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젠, 릴리, 다케다, 그리폴리스, 비르바이오, 앱셀레라, 셀트리온, GC녹십자 등 … 거대사는 혈액 전문 바이오기업과 제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치료제 분야에 ‘혈장항체’(바이러스 중화 항체)’ 개발 계획이 속속 나오고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지난 1일 중증의 코로나19 환자 3명에게 이미 완치된 환자의 항체가 든 혈장을 수혈해 2명이 살아나는 효과를 봤다고 해 국내서도 화제가 됐다.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말라리아약 ‘클로로퀸’ 등이 코로나19 치료제로 용도 전환을 모색하는 가운데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장에서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를 추출해 이를 치료제로 개발하려는 국내외 제약사들의 움직임이 ‘과당 경쟁’이란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암젠, 릴리, 다케다제약 등 다국적제약사가 나섰고 국내서는 셀트리온과 GC녹십자가 경쟁 대열에 동반했다. 다국적제약사들은 기존 혈액제제 전문 바이오텍 기업과 파트너십을 형성해 시장진입 속도를 높이려 애쓰고 있다.
암젠은 항체 전문기업인 어댑티브바이오텍(Adaptive Biotechnologies)과 손을 잡았다. 코로나19의 원인 바이러스인 ‘SARS-CoV-2(학술명)’를 직접 표적하는 ‘완전 인간화 중화 항체(fully-human neutralising antibodies) 약물’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다. 어댑티브는 코로나19 완치 환자에게서 추출한 B세포 수용체의 유전적 다양성을 빠르게 선별, 검사할 수 있도록 자사의 대량신속처리(high throughput) 플랫폼을 확대할 예정이다.
암젠은 세계적 수준의 항체공학 및 신약개발 역량을 활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항체를 선별하고 생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아이슬란드에 위치한 자회사 디코드제네틱스(deCODE Genetics)를 통해 감염 후 중증으로 악화됐다가 완치된 환자를 중심으로 유전정보를 수집할 계획이다.
코로나19 완치 환자에서 얻어진 인간화 항체를 양산하는 플랫폼 개발에는 5~6개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바이러스 중화효과가 가장 강력한 항체를 선별해 낸 뒤, 추후 두 세개의 항체를 병용하는 임상에 본격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회사 측은 “감염 환자 이외에도 건강한 인원들에 추가 감염을 막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감염 위험도가 가장 높은 병원 의료진들에 예방적 용도로 이러한 항체 약품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다케다도 미국 펜실베니아주 CSL베링(CSL Behring) 등 세계 제약회사들과 제휴했다고 지난 7일(미국 현지시각) 발표했다. 다케다가 개발하는 치료제는 사람의 혈액에서 유래한 것으로, 다케다와 CSL베링은 이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양사가 제휴로 혈액 수집 등 개발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제휴에는 CSL베링 외에 영국 바이오프로덕트랩(Bio Products Laboratory), 스위스 옥타파마(Octapharma), 미국 바이오테스트(Biotest plasma), 프랑스 LFB제약그룹, 독일의 모 기업 등 모두 혈액을 수집하고 치료제를 만드는 혈장분획제제에서 우량 기업들이 참여했다.
다케다는 9~18개월 안에 임상시험을 마치고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개발 계획을 공개한 다케다의 ‘TAK-888’은 ‘다클론 과다면역글로불린(polyclonal hyperimmune globulin) 항체’이다. 회복된 환자로부터 수집한 혈장에서 병원체-특이 항체를 농축해 만들어내는데, 이 항체를 새로운 환자에게 주입함으로써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감염에 면역반응을 유도해 회복 가능성을 높인다. 다케다는 지난해 희귀질환 전문기업인 샤이어(shire)를 620억 달러 규모에 인수하면서 혈장에서 바이러스의 항체를 분리해내는 기술을 확보했다.
앱셀레라(AbCellera)는 지난달 12일 다국적제약기업인 릴리와의 코로나19 항체 생산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비르바이오텍(Vir Biotechnology)도 같은 시기에 바이오젠과 항체 생산 제휴를 맺었다. 이들 회사는 주요 항체 후보군을 대상으로 1상 및 2상 임상을 올 2분기부터 시작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스페인 그리폴스(Grifols)는 지난달 16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및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iomedical Advanced Research and Development Authority, BARDA)와 공조해 항체 치료제를 개발키로 했다. 그리폴스는 미국 보건당국의 협조를 받아 코로나19 완치 환자 혈장에서 고도면역 면역글로불린(hyperimmune immunoglobins)을 뽑아 전임상과 임상 테스트를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FDA and BARDA to collaborate with Grifols on COVID-19 therapeutics
국내사로는 셀트리온이 지난달 23일 오는 7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치료제 인체 임상시험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날 서정진 회장은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회복환자의 혈액에서 항체 후보군(라이브러리)을 구축하고 항원에 결합하는 300종의 항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며 “2차 항체 후보군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경쟁의 관건은 결국 개발 속도에 달려 있다”며 “24시간 3교대 연구로 이를 해결해나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GC녹십자는 지난 2일 개발 중인 코로나19 혈장치료제 후보물질 ‘GC5131A’ 가 올해 하반기 상용화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GC5131A는 코로나19 회복환자의 혈장에서 다양한 항체가 들어있는 면역 단백질만 분획해서 만든 고면역 글로불린(Hyperimmune globulin)이다. 일반 면역항체로 구성된 대표적인 혈액제제 면역글로불린(Immune globulin)과 달리 코로나19에 특화된 항체가 더 많이 들어 있다.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액에 기반한 항체 치료제에 대해 김홍진 중앙대 약대 교수는 “치료효과가 안정되고 부작용이 적은 이점이 있는 반면 대규모 혈장 확보가 원활하지 않고 항바이러스제제가 먼저 나올 경우 개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으며 항체의 질이 높게 확보되지 않으면 의사나 환자들로부터 불신을 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너무나 많은 혈액제제 대표기업들이 나서고 있기 때문에 과당 경쟁으로 볼 수 있으며, 개발 속도가 경쟁에서 성패를 좌우하는 기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