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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 제초제 ‘라운드업’ 소송에 13조원 지급 합의 … 판매는 계속
  • 손세준 기자
  • 등록 2020-06-25 19:53:07
  • 수정 2020-06-29 09: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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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만건 순차적 해결 전망, 2만5000명은 “치료비도 안돼” 합의 거부 … 발암성 부인, 발암경고문 부착 회피에도 성공
발암물질 글리포세이트로 인한 피해 소송이 12만5000건에 이르고 거액의 합의금 지급이 예고된 상황에서도 판매를 지속해 논란이 되고 있는 바이엘의 제초제 '라운드업'
바이엘은 제초제 ‘라운드업(Roundup)’의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성분이 암을 유발해 피해를 입었다며 제기된 12만5000건에 달하는 미국 소송에 109억달러(약 13조원)의 합의금을 지불하고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24일(현지시각) 발표했다. 하지만 라운드업의 발암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판매도 계속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또 12만5000건 중 약 2만5000건은 합의에 동의하지 않아 말끔한 해결이 이뤄지려면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라운드업은 2018년 6월 바이엘이 농업기업 몬산토(Monsanto)를 인수하면서 획득한 제초제 브랜드다. 몬산토는 과거 살충제 DDT와 베트남전에서 고엽제로 쓰인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를 미군에 공급했지만 발암성 등으로 금지되면서 1974년 환경친화적 제초제를 표방하는 라운드업을 출시했다. 회사를 키운 간판 상품으로 미국 등 160여개국에서 판매됐다. 주요 소비처는 미국이었다.

이 제품은 2015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발암성 물질로 분류되면서 미국에서 최소 12만5000건에 달하는 줄소송을 당했다. 바이엘은 이번 결정으로 전체 소송 중 약 80%인 10만 여건에 대해 합의하기로 결정하고 총 88억~96억달러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소송 및 집단 협상에 대비해 12억5000만달러를 별도로 준비한다. 

앞서 지난 5월말 블룸버그통신 등은 총 100억달러의 합의금이 소요될 예정이고 진행 중인 소송에 80억달러, 예비비에 20억달러를 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번에 바이엘이 해결 금액을 제시함에 따라 올해에 50억달러, 내년에 50억달러가 지출될 전망이다.

연방법원이 법정 중재인으로 지명한 케네스 파인버그(Kenneth Feinberg) 공익 변호사는 “이번 합의는 건설적이고 온당한 해결방안”이라며 “2만5000건의 소송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지만 몇 달 안에 마무리되면 더 이상 재판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9.11 피해자 보상기금, BP 딥워터 호라이즌 참사(루이지애나 유정 해상 누출), 폭스바겐의 디젤 배기가스 배출 스캔들 등 굵직한 쟁점을 중재한 변호사다.
 
바이엘은 수십 년간 자체 연구를 진행한 결과 라운드업 제초제가 사람이 사용하기에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제품의 활성 성분인 글리포세이트가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지난 22일 미 연방대법원 내 상소관할법원(3심)이 라운드업에 발암 경고문을 붙여야 한다는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요구를 기각하면서 발암 경고문을 부착할 의무도 사라졌다.

바이엘 측은 라운드업의 위험성을 독립적으로 검토할 5인의 전문가 회의를 구성하기로 소송 대리인들과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라운드업과 암의 관계를 조사해 결과를 미국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며, 4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 조사를 마치기 전까지는 새 소송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년간 경영상 악재가 일시 해소된다는 메시지다. 

최종 결과에서 라운드업과 발암 관계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미국 내 소송은 더이상 이뤄지지 않는다. 발암 연관성이 인정되면 각 사건별로 개별적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라운드업을 사용하며 정원사로 14년을 일한 뒤 골수 종양을 얻은 존 라무노 씨(72)는 이 합의가 큰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합의금을 받아도 40%는 변호사 비용으로 쓰고, 치료비 10만2000달러(약 1억4000만원)도 부담해야 한다. 생계비까지 고려하면 합의금으로 최소 50만달러(약 6억원)는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대 금액으로 발표한 96억달러를 약 10만명으로 나누면 합의금은 치료비에도 못 미치는 1인당 약 10만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아직 합의하지 않은 2만5000명을 대리하는 짐 온더(Jim Onder)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합의금이 너무 적어 합의를 거부했다”며 “계속해서 바이엘의 책임을 추궁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엘은 2018년 몬산토를 무리하게 인수한다는 비판을 감수하고도 글로벌 화학·제약·농업기업의 인수합병(M&A) 열풍 속에 이 분야 세계 2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일념으로 합병을 강행했다. 인수 금액은 630억달러(약 76조원)에 육박해 1998년 다임러벤츠의 크라이슬러 인수 금액인 386억달러(약 45조원) 이후 20년 만에 독일 최대 M&A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합병한 뒤 2개월 만에 라운드업 피해자에 대한 첫 배상판결이 나오면서 줄소송이 이어졌다.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짊어질 위험이 커지면서 회사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주요 투자자들도 승소하지 않는 것 외에는 회사가 신뢰를 회복할 방법이 없다고 분석해왔다.

2018년 100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하던 바이엘 시가총액은 지난달 28일 몬산토 인수금액 630억달러보다 적은 612억달러(약 73조원)로 40% 가까이 떨어졌다가 합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주가가 상승해 24일 기준 700억달러(약 84조원)로 회복했다. 

와르너 바우만(Warner Baumann) 바이엘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결정은 오랜 기간 이어진 바이엘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며 “현재 진행 중인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의 소송 위험성까지 대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바우만은 지난 4월 이 회사 주주총회에서 압도적인 신임을 얻었다. 총회에 앞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캐피털 인터내셔널의 자회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바이엘 경영진이 신탁 의무와 몬산토 인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의견을 내고 신임 찬성 투표를 권고했다. 반대로 경쟁 경영자문 회사인 글래스 루이스(Glass, Lewis & Co.)는 주주에게 투표에 기권할 것을 요청했다.

이같은 투자자문사들의 상징적인 지지 의사 표시는 1년 전 실시된 바이엘 경영진의 리더십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가결됐지만 지난 2월에야 베르너 웨닝(Werner Wenning) 전 바이엘 이사회 의장이 사퇴하고 후임으로 그를 도와 2018년 몬산토 인수를 주도했던 바우만 CEO의 지속 집권에 힘을 보태는 신호가 됐다. 웬닝은 지난 2월 주주총회에서 공식 사퇴하고 노르베르트 윙켈조한(Norbert Winkeljohann)에게 예정보다 2년 빨리 이사회 의장을 넘긴 뒤 54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바이엘이 예정대로 110억달러에 이르는 합의금을 지급하면 지난해 말 미국 제약사 퍼듀(Purdue Pharma)가 마약성 진통제인 오피오이드(Opioid) 성분약 ‘옥시콘틴(OxyContin)’ 중독 피해자에 지급하기로 합의한 100억달러를 넘는 최대 규모 배상액 지급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바이엘이 불명예스런 1위에 올라도 자리를 오래 지키진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스라엘 제약사 테바(Teva Pharmaceutical)가 퍼듀와 같은 오피오이드 성분 제네릭(복제약)을 판매한 데 따른 책임으로 각 지역별 합의금과 연방정부의 가격담합 적발 과징금을 납부할 입장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총 배상액 규모가 23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테바는 지난해 5월 미국 오클라호마주에서 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 남용 문제에 기여했다는 혐의를 해결하기 위해 8500만 달러, 지난해 10월 오하이오주에선 의약품 도매상인 카디널헬스, 아메리소스버진, 맥케슨과 함께 2억6000만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테바는 아편유사제 제품인 ‘액틱(Actiq)’, ‘펜토라(Fentora)’ 등을 판매해 왔다. 

테바와 함께 26개 제약사에 포함된 노바티스 계열 산도스(Sandoz), 테바(Teva), 마일란(Mylan), 화이자(Pfizer), 악타비스(Actavis) 등도 곧 연방정부의 가격담합 조사 결과에 따라 대규모 합의금 납부가 예상된다.

미국 각 주정부 법무당국은 2009년부터 2016년까지 7년간 미국 46개 주(州)·컬럼비아특별구·4개 미국령 등 51개 지역에서 80여종의 제네릭 의약품을 대상으로 가격 담합을 모의해 환자 수백만명이 저렴하게 약을 구입할 기회를 박탈하는 등 공익보다 이익을 우선시한 범법행위를 저질렀다며 26개 제약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윌리엄 통(William Tong) 코네티컷주 법무장관은 “조사 대상 회사 임원들이 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 전시회, 저녁 파티 등을 이용해 가격을 담합하고 경쟁을 피한 게 사실이라고 자백했다”며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기업 카르텔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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