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상자 감염·집단면역 파악 도움 … 美 이동해제 위한 근거로 삼을 움직임, WHO는 ‘근거없다’ 반대
방역당국이 국내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에 걸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항체검사’ 도입을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27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은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지역사회 감염이 있던 대구·경북 지역을 대상으로 어느 정도 감염률을 보이고 어느 정도 항체가 형성됐는지 집단면역에 대한 조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어느 정도 샘플을 대상으로 테스트할지 또 정확하게 항체를 평가할 검사법이 무엇인지 내부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뒤인 28일엔 국내 신종 코로나 집단면역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어떤 항체검사법으로 항체 양성률을 확인할지를 전문가와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면역 증거 ‘항체’ 검출, 빠른 대신 부정확 … ‘집단면역’ 파악 가능
항체검사는 혈청 속에 항체를 검출하는 ‘혈청검사’의 일종이다. 항체는 병을 앓고 난 뒤 생기는 ‘면역의 증거’로 항체검사를 하면 과거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병에 걸리면 체내에서 이를 막기 위해 이뮤노글로불린M(IgM), 이뮤노글로불린G(IgG) 같은 항체를 형성한다. 이 항체를 검출해 바이러스 감염 여부와 면역 형성 여부를 간접 확인할 수 있다. IgM는 감염 초기 면역 반응에, IgG는 감염 전반의 면역 과정에는 관여한다.
항체검사는 10분 정도면 결과를 알 수 있어 빠르지만, 병원체의 유전물질(RNA)를 직접 증폭해 검출하는 현재의 확진법인 역전사 실시간중합효소연쇄반응(RT-PCR)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또 COVID-19를 일으키는 ‘SARS-CoV-2’의 경우 감염 뒤 약 7~10일 뒤부터 항체가 형성되기 시작해 방역에 특히 중요한 초기 감염자를 발견할 수 없어 확진용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정은경 본부장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항체 신속진단키트를 허가했지만 환자 확진 검사용으로는 쓰지 않고 보조용으로 사용하고, 자가진단보다는 검사실이 있는 곳(의료기관)에서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FDA 홈페이지에 따르면 28일 20시 현재 FDA는 50개 신종 코로나 진단키트에 긴급사용승인(EUA)을 내줬고 이 중 분자진단(유전자 검출)은 한국의 시선바이오머티리얼스(SEASUN BIOMATERIALS) 등 42개 품목, 항체진단은 애보트래버러토리(Abbott Laboratories) 등 8개 품목이다.
그럼에도 항체검사를 진행하려는 이유는 이를 통해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가 얼마나 퍼져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상 없이 또는 가볍게 앓고 지나간 무증상자까지 파악해 지역사회 감염 패턴과 면역 형성율 등을 분석할 수 있다.
국민들을 상대로 대규모 항체검사를 진행하면 국내 ‘집단면역’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집단면역(集團免疫, herd immunity이란 한 집단 구성원의 일정 비율 이상이 감염되면 집단 전체가 감염병에 저항력을 갖게 되는 단계에 도달한다는 면역학적 개념이다. 신종 코로나의 경우 공동체의 60% 이상이 면역력을 갖게 되면 집단면역이 형성된다고 추측된다.
미국·유럽 등 항체검사 결과 방역방침 반영 추진 … WHO, 재감염 위험 경고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 1일 셀렉스(Cellex)사 제품을 신종 코로나 항체검사 시약으로 첫 긴급사용승인을 내린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공격적으로 항체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지난 23~24일 주 내 5개 도시 40곳에서 3000명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항체검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뉴욕시에서 21%의 사람에게 코로나19 항체가 발견됐다. 롱아일랜드 17%, 웨스트체스터 12%, 나머지 뉴욕주 지역 는 4%였다. 뉴욕주 전체로는 약 14%가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 관련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월드오미터’(Worldometer)에 따르면 지난 27일까지 뉴욕주 신종 코로나 환자 수는 29만3991명이고, 사망자는 2만2275명으로 치명률은 7.6%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 주민의 21%를 확진자 및 완치자로 상정하면 치명률은 1% 미만이 된다.
쿠오모 주지사는 “검사를 통해 이동제한 조치를 해제할지 여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항체검사 결과를 방역방침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과 남미 등에서는 아예 항체검사를 통해 항체가 생긴 이들에 대해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면역여권(immunity passports)’을 발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26일 파울라 다사 칠레 보건부 차관은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완치한 사람들에게 면역여권을 발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책을 염두에 두고 이탈리아 역시 다음 달 15만명, 영국은 연내 30만명의 항체검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체가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WHO는 지난 25일 “신종 코로나 항체를 가진 사람이 재감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주장엔 어떤 과학적 증거도 없다”며 “이런 오류가 자칫 ‘감염병의 지속적인 창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입장을 담은 자료를 온라인으로 배포했다.
이와 별개로 WHO는 이달 초 ‘연대2’라고 이름으로 전세계 항체검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증상 또는 경증 환자를 포함해 인구집단에 널리 퍼진 감염 환자를 찾아 정확한 바이러스 역학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당국, 방법 고민 중 … 식약처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발표
국내 방역당국은 해외 일부 국가들처럼 항체검사 결과를 방역 방침을 결정하거나, 확진 환자 판정하는 용도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역학적 조사자료로만 사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방역당국은 항체검사를 국민을 표본으로 하는 국민건강영양조사와 연계하거나 헌혈자 혈액의 일부를 확보해 검사하는 방법 등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8000여명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부터 항체검사가 시행될 것이란 추측이다.
방역당국이 항체검사 도입을 검토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발표한 코로나19 체외진단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에 항체검사법을 포함시켰다. 항체검사법의 임상시험 방법과 유효성 기준 등 평가 방식을 업계에 공지한 것이다. 다만 항체 진단키트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을 허용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았다.
아직 국내에서 식약처 인증을 받은 신종 코로나 관련한 항체검사키트(면역진단제품)가 없는 만큼 실제 항체검사가 이뤄지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