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심한 경영난에 허덕이는 정형외과 개원가를 중심으로 도수치료, 즉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이 인기를 얻고 있다. 병원 입장에선 수익 증대에 도움되고, 환자는 수술에 대한 부담이 적어 선호하는 추세다. 하지만 최근 과잉진료의 주범으로 지목된 데다 의료계 내부에서 안전성 문제도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카이로프랙틱은 그리스어의 ‘손’을 뜻하는 ‘카이로(Chiro)’와 ‘치료’를 의미하는 ‘프락티스(Practice)’가 결합된 것으로 틀어진 척추뼈와 골반을 손으로 교정해 요추간판수핵탈출증(허리디스크) 같은 근골격계질환, 생리통 등 내과질환을 치료하는 의료행위다. 의료계에선 도수치료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며 누가 시행하느냐에 따라 명칭을 구분하기도 한다. 정형외과 의사나 물리치료사가 실시하는 것을 도수치료, 미국에서 카이로프랙틱 전문가(DC, Doctor of Chiropractic)를 취득한 사람이 하면 카이로프랙틱, 한의사가 실시하면 추나요법이라고 한다. 2014년말 정부가 카이로프랙틱 국가공인자격 허용을 추진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정형외과 의사들과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들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도 했다.
이 치료법은 손기술로 척추후관절(facet joint)에 운동범위를 약간 넘는 정도로 자극을 가해 척추의 비정상적인 배열을 교정하고 신경이 눌린 부분을 풀어준다. 관절과 근육 속의 감각수용체 등을 자극해 통증에 대한 감각을 무뎌지게 하는 데에도 도움된다. 뼈가 어긋난 부위와 방향에 따라 환자를 눕히는 자세와 몸을 고정시키는 자세, 힘을 가하는 정도 및 방향 등이 달라진다. 치료 시간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직 안전성이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개원가에서는 너도나도 도수치료를 도입하고 있다. 처음엔 서울 강남 일대 정형외과 의원에서 실시되다가 최근 서울 강서 지역과 경기도 수도권내 병·의원으로 퍼져가는 추세다. 한 강서지역 정형외과 의원 관계자는 “경기도 김포지역과 서울 강서지역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노년층이 늘면서 척추질환에 대한 비수술요법의 수요가 커졌고, 이들 지역에서도 도수치료나 카이로프랙틱을 시행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수치료 도입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몫이다. 도수치료와 카이로프랙틱은 비급여 항목이라 병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평균 1회당 비용은 10만원, 일부 병원은 20만원 이상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도수치료는 지역과 병원 크기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0만원 이하가 가장 적정한 가격”이라며 “최근 2~3년 사이에 도수치료라는 명목하에 치료비가 급격하게 오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은 비용 부담을 피하기 위해 실손보험을 이용한다. 결국 병원은 수익 상승을 위해 도수치료를 포함한 과잉진료를 실시하고, 환자도 저렴한 가격으로 치료받기 위해 동조한다. 도수치료 등이 과잉진료 및 실손보험료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실제 의료현장에선 과잉진료가 빈번하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한 20대 여성은 허리통증을 이유로 지난해 9월부터 30일 동안 입원해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2차례 이상 모두 69회 도수치료를 받았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신생아에게 도수치료를 시행한 경우도 있다. 올 초 태변흡입으로 인한 호흡곤란, 경련으로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진 한 신생아는 도수치료가 도움된다는 치료사의 말을 듣고 6회의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근골격계가 자리잡히지도 않고, 근골격계질환에 걸린 것도 아닌데 신생아에게 도수치료를 적용하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이 일었다.
전문가들은 아직 안전성과 효용성이 100%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도수치료 등을 무분별하게 받을 경우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통증완화 및 근골격계질환 치료에 어느 정도 도움될 수 있지만 기존 정형외과적 치료만큼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다. 각종 문헌에 따르면 카이로프랙틱 시행례 5~20%에서 부작용이 발생했으며 여기엔 전신마비와 척수손상 등 치명적인 부작용도 포함된다. 일례로 척수암으로 인한 통증을 단순통증으로 오인해 물리적 힘을 가하면 치명적인 손상을 불러올 수 있다. 2014년 11월 미국에서 30세 남성이 목에 카이로프랙틱 시술을 받은 뒤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또다른 교수는 “목은 뇌부터 온몸으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혈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잘못 건드리면 뇌졸중 위험이 높아진다”며 “시술 후 통증이나 어지러움 등 가벼운 증상부터 척수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뇌졸중, 사망 등 치명적인 부작용까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08년 세계척추학회지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카이로프랙틱을 받은 뒤 통증, 두통, 피로감, 다리로 뻗치는 듯한 통증(방사통), 현기증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같은 증상의 74%는 하루 안에 사라지지만 드문 확률로 허리디스크나 마미증후군(cauda equine syndrome)으로 악화될 수 있다. 마미증후군은 바깥으로 튀어나온 추간판(디스크)이 신경다발을 눌러 발생하는 질환으로 항문과 회음부 및 발 감각 저하, 요실금 등을 유발한다. 엉치, 허벅지, 다리 쪽으로 뻗치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땐 바로 응급수술을 받아야 한다.
오십견(유착성관절낭염)이나 회전근개파열인 환자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도수치료를 받으면 오히려 통증이 심해질 수 있다. 추간판(디스크) 수핵이 이미 탈출돼 신경성 증상이 나타난 척추질환 환자의 경우 단기간의 도수치료만으로는 호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척추관협착증, 후종인대골화증, 척추골의 심한 퇴행성 변화 등에 해당되는 환자는 오히려 증상이 악화될 수 있어 정확한 전문의의 진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