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가 지난 17일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을 시작으로 ‘전자담배’ 퇴출 바람이 불고 있다. 더욱이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 시작한 미국 쥴랩스의 ‘쥴(JULL)’ 액상형 전자담배는 버지니아, 망고, 민트, 클래식, 박하향, 크림, 과일향, 오이향 등 8가지 향을 넣은 ‘가향(加香, flavored) 전자담배’로 청소년의 탐닉성을 부추겼다는 뭇매를 맞고 이 회사 케빈 번스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나고 전자담배 광고도 중단하기로 했다.
가향 성분은 특유의 향과 맛으로 담배의 독한 맛을 무디게 하면서 자꾸 흡입하고 싶어하는 중독성을 발휘하는 물질로 청소년 등 젊은층이나 여성 등이 쉽게 흡연을 시작하고 지속하도록 한다.
지난해 3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North Carolina University) 로버트 타란(Robert Tarran) 박사팀은 “미국에서 최소 7700여종 이상의 액상형 제품이 출시됐으며 몇몇을 제외한 대다수 향은 유독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미국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게재했다.
연구팀은 이 중 향료 323종에 들어 있는 유해성분을 미국 국립보건원(NIH)와 식품의약국(FDA)의 재정지원을 받아 웹사이트(www.eliquidinfo.org)에 기재했다. 연구팀은 고속대량스크리닝(high throughput screening, HTS) 분석기법 등을 사용해 다수의 액상 유독성을 빠르게 신속 분석한 결과 과일향을 내기 위해 들어가는 프로필렌글리콜(propylene glycol, PG), 식물형 글리세린(vegrtable glycerin, VG)를 세포에 주입하면 세포 성장을 저해하는 효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과일 향료 중 특히 바닐린(vanillin)이나 신나말데하이드 (cinnamaldehyde)의 독성이 가장 심했다.
연구진은 “과일향을 내기 위해 주로 쓰이는 PG나 VG는 몸에 유해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실험 결과 액체든 기체 상태이든 상관 없이 조금만 들어가도 세포의 성장률을 크게 떨어뜨렸다”고 보고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액을 기본으로 PG, VG, 벤조산(benzoic acid) 외에 향료가 추가돼 5가지 성분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쥴랩스가 사용하는 솔트 니코틴(nicotine salts)은 일반 니코틴(freebase nicotine)보다 탐닉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솔트 니코틴은 이온화돼 미약한 양전하를 띤다. 물질적으로 안정하고 유기적으로 기능하지만 체내대사율이 낮아(not extremely bioavailable) 체내에 흡수·분해되지 않고 장시간 작용할 개연성이 있다. 탐닉성을 높일 속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만 입증된 사실은 아니다.
PG, VG, 벤조산 등은 식품 화장품 의약품 산업에서 습윤제, 방부제, 윤활제 등으로 단골처럼 추가된다. 전자담배에는 니코틴만으로 내기 어려운 분무감, 균형감, 과일향 등을 내기 위해 첨가된다. 다들 안전하다고 해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지만 장기간 사용하면 자극성이 있고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어 이들 성분이 없는 화장품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향료 중 박하향은 젊은층에 가장 인기가 많다. 박하향을 내는 이소멘톤(isomenthone), 이소푸레골(isopulegol), 멘톨(menthol) 등은 기관지를 확장시켜 니코틴 흡수를 촉진한다. 이는 흡연자의 말단신경을 마비시켜 담배의 독한 자극을 줄이면서 청량감을 줘 흡연을 조장한다. 과거 일반 담배(궐련형)만 나올 때에도 많은 청소년이 박하담배로부터 흡연에 ‘입문’했다고 털어놓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액상 전자담배 흡연으로 인한 중증 또는 급성 폐질환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530여명이고, 8명이 숨졌다고 지난 19일 보고한 것과 관련, 어떤 구체적 성분이 유해성을 일으켰는지 분석해 밝힐 예정이다.
미국에선 정부가 담배를 허가할 때 제품이 새로운 흡연자를 유발할 것인지(premarket tobacco application, PMTA), 기존 출시 제품보다 덜 해로운지(Modified Risk Tobacco Product, MRTP) 등 두 가지를 통과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흡연자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나면 허가가 나오지 않든지, 나왔더라도 판매 중지 조치를 당할 수 있다.
국내에선 ‘공중보건 위협’ 등을 이유로 제품을 회수 또는 판매금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은 담배 제품이 청소년 흡연 유발 등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 제품을 회수, 판매금지하는 보호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증진법에 근거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가향물 첨가 금지’, ‘담배 유해성분 제출 및 공개 의무화’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도록 노력키로 했다.
CDC는 마리화나(대마초)의 환각물질인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etrahydrocannabinol, THC)와 비타민E 아세테이트이 액상형 전자담배에 들어가 중증 폐질환을 유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에 소비자원, 식품의약품안전처, 질병관리본부 등이 이 물질의 함유 여부와 유해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에 쥴랩스코리아는 25일 입장문을 내고 “쥴랩스는 제품의 품질과 사용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당사 제품에는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 대마초에서 추출된 어떠한 화학성분이나 비타민E 화합물이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액상 니코틴 수입이 급증하는 가운데 법의 허점을 이용한 수입업자들의 꼼수도 드러나고 있다. 담배잎(연초엽) 에서 추출한 것만 담뱃세를 부과하도록 되어있는 현행법을 악용해 중국 제조업체로부터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인 것처럼 서류를 받아 관세청에 수입 서류를 제출함으로써 1㎖ 당 1823원(담배소비세 628원, 지방교육세 276원, 건강증진부담금 525원, 개별소비세 370원, 폐기물 부담금 24원 등)의 세금을 피하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줄기 니코틴’의 수입량은 120배 이상 급증했으며 1400억원이 넘는 세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