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료의 질 향상을 목표로 의료기관 적정성평가를 도입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형평성 논란은 여전히 끊이질 않고 있다. 심평원은 평가를 통해 환자가 병원 선택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의료계는 통계적인 근거가 부족한 평가결과로 ‘병원 줄세우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 3월 29일 대법원이 ‘입원급여 적정성평가’ 하위 20% 군으로 분류된 요양병원이 환류(의료기관의 급여청구비용을 건강보험공단에 반납) 처분이 부당하다며 심평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문제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심평원은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고한다는 취지로 2001년 약제급여 등 5개 항목을 시작으로 적정성평가를 도입했다. 최근에는 위암·간암 진료결과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치료성적 등 36항목으로 평가를 확대했으며 매년 항목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의사 및 병원단체나 관련 학회 등이 적정성평가의 공정성 결여, 업무 과부화 등을 이유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소송을 거는 일이 부지기수다. 2014년의 경우 요양병원이 심평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건수만 14건에 달했다.
올해 초 실시된 폐렴 적정성평가에서도 일선 의료기관의 불만이 폭주했다. 이번 평가에서 경우 평가 대상 482개 의료기관 중 1등급을 받은 의료기관은 171곳(35.5%)이었으며 2등급은 68곳(13.1%), 3등급 61곳(12.6%), 4등급 133곳(27.6%), 5등급은 49곳(10.1%)이었다.
다른 질환이나 치료법에 대한 적정성 평가보다 2~5등급의 비율이 월등이 높게 선별되자 이에 해당하는 대다수 중소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이 곳곳에서 장비의 질이나 인력 면에서 월등히 앞서는 대학병원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발했다. 1등급을 받은 몇몇 의료기관들만 보도자료를 통해 자기자랑에 나섰을 뿐이었다. 한 중소병원 관계자는 “병원별 사정이 다른데 일괄적인 평가 잣대로 인해 불리한 면이 있다”며 “각 병원별 사정에 맞는 지표로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8일 공개된 관상동맥우회술 적정성평가 결과도 논란이 됐다. 관상동맥우회술은 심평원이 실시하는 36개 적정성평가 중 유일하게 수술 건수를 평가지표로 사용한다. 즉 수술을 많이 할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2등급을 받은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빅5’ 등 상급종합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1등급을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같은 문제는 병원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평가기준으로 삼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적정성평가의 문제점은 도입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적정성평가로 인한 업무 과부하를 우선적으로 꼽는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적정성평가용 자료를 만들 때 평가항목을 하나하나 입력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간호사들이 업무종료 후에 데이터를 입력할 수밖에 없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또 “3개월의 진료분을 토대로 평가하더라도 1년 내내 평가를 준비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심평원의 경우 여러 부서에서 심사와 평가를 진행하고 있지만, 병원은 한정된 인력으로 모든 업무를 맡다 보니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기 힘들고 이는 평가 결과의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비교적 최근에 시작된 중환자실 적정성평가의 경우 국내의 열악한 시스템을 고려했을 때 단순한 사망률 비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현 교수는 “대부분의 사망은 일반병실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중환자실로 옮긴 이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 사망률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며 “중증도 높은 환자의 입원을 기피하거나 환자를 선별하는 현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적정성평가가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과잉진료로 보험재정만 낭비되고 병원의 서열화만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평가 결과에 대해 정당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보상체계과 연계하면서 진료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적정성평가로 의료의 질 향상을 유도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며 “현재 병원신임평가, 인증평가, 적정성평가 등 평가의 종류가 너무 많아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병원의 서열화를 위한 단순 지표가 아니라 의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평가지표와 의료기관에 대한 충분한 보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