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치료비 1억 이상, 적합환자 선별 난항 … 부작용·병용요법 추가 연구 필요
암치료 분야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는 면역항암제의 급여 등재 방안으로 혁신신약에 걸맞은 유연한 위험분담제(Risk Sharing Agreement, RSA) 운영이 논의되고 있다.
대한암학회가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면역항암제 국내 도입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42차 연례 학술대회 및 국제 암 컨퍼런스에서는 이같은 최신 면역항암제 급여 등재 방안이 논의됐다.
항PD-1(programmed death receptor-1,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수용체-1) 면역항암제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 nivolumab)와 ‘키트루다’(성분명 펨브롤리주맙, pembrolizumab)를 중심으로 임상연구 현황을 소개한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면역항암제가 1년 치료비로 1억원 이상이 드는 고가이고 모든 환자에서 치료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므로 급여 평가 시 비용 대비 효과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의학·과학·재정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지만 급여 등재를 더 늦출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면역항암제에 확실히 효과가 있는 군부터 일단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등 현실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부작용·병용요법에 대해 면역항암제의 안전성과 치료효과 연구가 같이 보강돼야 한다”고 밝혔다. 면역항암제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일본에서는 이 약으로 치료받은 환자에서 간·뇌 등에 걸쳐 전신적 이상반응이 보고되고 있다.
그는 “PD-L1(programmed death ligand-1, 프로그램된 세포사멸 수용체-1에 결합하는 분자) 발현율과 치료반응률 간의 연관성은 약제 및 암 종류에 따라 다르다”며 “PD-L1 발현율보다 더 명확하게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 및 동반진단술 개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러 건의 글로벌 임상결과에 따르면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경우 PD-L1 양성군(발현율 50% 이상)에서 치료반응율이 PD-L1 음성군(발현율 50% 미만)에 비해 높다. 그러나 PD-L1 음성군에서도 드물지만 치료에 반응하는 사례가 있어 치료적합 환자 선별이 어렵다. 신장암·대장암에서는 PD-L1 발현율에 따른 반응률 차이가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의경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비용 대신 환자 중심으로 면역항암제의 경제성 평가 방법을 개선한다면 위험분담제도가 재정적 위험을 최소화하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밝혔다.
이어 “건강보험 등재 결정을 위해 비용효과성 평가 시 비교 대상 선정이 잘못되면 신약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며 “임상적으로 혁신신약이 대조군에 비해 우수성이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약보다 비열등성을 입증한 일반적인 신약보다 보험등재율이 더 낮다”고 모순을 지적했다. 예컨대 고급명품 차종에서 페라리의 성능은 포르쉐와 비교해야 합당한데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서 포니와 비교하면 페라리가 효과 대비 너무 고가여서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비유했다.
김열홍 고려대 안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면역항암제의 등장으로 일부지만 치료가 어려운 말기 암환자에서 완치에 가까운 장기생존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며 “획기적 신약의 비용효과성을 평가할 때엔 영국식 ICER 수치뿐 아니라 기존 약제의 치료 실패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ICER은 점증적 비교 효과비(incremental cost effectiveness ratio)를 말하며 인간으로서 일정 한도의 질이 보장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수명(질 보정 수명 Quality-adjusted life year, QALY)이 1년 늘어나는 데에 소요되는 비용이다.
그는 또 “항암제에 급여가 지원될 경우 환자 본인부담율을 5%로 고정한 제도 역시 정부의 재정부담 문제로 등재 가능성을 낮춘다 ”며 “혁신신약에 대해 환자가 얼마나 가치를 더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를 반영해 치료비 일부분은 개인 능력에 따라 차등 지불하는 방식 등이 탄력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기자는 “현 건강보험 제도는 면역항암제를 수용하기 어려워 향후 건강보험 적용 형평성 논란이 가중될 수 있다”며 “정부·학계 전문가·제약사는 혁신신약에 관한 한 새로운 협의체를 구성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건강보험 제도는 경증에 대한 보장성이 지나치게 높아 정작 난치성 말기 암환자는 혜택을 보지 못한다”며 “이같은 시스템이 고착화돼 바꾸기 어렵다 ”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 “이미 요양병원에서 비급여로 면역항암제를 오·남용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검증된 의료전문가에 한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등 안전성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형우 보건복지부 보험약제과 과장은 “현행 보험제도 하에서 급여 기준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오는 7~8월까지 혁신신약의 가격 결정 기준 마련 및 위험분담제도에서 급여 대상 적응증 추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정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실장은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 적용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만 재정적인 문제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험분담제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협의체가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면 보험 등재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특히 제약사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