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구 고령화로 경증치매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증상이 경미한 환자는 민간보험 가입이 제한돼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험에 들어봤자 현실적으로 보험금을 받기가 어렵고, 치매에 걸리면 치매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아 보험사들만 배를 불리고 있는 상황이다.
노후 생활 대책의 하나로 인기를 끌고 있는 치매보험 상품은 가입자가 치매에 걸렸을 때 치료비나 간병비 등을 보장한다. 치매 관련 전문의가 실시하는 치매임상평가척도(CDR) 결과 치매로 진단받은 후 90일간 상태가 지속되고 진단이 확정되면 보험금을 지급한다.
고령화시대를 맞아 치매 환자는 최근 4년간 연평균 14.3% 늘고 있다. 이에 치매보험 가입자 수도 증가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28개 보험사가 79개 치매보험을 판매 중으로 계약건수는 634만여건, 수입보험료는 9552억원에 육박한다. 2013년 3월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보험료 수입은 5598억원에서 9552억원으로 70.63% 증가했다.
하지만 대부분 치매보험 약관에 따르면 몸을 움직이기 힘들고 간단한 의사소통만 가능한 중증치매 환자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 조사결과 2012년 치매 인구 54만1000명 중 58.8%가 경증 환자인데도 보험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치매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치매임상평가척도(CDR)의 ‘중증치매’ 기준인 3등급을 넘어야 하는 등 보험금을 받기 위한 기준이 까다롭다. CDR 3등급은 여가활동이나 취미생활을 전혀하지 않고, 약속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전화기 사용, 약 챙겨먹기, 문 단속하기가 어려운 정도는 이보다 낮은 CDR 1~2등급에 해당한다.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진단받은 7639명 중 중증치매는 236명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증치매 환자는 치매 여부를 가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이 리스크를 안고 상품을 기획 및 출시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보험사가 이같은 내용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것도 문제다. 치매보험 약관에는 ‘중증 치매가 돼야만 보험금을 지급한다’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지만 이같은 내용을 모르고 가입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설계사들은 해당 약관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고 “치매 걸리면 바로 드립니다”라고 이야기할 뿐이다.
가입자가 치매에 걸려 보험금 청구를 망각하는 사례도 많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대리인을 지정해야 하는데, 보험사가 제대로 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로 인해 지난 12년 동안 치매보험 가입 건수 475만건 중 보험금이 지급된 건수는 2만7000건(0.56%)에 불과하다. 생명보험사 평균지급률인 54.4%의 100분의 1 수준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앞으로 보험사들이 치매보험의 보장범위와 기간을 충실히 설명하도록 지도하고, 향후 치매보험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여부를 집중 점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보험 보장 연령대가 지나치게 낮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치매 발병위험이 80세 이후 급격히 상승하는데도 일부 보험사는 보장 기간을 80세 이하로 책정해 80세 이후 치매에 걸리면 보장을 전혀 받을 수 없다. 금감원에 따르면 중증치매에 걸릴 확률이 61∼80세는 평균 0.24%이지만 81∼100세에서는 평균 18.0%로 증가한다. 80세 이후에 치매보험의 필요성이 더 커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지난 5월 보장기간이 80세 이하인 치매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들에게 올해 안에 약관을 고쳐 보장기간을 늘릴 것을 권고했다. 한화손해보험, 메리츠화재, 교보생명, 푸르덴셜생명, 라이나생명, 흥국화재, ING생명, AIA생명, 신한생명 등 9개 보험사의 19개 상품이 보장기간 연장 대상이다.
문제는 보장기간 연장에 따른 보험료 인상이다. 40살 가입자 기준으로 100살까지 보장 기간이 연장되면 남녀 모두 한 달에 최소 1만5000원 이상 내야 한다. 보장 기준 80살 때보다 적어도 4배 이상 더 내야 하는 셈이다. 예컨대 40세 여자 기준, 가입금액 1000만원 20년납 조건으로 설정하면 80세 만기의 경우 보험료가 4000원이지만 만기 100세로 설계하면 1만2000원~1만6000원으로 인상될 수 있다. 금감원은 “치매보험은 중증이냐 경증이냐에 따라 보장금액이 최대 90%까지 차이가 나는 만큼 보장범위나 기간에 대해 보험사가 설명을 철저히 하도록 지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