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층이 암만큼 두려워한다고 알려진 무릎관절염은 유독 여성에서 발병률이 높다. 지금까지 폐경기 호르몬 변화, 장시간 쪼그려앉기 등이 여성에서 관절염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타고난 신체 구조 자체가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또 남성은 여성보다 관절염 위험이 훨씬 적은 대신 정신적인 충격과 후유증은 훨씬 더 큰 편이다.
관절염은 관절 내 연골의 점진적인 손상이나 퇴행성 변화로 연골, 활액막, 뼈, 인대 등이 손상돼 국소적인 염증과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 중 무릎관절염은 전세계 2억5000만명 이상이 앓고 있으며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2배 이상 많다. 국내에서 더욱 격차가 벌어져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 비율은 여성이 3~4배 높고, 65세 여성 절반이 관절염 환자로 추정된다. 2013년 기준 국내 관절염 여성 환자는 77만140명으로 전체의 66%를 차지한다.
흔히 중년 이후 폐경기가 되면 연골을 보호해주는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고 골밀도가 낮아져 무릎관절염 위험이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폐경 전 상대적으로 젊은 여성들이 무릎관절염에 자주 걸리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성에게 넓은 골반이란 체형 조건은 관절염을 유발하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여성은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골반이 넓은 반면 보간(步間)이 좁아 그만큼 무릎에 하중이 더 집중돼 관절염 발생이 빈번하다. 보간은 걸을 때 양쪽 발 사이의 가로 간격으로 흔히 알려진 보폭(세로 간격)과 다른 의미다. 즉 모델처럼 양 발 간격을 좁게 걸을수록 무릎관절에 더 많은 하중이 가중돼 과부하가 걸리는 셈이다.
노두현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모션캡쳐 기법과 3차원 압력감지센서를 활용한 동작분석검사로 걸음걸이를 비교해보면 여성은 골반이 넓고 보간을 좁게 걸으므로 무릎이 꺾이는 힘을 30%가량 더 받는다”며 “이런 현상이 누적되면 다리가 O자형으로 휘고 결국 관절염 빈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무릎관절염 탓에 다리가 변형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O자형 다리가 관절염을 유발하기도 한다. 안짱다리·내반슬로도 불리는 오다리는 비타민D 결핍에 의한 구루병 또는 성장장애 등 선천적인 문제나, 다리꼬아앉기·짝다리짚기·팔자걸음·양반다리 등 후천적 습관에 의해 발생한다. 대부분 후자에 해당되며, 여성에선 다리 꼬기나 하이힐 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다리가 O자형으로 휘면 무릎에 체중이 고루 실리지 않고 관절 한쪽 부분만 집중적으로 닳아 퇴행성관절염 같은 2차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양쪽 발을 붙이고 섰을 때 무릎 사이가 7㎝이상 벌어졌다면 교정이 필요하다.
하이힐은 족저근막염 같은 족부질환의 주요인으로 꼽히지만 무릎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특히 하이힐을 신고 한쪽으로 비스듬히 서거나, 팔자걸음을 걷는 습관이 생기면 무릎 앞쪽 슬개골이 바깥쪽으로 쏠리고, 이 과정에서 외측 슬개골 연골에 하중이 가중돼 연골 손상이 가속화된다.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은 것도 여성 관절염의 주요인이다. 여성은 무릎관절을 잡아주는 허벅지근육이 약해 관절과 연골이 외부충격에 취약해지고 손상 속도가 빨라진다.
또 미국 오리건주립대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의 근육은 여성보다 신경자극에 빨리 반응하지만 여성은 재빨리 반응하지 못해 연골 손상 정도와 범위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관절염은 여성에서 발생률이 높지만 한번 발병했을 때 후유증은 남성에서 더 크다. 골관절염을 앓는 환자는 삶의 질이 떨어져 스트레스와 우울함을 느끼게 되고 정상인보다 자살충동 위험이 최대 90%가량 높은데 남성에서 이런 경향이 더 짙게 나타난다.
한 연구결과 골관절염을 앓는 남성 환자는 일반인보다 스트레스·우울함·자살충동이 각각 1.6배, 1.5배, 1.9배 높았다. 이는 여성 환자와 30~50% 가량 차이나는 수치다. 남성이 관절염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우울증에 더 쉽게 노출되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사회경제적 활동의 위축, 남성은 무조건 튼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다이어트를 위한 무리한 유산소운동도 무릎관절 퇴행을 앞당길 수 있다. 노두현 교수는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고강도 인터벌운동 중 점프 동작은 칼로리 소비량이 많아 다이어트에 효과적이지만 점프 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무릎관절이 약간만 어긋나도 스트레스를 받거나 손상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관절염 환자는 무조건 운동을 삼가야 한다는 속설은 사실과 다르다. 노 교수는 “걷기는 허벅지 앞쪽 근육인 대퇴사두근을 강화시켜 관절염 예방 및 증상 개선에 효과적”이라며 “1주일에 24㎞, 하루 30~60분 이내 범위에서 5~10분씩 짧게 걷기를 반복하고, 틈틈히 쉬어야 부담 없이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계단오르기는 하체근력 발달에 도움되지만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은 관절염 환자에겐 권장되지 않는다. 계단을 오를 땐 체중의 3~4배, 내려올 땐 7~10배에 달하는 하중이 무릎에 전해져 관절염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고정식자전거는 속도를 시속 5㎞ 이하, 운동강도는 최대 맥박수의 85% 이하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