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를 하면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런 이유로 수술을 앞두고 수술보다 전신마취에 대한 두려움을 크게 느끼는 환자가 많다. 하지만 마취와 관련된 확인되지 않은 속설 때문에 수술 시기를 놓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수술 전 마취에 대한 진실과 오해를 알아본다.
마취는 마취제를 투여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게 하거나 특정 부위의 감각을 없애는 의료행위다. 1846년 미국의 치과의사 윌리엄 모튼(William Morton)이 최초로 에테르(ether) 가스를 이용해 치아를 뽑는 무통 수술에 성공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전신마취를 하면 마취제가 뇌 기능을 일시적으로 저하시켜 무의식·무감각 상태가 된다. 이 때 뇌세포가 손상되진 않을까 염려하기 마련이다. 마취제가 뇌혈관의 혈류량과 산소량 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마취 내내 인공호흡기로 적절한 호흡을 유지시키고, 뇌세포를 정상적으로 유지시키는 선에서 마취제를 투여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 의료진은 마취 중 뇌파 감시 등으로 마취제를 최소한으로 사용해 환자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마취에서 깨어날 때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이나 말을 일시적으로 내뱉게 되는 행동으로 인해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섬망’(譫妄)으로 무의식 상태에서 의식이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마취가 종료되면 뇌 기능은 원 상태로 회복된다.
김동원 한양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과거에 사용했던 에테르는 깨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고 건망증과 기억력 저하 가능성이 있었지만 현재 사용하는 마취제 가운데 해로운 약제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전신마취에 사용되는 흡입 및 정맥마취제는 대부분 마취 종료 후 배출되거나 대사된다. 흡입마취제는 폐를 통해 뇌까지 전달된 뒤 다시 폐를 통해 거의 100% 배출되고, 정맥마취제도 시간에 따라 차이가 일부 있지만 심장과 뇌를 지나 간이나 신장에서 대부분 배출된다.
이들 마취제는 수술이 끝났다고 해서 금방 배출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대사된다. 수술 뒤 하루나 이틀 정도는 약효가 미미하게 남아 평소보다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기억력이 감퇴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창영 대전 을지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건망증이 생긴 것을 간혹 마취로 인한 후유증이나 부작용으로 인해 머리가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스트레스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건망증이 생긴 것이지 마취와 직결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술을 마시면 마취가 안 된다는 속설도 거짓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기능이 떨어져 오히려 마취제를 적게 투여해도 마취가 더 쉽게 될 수 있다.
전신마취를 앞두고 있다면 마취 전문 인력과 장비를 갖춘 병원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마취는 마취상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있는지 관찰·감시하는 게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취 시에는 호흡이나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기관 내 삽관 등을 이용해 호흡과 심장박동을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또 마취 중 환자의 움직임이나 갑작스런 바이탈 사인의 변화를 체크해 마취 상태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한다. 반드시 마취과 의료진이 상주하면서 수술 전 과정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전신마취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마취 전 금식이 필요하다. 위에 내용물이 가득한 상태에서 마취하면 무의식 상태에서 구토하거나 위 내용물이 역류해 음식물과 위산이 기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런 경우 치사율이 높은 흡인성 폐렴이나 기도 폐쇄 등 위험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금식해야 한다. 수술 전 음식을 먹은 시간과 종류를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금연도 필요하다. 흡연은 기관지 분비물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분비물을 제거하는 섬모운동을 억제해 분비물이 제거되지 않고 점점 축적돼 작은 기관지가 막히게 된다. 심해지면 수술 후 폐렴, 무기폐 등 폐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다. 적어도 수술 전 최소 1~2주는 금연을 해야 한다. 또 흡연은 기관지 자극에 대한 반응성을 증가시켜 마취 중 기관지 경련발작으로 인한 호흡마비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