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간 508건 발생, 8% 2차감염 … '막아달라' 요청에도 정부, 법적 불가 원칙만
전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등 ‘생활방역’에 애쓰고 있지만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이 보건당국과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는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로 외국인과 해외 체류 내국인의 국내 유입, 교회·요양병원·콜센터 등 소규모 집단감염이 꼽히고 있다. 방역을 위해 한시적으로 내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전면 입국 금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반복 중이다.
해외 유입 확진자 5일간 1.5배 증가 … 입국 막아달라 국민청원 20여개
2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확인된 국내 신종 코로나 확진자 중 해외 유입 사례는 601명으로 전날과 비교해 41명 늘어났다. 지난 29일 0시 기준 해외 유입 사례는 412명으로 5일간 약 46% 증가한 셈이다.
일일 신규 확진자 중에서 해외 유입 사례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지난 1일 신규 확진자 89명 중 입국 검역에서 확인된 이는 18명으로 약 20%를 차지한다. 검역을 통과한 후 자택에 귀가했다가 지역사회에서 양성으로 확인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해외 유입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귀국한 유학생 딸과 엄마가 양성인 줄 모르고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증상 발현으로 자가격리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비난을 받은 ‘강남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외국 유입자로 인한 2차 감염도 증가했다. 2일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주간 직간접 해외유입 사례 508건 중 약 8%인 41건이 2차 감염 사례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자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해외 입국을 제한하거나 막아달라는 국민청원이 1주일 새 20개가량 올라왔다.
의협·전의총 … 입국 차단해서 의료자원 과부하 막아야
의료계에서도 해외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달 27일 성명문을 내고 미국ㆍ유럽 등에 대한 엄격한 입국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검역 강화가 우선이며 입국금지는 논의하지 않는다는 보건당국의 입장에 대해서 ‘안일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개학을 준비하는 단기간만이라도 외국인 입국을 금지하고 내국인도 엄격하게 검역해야 한다”며 “한시적 입국제한은 감염 확산 감소뿐 아니라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 인력의 ‘번아웃’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국의사총연합도 같은 날 자료를 내고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한 중국처럼 우리도 필수적인 경우만 제외하고 전세계 외국인의 입국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의총은 “감염원을 파악할 수 없는 지역사회 감염과 더불어 유럽, 미주 등에서 들어오는 입국자들의 감염이 증가 추세”라며 ”이들이 새로운 감염원이 돼 확진자를 늘리면 국내 의료자원이 과부하돼 치료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 ‘입국자 90% 자국민’ 입국 제한 불가 입장 고수
정부는 외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취하기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입국자의 90%가 자국민이며 자국민의 입국 금지를 시행한 국가도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은 지난달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입국자의 90%가 우리 국민“이라며 ”자국민을 자기 국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고 말했다. 또 ”검역법과 국제법상으로도 자국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나라가 없을 뿐더러 그런 법률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강화된 입국 규제 조치로 해외 유입을 규제하겠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4월 1일부터 해외에서 입국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2주간 자가나 시설에 격리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단기 체류 외국인은 시설에 격리돼야 하고 비용은 본인 부담이다.
또 오는 5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감염병예방법은 격리 조치를 어기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외국인은 위법의 중대성에 따라 비자 및 체류허가를 취소하고 강제추방 및 입국금지 처분을 내릴 계획이다.
실질적 국경 봉쇄 국가 늘어 … 상호주의 대응 가능 지적
하지만 국경을 걸어 잠그고 실질적인 입국 금지를 시행하는 국가는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의 근원지인 중국은 지난달 28일 0시부터 외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키로 했다. 중국 외교부와 국가이민관리국은 27일 “기존에 유효한 비자와 거류허가를 가진 외국인은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입국이 일시적으로 금지된다”고 발표했다.
검역 강화 조치만을 취하던 태국도 최근 건강검진서가 없는 외국인의 입국 금지를 시행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0일부터 한달 간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인도도 오는 15일까지 모든 외국인에게 발급된 기존 비자의 효력을 중단하고 신규 비자 발급을 막았다. 이밖에도 스위스,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베트남, 호주, 덴마크, 체코 등 100여개국이 외국인 입국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외국에 대한 전면적인 국경 봉쇄는 아니더라도 한국에 대한 입국 금지를 시행하는 국가는 140여개국이다. 이들 나라에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응만으로도 입국 금지에 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지난 26일 백경란 대한감염학회 이사장(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 교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국인까지 치료해주고 있을 정도로 의료 일선의 여력이 남아있지 않다”며 “다른 나라는 이미 한국을 다 막았으니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입국을 금지해 달라”는 글을 올렸다.
국내 신종 코로나 사태가 진정 기미에 들어서면서 입국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은 입국자의 국적에 상관없이 검사비 15만원과 장기 체류자의 2주간 자가격리비 21만2300원을 지원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재정적인 부담과 의료진의 피로도 등을 고려할 때 국경 개방 원칙을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