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예부터 ‘백약의 으뜸’ 또는 ‘정신을 미치게 하는 광약’으로 불리며 양면성을 지닌 채 인류와 함께 해왔다. 한국은 음주에 무척 관대한 나라다. 폭음 문화도 심각하고 음주로 인한 실수도 쉽게 용서해주는 풍토가 잡혀 있다. 과거에 비해 건강을 중시하는 사람이 늘면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밤이면 길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애주가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소량의 음주가 몸에 좋다는 주장도 있지만 과음이나 폭음은 결코 건강에 이로운 게 아니다. 절제하는 음주 습관이야말로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위한 미덕이다. 중국 집권자였던 덩샤오핑은 매일 오찬 후에 적포도주를 딱 반잔씩만 마시는 습관으로 장수했다. 술이 아무리 좋아도 건강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즐겨야 의미가 있다. 음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본다.
1. 술도 잘 마시면 약이 된다?
술을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주장은 매일 소량(30ml)를 마시면 혈중 콜레스테롤 성분에 영향을 미쳐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과 같은 관상동맥질환 발생 위험을 낮춘다는 연구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문제는 애주가에게 ‘적당한’ 혹은 ‘소량의’ 알코올 섭취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술을 즐기는 습관은 대개 건강을 해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알코올을 장기간 섭취하면 교감신경 흥분, 간문맥 좁아짐 등 다양한 원인으로 혈압이 높아져 오히려 관상동맥질환 위험을 가중시킨다. 명확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통계적으로 그렇게 나와 있다.
알코올 중독자를 오래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술이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은 너무 많다. 간질환·암·뇌혈관질환·췌장염 등을 유발하고, 영양결핍이나 성기능장애를 초래하기도 한다.
2. 자주 마시는 술이 폭음보다 더 해롭다?
간헐적 폭음과 상습적 소량 또는 적량 음주 중 뭣이 더 해로울까. 대다수 연구는 매일 술을 마시는 게 1주 1~2회 폭음하는 것보다 간에 해롭다고 밝히고 있다. 간이 쉴 새를 주지 않아 간질환에 더 잘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간학회는 간헐적으로 술을 마시는 게 매일 마시는 경우보다 알코올성 간질환 발생이 증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다.
2009년 3월 영국 사우스햄튼대 닉 셰런 박사팀은 간질환을 앓는 234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이들 중 106명이 알코올성 간질환(ALD)이었고 80명은 만성간염, 간경변증 등 중증 간질환을 갖고 있었다. 음주패턴을 분석했더니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 중 71%는 매일 술을 마시고, 8%는 매주 4일 정도 한두 잔 정도를 마셨다. 약 80%가 습관적 음주자이고, 나머지 20%는 폭음 스타일의 음주자란 얘기다. 셰런 박사는 “알코올을 얼마나 오랫동안 마셨는지가 알코올성 간질환 발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매일 마시면 1주 한번 정도 폭음하고 간을 쉬게 하는 것보다 훨씬 간에 해로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또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는 평균 15세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한 반면 다른 간질환 환자들은 대부분 20세 이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보다 자주 마시는 게 심방세동 위험을 더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종일 고려대 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가검진을 받은 수검자 중 심방세동을 겪은 적이 없는 978만명을 대상으로 2009~2017년 심방세동 발병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음주 빈도가 심방세동을 일으키는 가장 큰 위험요소인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음주 빈도가 음주량보다 심방세동 발생과 더 밀접하게 연돤됐다. 술을 매일 마시는 사람은 1주일에 2회 술을 마시는 사람보다 심방세동 발생 위험이 1.4배 높았다. 최 교수는 “심방세동 유발 요소 중 음주 빈도는 개인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며 “심방세동을 예방하려면 음주량은 물론 횟수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동안 간질환 발병은 평생 마신 총 음주량에 비례한다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술의 총소비량은 사망률과 질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견해가 더 지배적이다. 소량의 음주라도 자주 마신다면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3. 숙취 해소엔 해장술이 제격이다?
과음한 뒤 쓰린 속은 술로 풀어야 한다는 게 애주가들의 지론이다. 이들은 술판을 벌인 다음날 아침에 또 술을 마시면서 해장을 한다. 숙취는 술에 미량으로 함유된 숙취유발 불순물인 푸젤오일(아밀알코올,부틸알코올,프로필알코올 등)과 미량이 메탄올, 에탄올이 대사돼 생겨나는 포름알데하이드에 의해 유발된다.
과거에는 메탄올을 술(에탄올)로 오인하고 마셨다가 눈이 멀거나 심한 경우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에탄올 이외의 성분이 일으키는 숙취는 몽롱함과 구역질을 기본으로 한다. 이를 당장 해소하려는 욕구에 다시 에탄올을 찾게 되는 게 해장술의 유혹이다. 해장술은 일시적으로 숙취를 해소해줄지 몰라도 습관화되면 간을 혹사시키는 지름길이다. 밤새 시달린 간이 겨우 정신을 차리는 데 다시 주먹을 한 방 날리는 것과 같다.
숙취 해소에는 콩나물국, 조개국, 북어국, 추어탕, 귤, 딸기, 오이, 수박, 인삼, 칡차 등이 권할 만한 음식이다. 술을 마신 다음날 커피, 우유, 탄산음료 등을 마시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음료는 위산분비를 촉진하고 속을 쓰리게 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4. 술은 다이어트의 적이다?
술꾼들은 살이 찌면 ‘이게 다 술살, 아니 안주살이야’라고 우긴다. 알코올은 ‘빈 칼로리’라며 술은 괜찮고 안주가 살찌게 한다고 믿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주 한 병의 평균 열량은 408㎉로 쌀밥 한 공기보다 높다. 알코올은 1kg당 약 7kcal의 열량을 낸다. 이 열량은 체내 수분을 고작 땀과 호흡의 연속으로 날려보내는 데 사용될 뿐 저장되지 않는다. 술을 마시면 온몸에 일시적으로 열이 났다가 알코올 대사가 끝날 무렵에 체온이 급강하하며 한기가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히려 비타민과 무기질을 유실시켜 인체의 신진대사와 전해질 평형을 깨뜨린다. 간에 있는 영양분의 소모도 촉진한다.
술을 마시면 알코올로 만들어진 에너지가 먼저 쓰이게 되고, 안주 속의 지방과 탄수화물은 더디게 흡수돼 결국 체내에 저장된다. 더욱이 상습적인 알코올 섭취는 탄수화물을 중성지방으로 변환시키는 대사경로를 발달시킨다. 이에 따라 중성지방이 간에 축적돼 지방간이 되기 쉽다. 술과 곁들이는 안주에 지방질이 많다면 알코올에 더욱 잘 녹아 흡수되기 쉬우므로 살이 찔 수밖에 없다.
5. 불면증에는 술이 효과적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술을 찾는 것은 버려야 할 습관이다. 알코올 효과로 쉽게 잠이 드는 것 같지만 실제로 알코올은 수면리듬을 어지럽히고 깊은 잠을 방해한다. 중간에 잠이 깰 확률도 높다. 일반적으로 잠이 들면 가장 얕은 1단계 수면을 시작으로 점차적으로 더 깊은 단계로 진행하는 2~4단계 수면을 거친다. 음주 후 수면을 취하면 처음부터 3~4단계로 진행해 결국은 수면구조가 깨지고 새벽에 자주 깨기 쉽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올라갈 때는 잠이 오지만, 시간이 지나 알코올이 분해돼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생성되기 시작하면 각성 작용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 알코올은 호흡중추 기능을 저하시켜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을 초래할 수 있다.
6. 알코올은 심장질환 예방에 좋다?
레드와인의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은 혈중에 나쁜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킨다고 연구돼 있다. 주종에 상관없이 모든 알코올은 소량만 섭취할 경우 심혈관 질환에 좋다는 견해도 굳어져 있다. 소량이란 소주 한두 잔, 와인 또는 맥주 한 잔 정도다. 소량의 알코올이 혈관과 심리적 긴장을 이완시켜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논지였다.
미국국립알코올연구소(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 Alcoholism, NIAAA)는 간이나 췌장, 기타 다른 장기손상 및 안전사고를 고려해 성인 남자는 하루에 2잔, 임산부를 제외한 여자는 1잔씩 마실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소량의 음주라도 여성의 유방암 발생 위험을 크게 높인다. 하루 5잔 이상씩 장기간 과음하면 심장근육이 약해지거나 심장의 용적이 20~30% 늘어나 전반적인 혈액순환이 악화될 수 있다.
7. 술 마실 때 안주를 많이 먹으면 덜 취한다?
에탄올은 20%가 위에서, 나머지 80%는 소장에서 흡수된다. 에탄올이 흡수되는 속도가 곧 술에 취하는 속도다. 대부분의 음식은 에탄올 흡수 속도를 늦추므로 적당한 안주를 먹게 되면 취하는 속도가 느려진다. 하지만 빨리 취하지 않을 뿐, 취하는 정도는 마신 술의 양과 정확히 비례한다. 안주를 많이 먹을수록 술의 흡수가 천천히 이뤄지기 때문에 술 깨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
안주는 위장을 보호하고 알코올의 급속한 흡수를 막아줄 수 있다. 그러나 기름진 안주는 지방간을 초래한다. 또 안주는 위에서만 알코올을 커버해주고 소장에서는 그 역할이 미미하다. 무턱대고 안주를 많이 먹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 알코올 해독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 무기질, 단백질 등이 풍부한 것을 적당량 섭취하는 게 좋다. 두부, 기름기 없는 등심, 과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8. 주종에 따라 취기도 다르다?
15~30%의 알코올 도수를 가진 술이 가장 빨리 흡수된다. 따라서 맥주(4%)나 양주(40%)보다 소주(15~25%)나 청주(15~18%)에 더 빨리 취한다. 또 샴페인처럼 탄산가스를 발생시키는 술은 그렇지 않은 술보다 더 빨리 취하게 만든다. 탄산가스가 위벽을 자극해 알코올 흡수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술에 콜라나 사이다를 타 먹으면 더 잘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막걸리는 도수가 10도 안팎인데다 불순물이 많아 이것이 위벽에 달라붙어 취기를 오래가게 했지만 최근 시판용 막걸리는 도수도 7도 정도로 낮아지고 정제도 깔끔해져 숙취가 상당히 줄었다.
빨리 취하는 술이라고 간에 더 무리를 주는 것은 아니다. 술의 독성은 주종에 상관없이 섭취한 절대 알코올량에 비례한다. 도수가 낮은 술이라도 많이 마시면 도수 높은 술을 먹는 것 못잖게 간에 해를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