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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떨고 있니’ 통증치료 소송 폭탄에 개원가 위기감 고조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9-11-07 08:36:19
  • 수정 2020-09-09 12: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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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험사, 페인스크램블러 만성 아닌 급성통증 사용 트집 … 의료계 “만성·급성 구분 어려워”
페인스크램블러는 시술·약물·주사요법으로 치료되지 않는 만성통증, 암성통증, 복합부위통증증후군(CGPS) 등 사용 범위가 경피적전기신경자극보다 넓은 편이다.
서울 성동구에서 정형외과병원을 운영하는 K 원장은 최근 통증 치료에 페인스크램블러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실손보험사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했다. 4년 전부터 항상 사용해왔던 의료기기인데 갑자기 소송이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확인 결과 허가 적응증인 만성통증이 아닌 급성통증에 페인스크램블러를 사용한 게 화근이었다. ‘만성과 급성 통증을 어떻게 칼로 무 자르듯 구별하냐’며 항의해봐도 보험사는 요지부동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변호사를 찾아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법원을 들락날락하기엔 시간은 없고 비용은 벅차 어쩔 수 없이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봐야 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개원의들이 때아닌 실손보험 소송 폭탄에 휘말려 난색을 표하고 있다. 원인은 통증 치료에 사용되는 ‘페인스크램블러(Pain scramble)’다. 민간 보험사들은 이 의료기기가 허가된 적응증 범위 밖에서 사용되고 있다며 개원의들을 상대로 무더기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페인스크램블러는 집중력 향상 및 스트레스 해소 기기인 ‘엠씨스퀘어’로 유명한 지오엠씨가 제조 및 판매하는 통증 치료장비다. 2008년 유럽연합 품질인증마크(CE, Communaute Europeenne Marking) 인증, 200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후 유럽과 미국에서 먼저 상용화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대병원, MD엔더슨암센터 등 유수의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페인스크램블러의 통증 개선 효과를 입증하는 해외연구 결과도 속속 보고되고 있다.
 
2011년엔 식품의약품안전처(당시 식약청) 허가를 받은 뒤 2013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았다. 2014년 7월엔 페인스크램블러를 활용한 ‘비침습적 무통증 신호요법 통증 치료행위’가 ‘인정비급여’로 확정됐다. 단 다른 약물이나 주사 등 다른 치료법으로 관리되지 않는 만성통증, 암성통증, 난치성 통증 환자에게만 한정적으로 실시할 수 있다.
 
페인스크램블러는 신체 부위에서 뇌로 전달되는 통증신호를 무통증신호로 전환해 통증을 덜 느끼거나, 아예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주는 의료기기다. 말 그대로 ‘통통(pain)’의 신호를 ‘밀쳐내(scramble)’ 통증을 없애는 원리다. 전기자극을 가하는 방식이라 병원 물리치료에서 사용하는 경피적전기신경자극(TENS, Transcutaneous Electrical Nerve Stimulation)과 헷갈리기 쉽지만 작동 기전이 다르다.
 
TENS는 전류를 50~150mA(밀리암페어) 강도로 촉각신경에 흘려보내 뇌로 전달되는 통증신호를 전기신호로 대체함으로써 진통효과를 낸다. 이는 통증을 전하는 감각신경의 전달 속도보다 두드리거나 문지를 때 느끼는 감각을 전하는 감각신경의 전달속도가 더 빨라 척수와 뇌에 먼저 전달되므로 뒤늦게 도착한 통증자극을 뇌가 인지하지 못한다는 ‘관문통제이론(Gate Control Theory)’에 기초한다.
 
반면 페인스크램블러는 통증 부위 주변에 최대 10개의 패치를 붙인 뒤 TENS보다 약한 5mA 이하 전류를 16개 전기파장으로 통각수용체(통증신호를 중추신경에 전달하는 자율신경 말단 부위)에 전달한다. 기존 통증신호가 묻힐 만큼 다량의 무통증 신호를 보냄으로써 뇌가 ‘아프지 않다’고 인지하게 만든다.
 
적응증도 다르다. TENS가 근골격계 급성통증에 사용되는 반면 페인스크램블러는 시술·약물·주사요법으로 치료되지 않는 만성통증, 암성통증,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등 사용 범위가 넓은 편이다. 만성통증의 경우 급성통증과 달리 원인 부위를 치료해도 뇌가 왜곡된 통증을 기억하기 때문에 증상이 지속된다. 페인스크램블러는 바로 이 왜곡된 통증기억을 지워버리는 역할을 한다.
 
현재 국내에선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등 대학병원과 신경외과·정형외과·마취통증의학과 개원가 등 총 150여 의료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다. 2015년 기준 국내에서만 약 10만건의 페인스크램블러 치료가 시행됐다.
 
개원가를 떨게 만든 실손보험 소송은 페인스크램블러의 적응증에서 비롯됐다. 현행법상 이 기기는 다른 치료법으로 개선되지 않는 만성통증 등 난치성 통증 치료에만 사용할 수 있다. 즉 단순 근골격계 통증에 페인스크램블러를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실손보험사들은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이들은 개원의들이 허가된 범위 밖에서 페인스크램블러를 사용하고 있다며 작년 말부터 전방위적으로 진료비 확인 및 부당이득금 소송을 걸기 시작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 관계자는 “최근 페인스크램블러 사용에 대한 실손보험사 소송 문제로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며 “의사들은 의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기기를 사용했다는 입장인 반면 보험사는 적응증을 벗어난 과잉진료라고 주장하고 있어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 정형외과 전문의는 “보통 통증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통증으로 분류하지만 원인질환이나 환자 상태에 따라 통증 양상이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어 만성과 급성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며 “보험사들이 자체 법무팀이 있는 대학병원은 건드리지 않고 의사 혼자 병원 살림을 책임져 법적 대응을 할 여력이 없는 개원의들만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악의적인 의도가 보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소송을 당한 개원의들 중 상당수가 시간과 비용 낭비를 이유로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정형외과학회 관계자는 “의사 혼자서 소송을 오래 끌고가기가 힘들고 승소율도 50% 정도에 그쳐 대충 합의하는 개원의들이 대부분”이라며 “학회나 의사단체 차원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외과의사회는 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법무법인과 업무협약을 체결했으며, 정형외과의사회는 회원을 대상으로 법률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는 자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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