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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약 먹었을 뿐인데 실명? ‘스티븐스존슨증후군’
  • 김신혜 기자
  • 등록 2020-03-16 20:07:46
  • 수정 2020-03-24 08:3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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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력저하·호흡곤란 등 치명적 합병증 초래 … 발병 즉시 원인 약물 복용 중단해야
스티븐스 존슨 증후군은 매년 100만명 당 1명이 발병하는 희귀질환으로 사망률은1~5%에 이르며 생존하더라도 시력손상 등 치명적인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약물은 체내 특정 부위에 반응해 질병을 치료해주지만 동시에 졸음·설사·체중증가(감소) 등 크고 작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약물이상반응(adverse drug reaction)은 진단·치료·예방 목적으로 적정 용량의 약물을 투여했으나 의도하지 않은 해로운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약품 부작용 보고 건수는 26만2983건으로 2018년(25만7438건)보다 2.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열·진통·소염제가 3만8591건(14.7%)으로 가장 많았으며 항악성종양제(항암제) 3만1020건(11.8%), 그람양성·음성균에 작용하는 것(항생제) 2만1938건(8.3%), X선조영제 2만376건(7.7%), 합성마약 1만8591건(7.1%) 등 상위 5대 효능군이 절반(49.6%)을 차지했다. 

다양한 약물 부작용 중 피부 점막에 이상반응을 보이면서 드물게 치명적인 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를 중증 피부약물이상반응(severe cutaneous adverse reaction, SCAR)라 하는데 의외로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멜록시캄(meloxicam)·피록시캄(piroxicam) 등 옥시캄(oxicam) 계열 소염진통제 등 다수의 약이 이런 부작용을 갖고 있지만 의사·약사도 관련 위험성을 경시해 환자를 본의 아니게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흔히 페니실린계 항생제 관련 알레르기 등은 의사가 의례적으로 물어보지만 스티븐스존슨증후군에 대해서는 생소하게 또는 가볍게 여기고 패싱한다. 

SCAR는 크게 스티븐스존슨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 SJS)과 독성표피괴사용해증(toxic epidermal necrolysis, TEN)으로 나뉜다. 피부 겉부분(표피)이 벗겨지는 박리 면적이 10% 미만이면 SJS, 30% 이상이면 TEN, 그 사이면 SJS-TEN 중첩반응으로 구별한다.  

SJS는 매년 100만명 당 1명이 발병하는 희귀질환으로 사망률은 1~5%에 이른다. 2010~2013년 국내에서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을 진단받은 환자는 938명이다. 매년 평균적으로 234명이 발생했으며 입원 기간 중 사망한 비율은 5.7%였다. 남성보다 여성, 40대 미만보다 40대 이상 환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SJS가 일단 발병하면 생존하더라도 치명적인 합병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시력손상, 요도손상, 피부 흉터, 탈모 등으로 많은 환자가 불편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SJS는 대부분 약물에 의해 발생하며 피부·점막·생식기·눈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소아과 의사 알버트 메이슨 스티븐스(Albert Mason Stevens)와 프랭크 챔블리스 존슨(Frank Chambliss Johnson)이 1922년 이 질병에 대해 공동으로 발표한 이후 이들의 이름을 따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으로 불리게 됐다.

SJS는 급격히 증상이 나타나며 얼굴·목·턱·흉부 등에 반점 혹은 홍역 모양 발진으로 시작해 다른 신체 부위로 급격히 퍼져 나간다. 초기에는 대개 4~5일경에 병변이 최대로 나타나게 된다. 피부 및 또는 점액막의 염증이 특징적이다. 피부 홍반 및 병소로 시작해 수포가 형성되고 광범위한 피부 박리가 나타나며 점막을 침범하게 된다. 심한 염증을 일으켜 각종 장기에 손상을 입히고 전신 증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구강·입술, 결막, 항문·외음부 점막에도 증상이 나타난다. 전체 환자의 약 40%가 이들 세 부위에서 모두 증상을 보인다. 가장 먼저 작열감이 느껴지고 물집이 터진 딱지나 궤양이 발생한다. 입술은 특징적인 출혈성 딱지로 덮이게 된다. 눈에는 결막 및 눈꺼풀 감염과 화농성 결막염이 나타난다. 눈꺼풀(결막)과 안구가 유착된 검구유착증이나 안구건조증이 생기기도 한다. 이밖에 장에 병변이 있을 경우 영양 부족을 초래하고, 호흡과 배뇨에도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의 원인은 디프테리아·장티푸스·폐렴 등과 관련된 세균 또는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약물, 예방접종, 임신, 부패한 음식 등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대부분 약물로 인해 발생한다. 유발 약물로는 100가지 이상이 보고됐다. 

대표적으로 설파 계통 항생제인 설폰아마이드(sulfonamide)와 코트리목사졸(cotrimoxazole), 항경련제인 페니토인(phenytoin)·카바마제핀(carbamazepine)·라모트리진(Lamotrigine)·페노바르비탈(phenobarbital),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의 일종인 옥시캄(oxicam) 유도체, 통풍치료제인 알로푸리놀(allopurinol), 항바이러스제인 네비라핀(nevirapine), 항우울제인 설트랄린(sertraline) 등이 있다.

양민석 서울시보라매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은 뚜렷한 예방법이 없어 조기에 진단하고 원인 약제를 중단하는 게 중요하다”며 “주요 원인 약제에 대한 정보를 범국가적으로 수집하고 공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치료를 위해서는 초기에 질환의 진행을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발병 즉시 원인 약제를 찾아내고 사용을 멈춰야 한다. 환자의 약물 과거력을 살펴보았을 때 최근 4주 이내에 새로 투입됐거나 위험도가 높다고 알려진 약물이 원인일 확률이 높다. 원인 약물을 하루 일찍 찾아낼수록 사망위험률을 30%씩 낮출 수 있다고 알려졌다. 어떤 약물이 증상을 일으키는지 알아내기 쉽지 않으므로 환자에게 필수적인 약물이 아닌 경우 복용 중인 모든 약물을 중단할 수 있다.

표피 박리가 심한 경우 화상과 거의 유사한 방법으로 치료한다. 수분 및 전해질 균형, 2차 감염의 치료, 괴사조직 제거 등을 시행할 수 있다. 피부 염증반응을 줄이기 위해 증상 발생 최초 1주일 간 스테로이드제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피부재생을 저해하고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장기간 사용은 피한다. 주로 감염에 의해 사망에 이르기 되므로 이를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급성기에 결막을 침범한 경우 스테로이드, 항생제 등을 투여한다. 이밖에 호흡기관리, 고칼로리 고단백식이 등 보조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실험적으로 사용되는 대체 치료법으로는 혈액투석, 혈장교환술, 사이클로스포린(cyclosporin) 등 면역억제제 투여, 정맥 내 면역글로불린 주사 등이 있다.

스티븐스존슨증후군을 예방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발병 후 원인 약물과 동일 계열의 약물 복용을 피하고, 바이러스 감염 등의 기타 원인질환이 동반된 경우는 원인 질환에 대한 치료를 하는 게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몇 년 전 스티븐스존슨증후군 환자가 경우 원인 약물을 처방한 의사와 조제한 약사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사건이 생겨 화제가 됐다. 2010년 약국에서 일반의약품인 감기약을 구매해 복용한 환자가 근육통, 인후통, 가려움을 동반한 발진 증상 등을 호소하며 병원 응급실에 내원했다. 환자는 감기약을 복용했다고 이야기했으나 의료진이 환자에게 기존 감기약과 주성분(아세트아미노펜)이 동일한 약제를 다시 처방했고 이후 증세가 더 심해져 실명하게 된 사건이다. 환자의 가족은 감기약 제조사와 이 약을 팔았던 약사, 초기 치료를 담당했던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7년 서울고등법원은 동일한 성분의 약물을 반복 처방한 점 등을 인정해 의료진에게 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응급실 내원 당시 문진 의무를 소홀히 해 환자가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장애에 이르게 한 과실이 있다고 본 것이다. 제약회사와 약사의 과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제약사에 대해 제품안내서에 스티븐스존슨증후군 내지 독성표피괴사용해증의 위험성을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재했다고 봄이 상당하고, 내용 표시상 결함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약사가 아세트아미노펜의 위험성·부작용 설명 등 충분한 복약지도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복약지도란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 진단적 판단을 하지 아니하고 구매자가 필요한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며 “약사가 일반약을 판매하며 매우 예외적인 부작용까지 자세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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