈의 ‘악템라주’(Actemra 성분명 토실리주맙, tocilizumab) 또는 릴리의 ‘올루미언트’(Olumiant, 성분명 바리시티닙 Baricitinib)와 병용하는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오데이 회장은 렘데시비르 연구개발 및 제조역량 확대에 연말까지 10억달러 이상을 투자할 것이고, 이같은 노력은 내년과 그 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6월 11일 길리어드 투자자들은 렘데시비르 약가가 높게 산정되길 바랐다. 월스트리트의 증권 애널리스트들은 렘데시비르 가치가 5000달러에 달한다며 추켜세웠다. 이런 가격이 성립되면 올해 19억달러의 매출을 긁어모을 것이고 2022년에는 정점에 달해 76억달러 매출이 가능하다고 투자기관인 SVB리링크(Leerink)는 최근 추산했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 조달 가격이 2340달러로 책정되자 길리어드는 내년에 150만명분이 팔려나가고 23억달러를 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RBC캐티털의 애널리스트 브라이언 아브라함(Brian Abrahams)는 지난달 29일 투자자 레터에서 밝혔다. 길리어드가 향후 10억달러의 렘데시비르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힌 만큼 순이익은 13억달러 정도 되는 셈이다.
아브라함은 “향후 코로나19에 대한 집단면역이 형성될 수도 있고, 주사보다 편한 제형의 다른 신약들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길리어드가 렘데시비르로 큰 수익을 올릴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백악관 대변인인 케일리 매커내니(Kayleigh McEnany)는 “트럼프 행정부는 길리어드 약가 정책에 지적할 아무런 입장도 갖고 있지 않다”며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병원은 입원치료 비용만 받을 뿐 약가를 통해 먹을 게(수익을 낼 게) 없다. 환자는 가격을 더 이상 따져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진보 정치가나 시민단체 등은 길리어드의 약가 책정이 과도하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길리어드의 탐욕은 멈춰야 하다”며 “길리어드의 150억달러가 넘는 순자산은 부분적으로 렘데시비르와 같은 기존 파이프라인에서 나온 이윤으로 축적된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약가 정책에 종종 쓴소리를 하는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Public Citizen)은 렘데시비르의 약가와 관련, “오만함의 방자한 전시(offensive display of hubris)”라며 “공공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또 지난달 30일 트위터를 통해 “3000달러 이상이 드는 코로나19 렘데시비르를 개발하는 데 납세자가 7000만달러(임상시험 비용 면세 혜택)을 지불했기 때문에 공공성의 영역에 둬야 한다. 그러나 빅파마는 강탈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길리어드에게 트위터를 해 약가가 조정되도록 창피를 주자”고 직격했다.
목소리 높은 환자단체인 ‘Patients For Affordable Drugs’(경제적으로 감당할 만한 의약품을 바라는 환자들)는 길리어드를 “COVID-19 팬데믹을 틈 탄 이익착취자(profiteer)”라고 비난했다. 이 단체의 대표이자 설립자인 데이비드 미첼(David Mitchell)은 길리어드의 해명 대신 개발에 소요된 비용내역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녀의 동료인 벤 와카나(Ben Wakana) 실행이사는 “팬데믹 상황에서 신약에 대한 약가 책정의 플레이북은 없었다(There is no playbook for how to price a new medicine in a pandemic)”는 오데이의 발언을 풍자해 “소아마비 솔크 사균백신은 특허가 없었다. 당신은 태양에도 특허를 낼 것인가? 반팅(Banting 인슐린 발명자 중 하나)은 인슐린은 내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에 속한다. sooo(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힐 때 쓰는 구어 감탄사) 그런데도 플레이북이 없었다고?”라는 보복성 트윗을 날렸다.
의약품 가격정책 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왔던 미국 아이오와주 공화당 출신 미 상원 법사위원장인 척 그래슬리(Chuck Grassley)는 공식 논평 대신 “의약품에 혁신이 필요하지만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엔 더 낮은 처방 비용을 원할 당연한 요구가 있다. 빅파마는 납세자의 요구에 상응하는 약가를 고수하라”고 트윗했다.
션 디킨슨(Sean Dickson)은 미국 서부보건정책센터(West Health Policy Center)의 보건정책 총괄은 “길리어드의 가격 책정은 소비자가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며 “미국민은 다시 한번 정정당당해져야 한다. 길리어드가 약가의 가치를 입증할 충분한 임상 데이터도 없이 팬데믹 위기를 빙자해 불공정한 가격을 소비자에게 청구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갤럽의 2주 전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제약업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악용해 약값을 매우 올리고 있다는 의견이 55%, 그런 경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33%로 거의 90%에 가까운 미국민이 약가 인상에 염증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많은 미국 의사들과 여권 정치인들은 △입원 기간 단축으로 총 치료비가 절감된다는 점 △생명의 소중함을 우선가치로 보면 사망위험 감소 효과와 덱사메타손 대비 비용효과를 따져야지 가격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점 △다수 언론이 정부 사이드(Medicare, Medicaid, Federal Employee Health Benefits Program (or) state employers 등)에 렘데시비르 할인 혜택이 미친다는 점(민간보험보다 싸게)을 소홀하게 다룬 점 △코로나19 타개에 분투하고 있으나 의기소침해진 트럼프 행정부에 힘을 실어주자는 취지 등으로 길리어드의 가격정책을 옹호하고 있다.
미국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길리어드의 예상보다 낮은 약가 책정으로 수익성이 다소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다른 선진국에서 적정한 마진을 취하고 추가 약가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은 점 등을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는 렘데시비르 수입자인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와 협의해 의약품 무상공급을 계약을 체결하고 1일부터 국내 공급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번 달까지만 무상공급 물량을 우선 확보하고, 다음달부터는 가격협상을 통해 구매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계약의 도입 물량과 가격 등 구체적인 내용은 길리어드사와의 계약조건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다.
과도하게 약가가 책정됐다고 미국에서도 비난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한국의 경제력 수준에 맞는 약가가 책정될지, 아니면 ‘선진국 대접’을 받아 고스란히 환자 1인당 2340달러를 부담해야 할지 국민 감시의 눈초리가 매서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