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자동이체로 1% 빠져나가, ‘취지 좋으나 방법에 불만’ … 저소득층 돕는 ‘선행’ 명분에 이의제기 못해
병원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저소득층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는 의료기관이 늘고 있는 가운데 임직원 급여 일부를 기부금으로 적립하는 방식의 기부 문화에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적잖다.
‘자발적 참여’라는 의료기관의 홍보와 달리 임직원 전체가 참여하는 분위기에서 어쩔 수 없이 이뤄지는 ‘반강제적 기부’인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일부 병원 관계자는 ‘사실상 기부를 당하는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의 한 정형외과 병원에 근무하는 A 씨(여·40)는 월급날이 돼도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병원이 실시하는 지역사회 사회공헌 캠페인을 위한 기부금 명목으로 월급의 1%가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출금되는 금액이 적고 좋은 일에 쓰인다니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매번 ‘기부마저 회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든다.
그는 “‘자발적 참여’가 원칙이라는데 막상 전 직원이 동참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혼자 빠질 수 있겠냐”며 “특히 팀장급 이상은 괜히 불참 의사를 밝혔다가 원장이나 임원진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인사고과에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월급의 1%도 내기 싫어하는 짠돌이’라는 이미지로 비쳐질까봐 회사 동료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속앓이만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의 한 한방병원에서 일했던 B 씨(43)도 매달 월급의 1%를 기부금으로 납부해야 했다. 그는 “좋은 일도 남이 시켜서 하면 의미가 퇴색되고 보람도 못 느낄 수밖에 없다”며 “기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방법이 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회사 차원의 반강제적 기부가 오히려 기부 문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몸으로 때우는 봉사활동도 고역이다. 인천광역시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C 씨(36·여)는 올해 초 병원이 주최한 저소득층 대상 연탄 나르기 및 김장 담그기 봉사활동에 참가하느라 주말에 개인 일정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병원 임직원이 팀별로 돌아가며 봉사활동에 참여하는데, 혼자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하기란 수직적인 한국의 조직문화에서 쉽지 않다”며 “병원 이미지 제고를 위해 직원들을 반강제적으로 동원하는 게 진정한 의미의 봉사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주말이 아닌 평일 일과시간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하면 불만이 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나마 기부나 봉사활동의 명분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공헌활동이면 불만이 덜한 편이다. 반면 병원 신축이나 리모델링을 이유로 임직원에게 기부금 납부를 종용한 경우엔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예컨대 2015년 경북 대구의 C대학병원은 병원 내 정원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간호사 등 임직원들로부터 5만~10만원씩 거둬 논란이 됐다. J 대학병원은 새 병원 신축 과정에서 교수진에게 월급 일부를 기부하도록 강요했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실제로 적잖은 의료기관 직원들이 병원 측으로부터 기부금 납부를 강요받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의료노조와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가 의료기관 조합원 2만96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9.3%가 병원 발전기부금 납부를 강요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병원 차원에서 기부금 납부를 독려하는 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점차 직원 연령대가 젊어지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전반적인 삶이 팍팍해져 관행처럼 이뤄지는 기부에 불만이 쌓여가는 것 같다”며 “달라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병원 차원의 급여 기부에 대한 불만을 줄이려면 자율적인 기부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강철희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회사 차원의 급여 기부를 활성화하려면 직원 스스로 기부 여부나 금액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부한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정기적으로 통보하는 등 자율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직원이 직접 기부 단체나 분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기부 동기를 부여하는 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