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동물·인종 차별·낙인찍기 없애자는 취지 … 국가 위상, 이익집단 입김 따라 신종 전염병 명칭도 오락가락
그동안 ‘우한(武漢)폐렴’, ‘신종 코로나’ 등으로 불려왔던 중국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난 11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해 공식 명칭이 ‘COVID-19’(코비드-19)로 정해졌다.
COVID-19는 코로나(Corona)와 바이러스(Virus), 질병(Disease)의 영문 머릿글자를 따서 조합한 것이다. 19는 이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된 2019년을 가르킨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 소재 WHO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리적 위치와 동물, 개인 또는 집단을 지칭하지 않고 발음이 가능한 명칭을 찾으려 했다”며 그동안 WHO 공식 문서에서 임시로 써오던 ‘2019-nCoV acute respiratory disease(급성호흡기질환)’이란 임시 명칭을 변경한 사유를 설명했다. nCoV란 new Corona Virus를 축약한 것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한국 정부는 12일 WHO 결정에 따라 영문 표기는 ‘COVID-19’를 따르되, 한글로는 ‘코로나19’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질병 명칭에 특정 지명이나 사람, 동물 등을 지칭하는 표현을 쓸 경우 차별이나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게 WHO의 이유다.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우한 또는 중국이 빠진 것이다.
‘코비드-19’ 감염증은 작년 12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에서 이 바이러스 감염에 따른 폐렴 등 호흡기질환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함에 따라 초기엔 ‘우한폐렴’(Wuhan pneumonia), ‘중국폐렴’(China pneumonia) 등으로 불렸다. 일각에선 바이러스 명칭을 아예 ‘우한 코로나바이러스’(Wuhan coronavirus)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이 바이러스가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인 데다 감염시 폐렴까지 가지 않은 채 기침·발열 등 감기와 유사한 호흡기질환 증상만 보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등의 이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Novel coronavirus infection)과 같은 표현이 보편적으로 사용돼왔다.
이런 가운데 바이러스 발원지 중국에선 코비드-19 감염증을 ‘신형관상병독감염폐렴’(新型冠狀病毒感染肺炎)이라고 부른다. 관상병독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의미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외형이 왕관(Crown) 모양을 하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약어로 ‘신관폐렴’(新冠肺炎)으로 부르고 있다. 영문으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Novel Coronavirus Pneumonia)의 약어인 ‘NCP’나 ‘nCoV infection’이란 단어가 사용돼왔다.
일본에선 ‘신가타하이엔’(新型肺炎·신형폐렴)이란 표현이 쓰인다. 그러나 일본은 2003년 대유행한 중증급성호홉기증후군(SARS·사스)도 ‘신가타하이엔’으로 불렀기 때문에 언론매체는 이 둘을 구분하고자 ‘신형(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폐렴 감염’ 등과 같은 형식으로 풀어쓰기도 한다.
이번 WHO 공식 명칭에 ‘우한’이나 ‘중국’이란 지명이 빠졌다. 2015년 만들어진 WHO의 ‘새로운 전염병 이름짓기’ 권고안에 따랐다는 설명이다.특정 지역이나, 사람 혹은 동물 이름을 병명에 사용하지 말자는 기준이다. 실제로 이 권고안이 나오기 전에는 지명을 딴 이름이 주로 사용됐다.
2015년 한국에서 38명의 사망자를 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엔 중동이라는 지명이 들어가 있다.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된 뒤 중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해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에볼라바이러스는 콩고 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에서, 지카바이러스는 우간다의 지카숲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심지어 2009년 발생한 인플루엔자 A 바이러스(H1N1)는 돼지와 관련성으로 논란이 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대다수 감염 전문가들은 돼지로부터 매개될 가능성을 두고 돼지 인플루엔자(Swine Influenza)라 명명했고, 언론은 쉽게 ‘돼지독감’(Swine Flu)으로 썼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 국제수역사무국(OIE), 국제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들과 각국 축산업계와 정부들은 돼지와의 매개성을 부인 또는 축소하는 쪽으로 압박을 가했다. 결국 ‘고병원성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H1N1)’이란 명칭이 공식화됐고 이게 바로 ‘신종플루’다. 당시 사태 초기엔 보건복지부는 Swine Influenza(SI)라 명명했고, 농식품부는 Mexico Flu(MI)라고 명칭을 서로 바꿔부르기도 한 게 얼마나 전염병 명칭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냐는 반증이다.
1918~1919년 유럽을 강타한 인플루엔자 대유행을 ‘스페인독감’은 2500만~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보다 3배나 많은 수치다. 한국에서는 흔히 무오년독감(戊午年毒感) 또는 무오년(1918년) 역병이라고 하는데 약 740만명이 감염돼 14만명이 희생됐다. 당시 치사율은 2~3%로 높았으며, 건강한 젊은 성인층의 희생자가 더 많았다.
비단 스페인에서만 발병한 게 아니었는데 당시 1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이 언론을 엄격히 통제한 반면, 비참전국이었던 스페인에서만은 이 사태를 상세히 보도해 ‘스페인독감’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이런 과거사를 볼 때 ‘COVID-19’는 WHO가 지명·동물·사람·집단을 사용하지 않기로 원칙을 바꾼 뒤 처음으로 적용된 수혜자가 됐다. 코로나바이러스란 의미도 희석됐고, 2019년이란 발병 연도도 19로 축약돼 훗날 일반인이 보면 무슨 유전자 19형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익히 알려진 대로 2017년 치뤄진 WHO 사무총장 선거에서 거브러여수스 현 총장은 중국의 전폭적 지지 아래 당선됐다. 아프리카 지역 영향력 확대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해온 중국은 친중 인사였던 거브러여수스 당선을 위해 ‘WHO에 향후 600억위안(약 1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대대적 지원을 약속했다. 이를 바탕으로 거브러여수스는 194개 회원국 중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국을 집중 공략해 총 133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명칭 변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