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성 우려 해소·수출 확대 등 실효성 의문 … 업계 “정당한 이익 침해 우려”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대한화장품협회(아모레퍼시픽 등 화장품 회사 18곳)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낸 소송 관련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 시행으로 화장품별 모든 원료와 성분 정보가 이미 공개돼 있더라도 정부가 이를 취합한 자료는 새로운 가치를 지닌 빅데이터로 제조 업체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이 정보가 공개되면 기업의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수 있다”며 1심에서 원고인 협회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식약처가 항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치열한 2라운드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화장품 원료업체 대표 김모 씨는 “화장품 수출의 행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동남아시아 소비자에 한국 화장품의 안전성을 알리겠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화장품 원료 및 성분 데이터 관련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식약처는 처음에 “김씨가 공개를 요구한 정보는 기업의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되면 정당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었다. 이에 김씨는 이의를 신청했고, 식약처 정보공개심의회는 “이미 시중에 유통 중인 화장품에 기재된 전 성분 정보는 비공개 대상 정보로 볼 수 없다”며 정보를 공개하기로 의결했다. 협회는 식약처의 이같은 결정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냈다.
협회 측은 “약 18만개에 달하는 화장품의 품목별 성분 자료를 종합 분석하면 최적의 성분 조합 등을 쉽게 알 수 있다”며 “정부가 취합한 데이터를 공개하면 경쟁사는 유사 제품을 만드는 데 이를 활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각 회사가 화장품에 사용하는 원료를 배합하는 경향, 특정 원료의 대체 관계 등은 생산기술의 하나로 각 회사가 상당한 노력과 자금을 투자해 얻은 영업 기밀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김씨의 주장대로 전성분 취합자료 공개가 한국 화장품 안전성 홍보, 수출 증대로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이들 자료는 영업기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국내외 화장품 8만7000여개의 성분 정보를 제공하는 버드뷰(birdview)의 애플리케이션 ‘화장품을 해석하다’(화해)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 등 국민의 알 권리 향상을 위해 전성분 취합자료를 공개할 필요가 있어 상급심에 항소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화장품 사용 안전성 및 소비자 알 권리 향상이라는 원래의 취지대로 화장품 성분 공개 제도를 운영하려면 전성분 취합자료 공개 여부 및 범위를 추진하는 것보다 불완전한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를 보완하는 게 우선이라는 시각도 있다.
화장품 전성분 표시제는 2008년 10월 국내에 도입됐지만 50㎖ 이하의 소용량 제품은 용기가 작아서 모든 성분 표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같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화장품 용량에 관계 없이 전성분을 표시하는 미국·유럽 등과 대조적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 등은 50㎖ 이하 제품에도 전성분을 표기해야 한다는 개정을 거듭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미온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위법이 아닌 이상 기업이 알아서 성분 안내 방법을 택하면 된다”며 “50㎖ 이하 제품은 고객센터 전화로만 성분 안내가 가능하긴 하지만 소비자가 성분을 알 방법이 있는 것이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5년 1월 당시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음식처럼 화장품·의약품·한약재 등도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는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국내 농수산물 수요를 늘리자고 제안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