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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 속 빛 발한 ‘과잉’ 병상 … 공공의료 시스템 개선 목소리
  • 김지예 기자
  • 등록 2020-04-14 17:58:18
  • 수정 2020-04-14 21: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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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 대비 병상수 OECD 2위, 완치율과 사망 감소에 긍정 영향 … 공공의료기관 비율 10% 불과
인구당 병상 수가 많은 수록 신종 코로나 사태의 피해가 적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가운데, OECD에서 2번째로 병상 수가 많은 국내에서는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10%이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국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를 이겨낸 데에는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취급받았던 과잉병원‧과잉병상 현상이 기여했다는 주장이 논문으로 입증됐다.  하지만 비상사태에 즉각 동원될 수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10%에 불과해 장기적인 신종 코로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OECD 평균 2.6배 많은 병상 수 … ‘고질적 병폐’에서 ‘자산’으로 재평가
 
신종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수많은 피해를 내고 있지만 인구 대비 병원수와 병실수가 많은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치사율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국내외에서 나와 이목을 끈다.
 
지난 12일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오랫동안 독일의 정치인과 보건경제학자들은 너무 많은 병원과 병상이 있다고 비판해왔지만, 신종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독일의 과잉병상 현상은 자산이 됐다"고 보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인구 10만명 당 독일의 집중치료실(ICU) 병상 개수는 33.9개에 달한다. 반면 신종 코로나의 최대 피해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스페인은 9.7개, 이탈리아는 8.6개에 불과하다. 

14일 오후 5시 기준 독일의 치사율은 2.36%인 반면 이탈리아 12.8%, 스페인 10.3%에 이르고 있다. 4배 안팎의 많은 ICU 병상 수가 치사율을 5분의 1 수준으로 낮추는 데 효자 노릇을 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독일 당국의 2017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 전체 ICU 병상 가운데 14%는 상급 종합병원이 아닌 840여개의 소형병원(병상수 200개 미만)에 배치돼 ICU 병상의 고른 분포가 신종 코로나 관련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된 것으로 평가됐다. 독일의 ICU 병상 추가 확보 속도도 세계적 수준으로 빨랐다. 동일 당국은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달 모든 병원의 중요하지 않은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도록 하고, 모든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사태 초기 75~80%였던 일반 병상 점유율이 50%로 줄었고, 그만큼 신종 코로나 환자를 위한 병상 확보가 신속하게 이뤄져 독일 내 ICU 병상 수는 코로나 발생 초기 2만8000개에서 최근 4만개 이상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의 경우 신종 코로나 확산 전 5223개 ICU 병상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난 8일까지 총 6634개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스페인의 신종 코로나 최대 확산 지역인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도 각각 1893개와 2010개의 ICU 병상을 확보했을 뿐이었다.


인구 1000당 병상 수 대비 COVID-19 완치 환자 관계 그래프. 서울대 제공
국내에서도 인구 대비 병상 수가 신종 코로나 완치자의 수와 비례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지난 7일 서울대 의대 코로나19 과학위원회는 확진 환자 3000명 이상 발생한 23개국을 대상으로 인구 1000명당 병상 수와 코로나19 완치율을 비교했다.

병상이 12.3개인 한국은 완치자 비율이 62.3%다. 병상이 8개인 독일은 완치율 27%로 3위를 차지했다. 독일 다음으로 병상이 많은 오스트리아(7.5개)는 완치율 8위다. 북반구 중 병상이 가장 적은 스웨덴은 완치율이 15위에 불과했다. 병상이 적은 것과 완치율은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았으나, 병상 수가 많은 것은 완치율과 비례했다는 게 서울대의 분석이다.
 
그동안 병원‧병상 수 공급과잉은 국내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다. 국내의 병원의 병상은 OECD 평균인 4.7개의 약 2.6배에 이른다. 인구 100만명 당 자기공명영상장치(MRI)와 컴퓨터단층촬영(CT) 보유 대수도 OECD 평균보다 29.1대, 38.2대 각각 더 많아 세계 최상위권으로 분류됐다. 지난해 20일 보건복지부는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인 병상수급관리를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개정안을 공표했고, 올해 2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료개정법이 시행되기 전 1월에 신종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서울의료원 등 69개 병원은 신종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자 황급히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고 1만7000여 병상을 마련했다. 인구에 비해 많은 병상이 빛을 발한 것이다.
 
공공의료기관 병상 전체 10% … 장기전 대비해 즉각 동원 가능 시스템 만들어야
 
하지만 과잉병상 현상 속에서도 재난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공공의료기관 병상은 너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료기관의 90%가 민간의료기관인 상황에서 국가적 비상사태에서 상시 활용할 수 있는 공공병상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번 신종 코로나 사태에서도 공공병상이 부족해 민간 의료기관이 공공병상 역할을 맡았다.
 
윤강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연구센터장은 지난달 22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응을 통해 살펴 본 감염병과 공공보건의료’ 보고서에서 “신종 코로나 확산 상황에서 병실 부족으로 자가격리 중 사망한 환자가 나타난 배경에는 민간 중심으로 병상을 확충해온 공공보건의료체계 문제점이 잠재해 있다”고 짚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 지역 상황처럼 짧은 시간에 환자가 급증할 경우, 지역 의료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하는 공공보건의료체계가 작동해야 하지만 시스템이 신속하게 운용되지 못해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윤 센터장은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이 낮은 현실에선, 감염병 대응을 위한 민간 의료기관의 협조와 투자를 끌어내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음압병상 설치·운영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지원하거나, 긴급 환자가 다수 발생할 경우 손실보전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족한 공공의료기관의 병상을 확충하고 민간병원 병상을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지난 13일 한겨레 기고문을 통해 “전체 병상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4명 중 3명을 진료한 반면, 전체 병상 중 90%를 보유한 민간병원은 나머지 1명만 진료하는 데 그쳤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대구·경북에서 병상이 부족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송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는 병상을 즉각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원은 병상이 부족했던 반면, 잉여 병상을 보유한 민간병원은 신종 코로나 환자에게 병상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신종 코로나와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대규모 환자 발생에 대비하여 즉각 병상을 동원할 수 있는 감염병 진료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편가른다' 반발 속에 현장에선 공공의료 강화 시스템 필요성 인정

김 교수의 기고문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14일 성명문을 내고 “협력이 절실한 시점에 의료체계를 민간과 공공으로 단순하게 이원화하고 편가르기를 한다”며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다 희생된 동료와 진료현장을 묵묵하게 지키고 있는 수많은 의료인들을 모욕하지 말라"고 강력 항의했다.
 
하지만 발언의 수위와 별개로 현장에서는 대체로 공공의료기관 병상 수 확대와 공공의료 강화 시스템 정검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민간 병원들이 전담병원으로 동원된 지 한달이 지나면서 병원의 피해도 커지고 환자 역시 치료에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시설이 부족한 제주도의 경우 제주대병원을 비롯해 도내 의료기관 세 곳이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병상의 60%인 3백여 병상을 비우면서 출산한 임산부가 입원할 병실이 없어 당일 퇴원하기도 했다.

이에 14일 호남권 광역시도의회 의장단은 전남도의회에서 긴급 간담회를 갖고 국회에서 수 년째 표류중인 남원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법 처리를 공동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공공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 중 5.7%에 불과하고 의료인력 역시 턱없이 부족해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안정적인 공공보건인력 확보를 위해선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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