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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권역응급의료센터? ‘시장통’ 응급실에 떠도는 중증환자들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2-05 09:08:00
  • 수정 2020-09-10 15:3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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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개 센터 중 13곳, 방문환자 절반 경증 … 응급의학 전문의 2000명 불과, 미국은 4만명
보건복지부의 ‘2018년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 병상포화지수는 2017년 66.7%에서 2018년에는 68%로 오히려 증가했다.
응급실 과밀화 해소와 중증환자 생존율 개선을 목표로 정부가 주도한 ‘응급의료 개선 정책’이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증 응급환자 치료를 전담해야 할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응급실은 여전히 시장통이고,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 인력 부족 문제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응급진료를 볼수록 손해를 보는 기형적 수가 구조는 외면한 채 센터 확충 등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에만 매달린 데 따른 예고된 실패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응급환자 진료, 대형재해 발생 시 응급의료 지원, 다른 지역에서 이송된 중증 응급환자 수용 등을 수행하는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 이상 의료기관과 연계된 응급의료기관을 의미한다. 2019년 11월 기준 전국 29개 권역에 36개 센터가 지정돼 있다.
 
이름이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 권역외상센터는 일반응급실에서 처치하기 힘든 총상·다발성골절·다량출혈 등 중증 외상환자를 즉시 수술할 수 있는 시설·장비·인력을 갖춘 시설로 전국에 아주대병원(경기 남부), 가천대 길병원(수도권), 단국대병원(충남), 을지대병원(대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강원), 전남대병원(광주), 목포한국병원(전남), 울산대병원(울산), 부산대병원(부산) 등 9곳이 운영되고 있다.
 
정부는 향후 권역응급의료센터 수를 늘려 응급의료 역량을 확대한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기존에 있는 센터조차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4년간 국내 의료기관의 응급실 방문환자 중 경증환자 비율은 2016년 550만명 중 304만명(55.4%), 2017년 554만명 중 305만명(55%), 2018년 578만명 중 318만명(55%), 2019년 상반기 276만명 중 148만명(53.5%)으로 매년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증 환자 비율은 2016년 8.3%, 2017년 7.4%, 2018년 6.9%, 2019년 상반기 6.9%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상반기 36개 권역응급의료센터 중 13곳은 응급실 방문 환자의 절반 이상이 경증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순천향대 부천병원이 응급실 내원 환자 3만1810명 중 경증환자가 1만9332명(60.8%)으로 가장 높았고 목포한국병원(57.7%), 안동병원(55.9%), 조선대병원(55.4%), 단국대병원(54.8%), 차의과학대 구미차병원(54.1%),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53.9%),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53.4%), 경북대병원(52.6%), 울산대병원(52.0%), 인하대병원(51.9%), 제주한라병원(50.7%), 가천대 길병원(50.4%) 등이 뒤를 이었다.
 
‘빅5’ 병원 중 유일하게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서울대병원의 경우 방문환자 3만5887명 중 1만3248명(36.9%)이 경증환자였으며 중증환자는 4368명(12.2%)에 그쳤다. 또 보건복지부의 ‘2018년 응급의료기관 평가’에서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혼잡도를 의미하는 병상포화지수는 2017년 66.7%에서 2018년에는 68%로 오히려 증가했다.
 
경증환자로 응급실이 북적이다보니 정작 응급치료가 필요한 중증환자는 제 때 치료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는 사례도 적잖다. 2017년 기준 36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를 전원시킨 사례는 2480건이었다. 전원 사유는 병실 부족 526건, 중환자실 부족 537건, 당장 응급수술 또는 응급처치 불가능 1303건, 전문치료가 필요한 상급의료기관으로 전원이 114건이었다.
 
병실은 남는데 의료진 간 커뮤니케이션이 맞지 않아 불가피하게 응급환자를 전원시키는 일도 존재한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교통사고나 낙상으로 실려 온 다발성 외상 환자는 다수 진료과의 협진이 불가피한데 서로 환자 치료를 미루다가 시간이 지체돼 응급의학과에서 어쩔 수 없이 환자 전원을 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타 진료과의 비협조로 응급환자가 제 때 처치받지 못하는 폐해는 2012년 방영된 MBC 드라마 ‘골든타임’에서도 다뤄졌다.
 
이성우 고려대 안암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권역응급의료센터조차 환자를 전원시킨다는 것은 국내 응급의료 체계의 부실함을 보여준다”며 “대다수 권역응급의료센터가 경증환자 진료에 응급의료 자원을 소모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중증 응급환자 치료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응급실 진입 전 환자를 교통 정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부족이다. 현재 국내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약 2000명 정도로 미국의 4만명에 한참 못미친다. 인구가 5배 차이나는 점을 고려해도 크게 부족한 수치다. 인력이 적다보니 1인당 근무시간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2017년 대한응급의학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평균 근무시간은 주간 50시간, 연간 2000시간으로 다른 진료과 전문의보다 1.5배 많았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의 경우 24시간 환자가 밀려들어오는 응급실 특성상 현행 전공의특별법이 규정하는 주당 80시간 근무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열악한 근무환경은 전공의 기피 현상을 초래한다. 미국에선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1주일에 3~4일 일하고 나머지는 쉴 수 있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또는 오후 3시부터 일하는 등 조정이 가능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다. 잊을만 하면 발생하는 응급실 폭력 사태도 응급의학과 기피 현상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이 교수는 “응급의료 인력 확충을 위해 정부의 장기적인 계획과 집중적인 투자 논의가 이뤄져 한다”며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양질의 중증외상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외상센터는 제재를 가하는 등 선택과 집중의 응급의료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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