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기 이대서울병원 교수 “외과계 혁명 이끌 기폭제” … 수술시간 30% 단축, 감염 원천봉쇄
“외과수술은 의사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수술 한 번에 짧으면 2~3시간, 길면 10시간을 꼬박 선 채로 수술에 집중해야 하죠. 의사도 사람인지라 4시간이 넘어가면 극도의 피로감이 몰려와 집중력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이대서울병원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스마트 수술실시스템인 ‘엔도알파(ENDOALPHA)’는 수술시간 단축, 집도의의 피로감 해소 및 편의성 향상, 감염 위험 최소화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갖는 미래형병원의 핵심 기술이 될 것입니다.”
로봇수술,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을 바탕에 둔 미래형 스마트병원이 의료계 화두가 된 가운데 지난 2월 문을 연 이대서울병원이 국내 최초로 일본 올림푸스의 스마트수술실 시스템인 엔도알파를 도입해 본격적인 운용에 들어갔다. 국내 의사로는 처음 엔도알파 시스템을 활용해 수술을 집도한 민석기 이대서울병원 간담도췌장센터장(간담췌외과 교수)를 만나 엔도알파 시스템의 장점과 특징, 향후 활용 계획 등을 들어봤다.
국내 의사 최초 ‘엔도알파’ 수술 집도
엔도알파는 안전한 수술, 빠른 수술을 위해 고안된 수술실 통합시스템이다.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복강경기기·소작기·기복기 등 의료기기 제어와 수술영상 확인 및 송출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에 집약함으로써 집도의가 자리에 앉아 스마트 터치패널로 수술실에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을 ‘원터치’로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먼저 벽에 설치된 터치패널에 미리 수술환자 정보, 집도의 이름, 수술 종류와 의료기기 설정값 등을 입력해 놓은 뒤 수술 시작 전 터치 아이콘을 누르면 설정에 맞게 조명과 의료기기의 설정이 자동으로 바뀐다. 이는 집도의의 동선과 수술 시간을 최소화하고, 장시간 수술로 인한 의료진의 피로도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석기 교수는 “엔도알파에 설치된 프리셋(preset) 기능은 집도의 및 수술 종류에 따라 의료기기 설정을 미리 저장해 놓고 한 번의 터치로 설정 내용을 불러온다”며 “이는 의료진과 환자맞춤형 수술 환경을 제공해 수술 전 준비시간을 줄여주고, 순조롭게 수술이 진행되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수술대 위에 누우면 먼저 스마트수술실 내 강화유리로 된 파란색의 벽과 천장이 환자의 불안감을 가라앉혀준다. 마취 후 수술실로 들어온 집도의가 스마트 터치패널 버튼을 누르면 환자 상태에 맞게 미리 설정했던 사양으로 수술실 환경이 변경된다. 집도의는 수술 모니터에 뜬 김 씨의 영상진단 정보를 확인하고 수술에 들어간다.
수술 중 의료진 이동 최소화, 수술시간 10~30% 단축
수술 중 집도의는 이동 없이 한 자리에 앉아 의료기기를 조정하고,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환자의료기록 등 수술에 필요한 영상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불필요한 동선이 최소화되고 수술시간이 기존보다 10~30% 단축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민석기 교수는 “수술 참여 인원과 의료진 동선을 최소화해 집도의가 수술에만 집중하고, 응급상황에 신속 대응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엔도알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로봇수술 중 갑작스러운 출혈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개복수술로 전환해야 할 경우 집도의가 바로 터치패널에서 ‘개복모드’를 터치하면 로봇이 자동 정지된다.
엔도알파의 또다른 특징 중 하나는 수술실 천장에 설치된 펜던트에 각종 모니터와 의료장비가 설치돼 수술실 바닥에 늘어져있던 각종 전선, 튜브 등이 사라졌다. 이는 수술 중 발생할 수 있는 걸림사고를 방지하고 병원내 감염, 먼지, 잡음, 오염, 불필요한 바닥마찰을 원천 봉쇄하는 데 도움된다.
엔도알파 시스템을 도입한 일본의 한 대학병원이 수술 사례 2500건을 조사한 결과 수술 시간이 연간 8일 이상 단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독일의 한 병원도 수술실 수를 8개에서 7개로 줄였지만 연간 수술 건수는 오히려 시스템 도입 전보다 늘었다.
민 교수는 “엔도알파 벽면에 설치된 블루글래스는 장시간 수술에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피로를 최소화하고, 원터치로 조절 가능한 조명은 집도의에게 최적화된 수술 환경을 조성한다”며 “집도의의 편안함과 안정감은 수술의 안전성 및 정확도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아직 국내 버전엔 적용되지 않았지만 집도의가 음성으로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는 기능도 구현될 예정이다. 일본 제품이라 한국어 음성을 인식시키는 과정이 필요해 현재 올림푸스 측이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집도의 피로도 줄여, 안전한 수술과 직결
민 교수는 스마트수술실이라는 개념이 환자에겐 피부로 와닿지 않겠지만 의료진에겐 장시간 수술로 인한 피로도를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혁명적 변화’이며, 이는 수술 안전성 및 성공률 향상으로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과수술은 의료진의 컨디션, 작은 손떨림, 피로도, 수술실 환경 등 눈에 띄지 않는 요소들이 수없이 모여 환자 예후로 나타난다”며 “엔도알파 같은 진화된 수술시스템은 수치상으로 계산할 수 없지만 최상의 수술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 키포인트이자, 외과 발전을 위한 또다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장점 덕분에 국내 대학병원들이 앞다퉈 스마트수술실 시스템을 도입하려 했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혔다. 워낙에 복잡한 첨단기술이 집약된 터라 기존 수술실을 엔도알파로 업그레이드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뜯어고쳐야 해 막대한 비용 부담과 시간이 요구됐다.
민석기 교수는 “다른 대학병원들은 너무나 광범위한 개·보수공사에 대한 부담감 탓에 섣불리 엔도알파 도입을 추진하지 못했다”며 “반면 새 병원은 건축 과정에서 제반시설을 갖추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해 이대서울병원 설계 단계에서부터 엔도알파 도입을 위한 로드맵을 세워왔다”고 말했다.
스마트병원, 의사 역할 줄어든다? “그 반대일 것”
다만 첨단화, 자동화된 의료시스템에 긍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민석기 교수는 “최근 자율주행 차량이 통제력을 잃고 행인을 치어 사망케 한 것처럼 자동화된 수술시스템, 로봇수술기기가 갑작스러운 오류를 일으켜 환자생명을 위협하는 등의 문제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며 “이 점이 바로 획기적인 의료용 인공지능과 로봇이 도입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인간 의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 의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지만 오히려 병원이 스마트해질수록 의사의 역할이 증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의료기술과 기기가 고도화되고 있는 만큼 다양한 수술실 내 장비를 한 자리에서 정확하게 제어하고 감염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스마트수술실은 환자안전과 치료결과를 향상시킬 것”이라며 “엔도알파는 물론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한 혁신적인 진료시설 및 시스템으로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스마트병원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