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환절기가 되면서 피부건조증이나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고 있다. 증상이 가벼울 땐 충분한 보습과 생활습관 관리만으로 상태가 호전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받게 된다. 스테로이드 연고는 아토피피부염이나 건선 등 피부과질환 치료에 가장 많이 쓰이는 약제이지만 그만큼 여러 오해를 사기도 한다. 피부과질환에 대한 만능통치약으로 맹신하거나, 반대로 부작용 위험이 높은 독약으로 인식해 제대로 된 치료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스테로이드 연고는 부신피질호르몬으로 구성된 약제로 항염증, 세포증식 억제, 면역억제, 혈관수축 등 효과를 나타낸다. 이를 통해 접촉성피부염, 아토피피부염, 지루성피부염, 화폐상습진, 한포진, 건선, 수포성 질환, 자가면역질환 등 다양한 피부질환 치료에 사용된다. 이 약제에 포함된 부신피질호르몬은 혈관을 일시적으로 수축시키면서 염증을 가라앉히지만 내성이 생길 경우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확장돼 주변 부위가 붉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특히 필요 이상으로 면역력이 억제되면 고혈압, 당뇨병, 백내장, 골다공증 등의 발생률이 높아지고 피부가 얇아지면서 쉽게 멍이 들거나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된다.
피부위축(얇아짐)과 튼살은 대표적인 스테로이드 연고 부작용이다. 연고를 3~4주 이상 연속으로 사용할 경우 나타나기 쉽다. 피부위축은 연고 도포를 중단하면 점차 개선되지만 튼살은 원래 상태로 회복되기 어려워 미리 예방하는 게 좋다.
연고 사용 부위의 피부가 더 붉어져 여드름이나 지루성피부염 등 원인 불명의 피부트러블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모공이 확장되면서 모낭염과 잔주름이 발생하고 눈꺼풀이나 눈 주위에 잘못 바를 경우 백내장이나 녹내장을 유발할 수 있다.
쿠싱증후군은 당질코르티코이드 성분이 포함된 스테로이드 약물을 과용량 사용할 경우 발생한다. 얼굴, 목 뒤, 복부에 지방이 축적되는 ‘문페이스(moonface)’가 나타난다.
이런 부작용은 대부분 스테로이드제의 강도를 고려하지 않고 사용해 발생한다. 스테로이드제는 혈관을 수축시키는 정도에 따라 가장 강한 1단계부터 가장 약한 7단계로 분류한다. 또 같은 강도라도 몸 어디에 바르냐에 따라 흡수력이 다르다. 눈꺼풀, 얼굴, 가슴, 등, 팔·다리, 손등·발등, 손·발바닥, 발톱 순으로 흡수력이 높다. 즉 손바닥이나 발바닥은 피부가 두꺼워 스테로이드제가 잘 흡수되지 않아 다른 부위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약을 사용한다. 하지만 강한 단계의 연고를 얼굴 볼살 등 피부가 얇은 쪽에 바르면 부작용이 생긴다.
손상욱 교수는 “빠른 치료효과를 내기 위해 의사들이 스테로이드제를 강하게 처방하는 것도 부작용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라며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경우 스테로이드제 사용을 임의로 중단해도 부작용이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테로이드제 사용 기간을 줄이기 위해 아토피 증상이 나아지자마자 갑작스레 약 사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흔한데 이럴 경우 증상이 오히려 심하게 나타나는 ‘리바운드 현상’을 유발한다.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피부 두께에 따라 스테로이드제 사용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스테로이드제 연고가 나오는 연고 입구의 직경이 5㎜일 때를 기준으로 성인 검지손가락 한 마디의 길이에 일직선으로 짠 양을 0.5g으로 본다. 얼굴은 1g, 두피 2g, 한쪽 팔 3g, 한쪽 다리 5g, 몸통 8g 정도가 권장된다. 손 교수는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증상이 급격히 심해졌을 경우 보통 하루에 한번씩 약을 바르도록 한다”며 “이후 증상이 나아지더라도 리바운드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1~2개월 정도는 3~4일에 한 번씩 약을 도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스테로이드 연고는 2∼3주 이내로 짧게 고용량 사용하는 게 저용량으로 오래 사용하는 것보다 효과도 좋고 부작용 예방에 도움된다. 예컨대 아토피피부염이 심할 경우 연고를 1∼2주간 발라준 뒤 증상이 사라지면 의사의 처방에 따라 끊거나 최소 용량을 유지해야 한다.
스테로이드가 무조건 위험하다는 생각에 필요량보다 조금만 발랐다가 괜찮아지면 아예 안 바르는 과정을 반복할 경우 부작용 위험이 높아진다.
류머티스관절염 환자의 경우 증상이 심하면 스테로이드를 고용량 국소주사 형태로 일시적으로만 쓴다. 평소에는 스테로이드가 들어가지 않은 소염제를 사용하는 게 좋다.
어쩔 수 없이 장기간 써야 한다면 오전 7∼8시가 적당하다. 이 시간에는 원래 체내에서 부신피질호르몬이 생성되기 때문에 원래 나오는 호르몬에 양을 더하는 정도라 체내 호르몬체계가 망가지지 않는다.
스테로이드는 1949년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에 처음 사용됐으며 국소연고제로 쓰인 것은 1952년부터다. 현재 모든 피부과 약물 중에서 가장 많이 처방된다. 기본 형태인 코티솔에 여러 그룹의 분자가 더해지거나 변형되면서 다양한 강도의 여러 스테로이드 연고들이 만들어진다. 분자구조에 따른 강도 외에도 어떤 제형으로 만들어졌는지, 연고를 사용하는 피부의 두께나 상태에 따라 연고의 세기나 효과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