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북한이 제6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이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적 대응 옵션을 고려 중이라는 입장을 밝히자 ‘이번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핵무기 공격시 대피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장기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모아둔 ‘생존가방’이 인기를 얻으면서 관련 업계는 때아닌 대목을 맞았다.
미국 민간연구기관 ‘스티븐스 인스티튜트 테크놀로지’의 핵폭발 시뮬레이션프로그램인 ‘누크맵(NUKEMAP)’에 따르면 서울시청 상공에서 북한의 100㏏급 핵폭탄이 폭발하면 즉사자 36만명을 포함, 총 200만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된다.
핵탄두가 터지면 폭심지에서 1㎞ 이내에 있던 사람은 폭발 즉시 90~100% 사망한다. 서울시청 반경 590m내 광화문역·을지로입구 지역은 강력한 열로 순식간에 증발하고 직경 30m가량의 화구가 형성된다. 이어 강력한 핵폭풍이 반경 3~5km내 청와대·경복궁역·서대문역·명동역·동대입구역·아현역 일대를 덮치게 된다.
폭심지와 1~2㎞ 떨어진 곳에선 건물 안에 숨으면 목숨은 건질 수 있지만 2~3도 화상을 입거나 방사능에 피폭돼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핵공격에서 살아남으려면 핵폭탄이 터지는 지점에서 최소 3㎞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좋은 방법은 지하로 내려가는 것이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5분 안에 가까운 지하철역이나 지정 대피소로 달려가야 한다. 북한이 황해도 신계 미사일기지에서 핵폭탄을 장착한 스커드미사일을 쏘면 120㎞ 떨어진 서울까지 3분 30초면 도달한다. 군이 사전에 탐지해 대피령을 내리면 5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지만 미사일을 쏜 뒤에야 감지했다면 대피 시간은 3분대로 줄어든다.
전국의 지정대피소는 2016년 기준 1만8871개로 청와대, 국회, 정부부처, 신문·방송사 등 주요기관이 밀집한 서울엔 3249개의 민방위 대피시설이 존재한다.
대피소는 벽두께와 면적, 지하시설 넓이와 층수 등에 따라 1~4등급으로 나뉜다. 핵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1등급 대피소는 자체 발전시설, 오염측정기, 핵 충격파를 막을 수 있는 방폭문, 2주 이상 비상식량을 갖췄다. 전국에 15곳이 위치해 있으며 1만~2만명을 수용할 수 있다. 1등급 시설은 대부분 행정지휘 또는 군사시설로 이용되므로 민간인 대피시설로 가동될 가능성은 낮다.
2등급 대피시설은 고층건물의 지하 2층이하 공간, 지하철, 터널 등이다. 3등급은 다층건물의 지하층이나 지하차도, 4등급은 단독주택 등 소규모 1·2층 건물 지하층 수준이다. 꼭 지하가 아니더라도 두께 30㎝ 이상의 콘크리트, 40㎝ 이상 벽돌, 60㎝ 이상 흙으로만 막혀있으면 방사선의 대부분이 차단된다.
평소 국민재난안전포털 사이트나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으로 가정, 사무실, 주로 가는 장소 인근의 대피소를 미리 확인해두는 게 좋다. 전기·통신시설은 타격 우선순위 중 하나여서 전쟁이 발발하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전쟁 발발시 북한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전자기펄스탄(EMP, Electromagnetic Pulse bomb)은 강한 전자기 충격파로 레이더나 통신장비 등 전자기기를 일순간에 무력화시킨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대피소는 지하철역이다. 평균 깊이가 15m 정도인 서울 지하철 1~4호선의 승강장은 직접적인 폭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반대로 핵무기가 아닌 생화학무기 공격일 땐 고층빌딩 같은 고지대로 올라가는 게 안전하다.
공습경보가 울린 후 5분 안에 지정 대피소까지 가기 힘들다면 가장 가까운 건물 지하로 피신하는 게 최선이다. 대피소가 없을 땐 배수로, 방호벽, 도랑 등에 머리를 핵폭발 반대 방향으로 향한 채 최대한 엎드려야 한다. 입은 벌리고 눈은 감고 귀는 막고 배는 땅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피소에 들어오면 핵폭발 후 2주간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야 방사능 낙진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낙진은 핵폭발에 의해 누출된 방사성물질이 먼지, 눈, 비 등에 섞여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4시간 이내에 폭발 지점으로부터 15~30㎞, 장기적으로 300㎞ 떨어진 곳까지 오염시킬 수 있다.
방사능 낙진과 접촉해 6000mSv(밀리시버트)이상 방사선에 노출되면 24시간 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 시간당 200mSv 이상을 쬐면 2~6주내 사망한다. 밀리시버트는 방사선 노출량을 의미하는 단위로 의료용 X-레이는 한번 촬영에 0.2~0.34mSv, 컴퓨터단층촬영(CT)은 10~15mSv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인간이 연간 2~3mSv의 자연방서선에 노출되믄데 만약 단번에 50mSv 이상 방사선에 노출되면 각종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다.
핵폭발 등으로 다량의 방사선에 노출돼 신경혈관계·조혈계·위장관계·피부질환이 동반되는 것을 급성방사선증후군(방사능병, ARS)이라고 한다. 이상욱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피폭 초기에는 오심, 구토, 무력감, 식욕부진, 설사 등 증상이 최대 3일간 지속된다”며 “이후 1~3주간의 잠복기를 거치면서 림프구·혈소판·위장점막세포 등이 계속 파괴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생식세포는 세포분열이 활발해 방사선에 대한 민감도가 높고 영향이 후대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방사능 수치는 7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10분의 1, 7시간의 제곱인 49시간 뒤엔 100분의 1, 7시간의 세제곱인 343시간(약 2주) 뒤엔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핵폭발 후 2주가 지나면 방사능 수치가 X-레이 수준으로 낮아져 방호복을 입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 2주가 지나더라도 무조건 밖에 나가지 말고 라디오를 통해 정부의 ‘낙진종료 방송’을 기다려야 한다.
방사능 낙진에 몸이 오염되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 상처난 피부 주변을 가장 먼저 씻고, 귀·입·코 등 외부로 열려 있는 부분을 닦아준다. 생리식염수, 미지근한 물, 비누와 샴푸 등을 이용하면 된다.
대피소에서 2주간 필요한 통조림 및 진공포장된 음식·구급약·휴대용 취사도구·라디오·랜턴·등불·성냥·초·내의·침낭·용변통 등을 미리 챙겨두는 게 좋다. 흔히 비상식량으로 라면을 많이 꼽는데 끓일 물이나 화력을 구하기 어렵고, 나트륨이 많아 갈증을 유발할 수 있어 적합하지 않다.
대피소까지 갈 때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으려면 우의, 장갑, 방독면을 착용해야 한다. 최근엔 인터넷에서 방독면과 보호의 등 안전장비를 간편히 구입할 수 있다. 방독면과 보호의를 입은 뒤엔 테이프로 신발과 장갑의 연결 부위를 감싸 묶어야 방사능이 유입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