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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부검, 자살 사망자 유가족 트라우마 치료에 도움될까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3-04 15:05:48
  • 수정 2016-03-07 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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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핀란드, 자살사망률 절반 가까이 떨어뜨려 … 반대측 “유가족에게 더 큰 상처”

최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자영업자 윤모 씨(45)는 원래 활달한 성격 덕분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사망 6개월 전부터 항상 참석했던 동창회 모임에 나가지 않았고 즐겨하던 SNS에도 사진과 글이 올리지 않았다. 식욕까지 급격히 줄어 체중까지 감소하자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았지만 특별한 이상소견은 없고 만성피로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이후 피로감과 무력감이 심해져 아이들이 말을 거는 것조차 귀찮아하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아내에게 “회사에 가기 싫다”, “죽고 싶다” 등의 말을 하기도 했다. 사망 이틀 전에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고맙다”고 말하며 갑자기 눈물을 보였다.

‘자살공화국’이라는 타이틀답게 한국은 2003년 이후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3년 기준 국내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2.0명보다 2배 이상 높으며, 연평균 약 1만4000명이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살 사망자들은 자살 시도 전 어떤 형태로든 경고신호를 보내지만 주위 사람이 이를 알아채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보건복지부 중앙심리부검센터 조사결과에 따르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10명 중 9명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처럼 ‘자살 경고 신호’를 보내지만 유가족의 81%는 이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추가적인 자살을 막고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해결책으로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 주목받고 있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문화·경제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데다 당사자가 사망해 원인을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유가족이나 지인과 면담해 고인의 삶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면담 사례가 축적되면 이를 활용해 자살 관련 통계와 예방책을 도출한다.
최근 복지부는 최초로 자살사망자 121명의 유가족을 상대로 심리부검을 실시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심리부검 결과 전체 대상자 중 88.4%가 정신건강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 중 우울장애가 74.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높은 정신질환 유병률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이 있는 사망자 중 사망 직전까지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은 비율은 15.0%에 불과했다.

음주는 자살 시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사망 당시 음주 상태인 자살자의 비율은 39.7%였으며 이 중 25.6%가 과다음주로 대인관계 갈등, 직업적 곤란, 법적 문제 등을 겪고 있었다. 사망자 외 다른 가족이 과다 음주, 주폭 등 알코올 문제를 가진 경우도 53.7%에 달했다.

자살자들이 보내는 신호는 언어, 행동, 정서적인 측면으로 나뉜다. 언어 측면에서는 ‘먼저 갈테니 건강해라’처럼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주변 자살 사망자를 그리워하거나, 사후세계를 동경하는 표현을 하거나, 편지나 노트에  ‘나쁜 생각이 든다’는 등 죽음에 관련된 내용을 기재하는 등 행위가 포함된다.

행동면에서는 현금을 다량 인출해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평소와 다르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죽음 관련 예술작품이나 언론보도에 과도하게 몰입하거나, 가족 또는 지인에게 그동안 하지 않았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할 경우 자살 시도 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서적인 측면에는 갑작스러운 눈물 흘림, 말수 적어짐,  무기력 또는 대인기피 증상 등이 자살 신호로 꼽힌다.

심리부검은 ‘제2의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유가족의 입장에서 가족의 죽음을 애도하고 차분히 돌아봄으로써 심리적인 고통을 덜어내는 데 도움된다. 자살 사망자 중 생존 당시 가족이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사망한 경험이 있는 비율이 28.1%로 나타났다. 자살 사망자 유가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유가족의 88.0%가 심리부검 면담 이후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며 “심리부검은 고인의 죽음을 객관적이고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유가족이 막연한 죄책감과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건강한 애도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임정수 교수는 “자살 사망자의 유가족들도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산다”며 “심리적 부검을 통해 속에 담았던 것을 풀어놓으면 정신적인 면에서 치료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2014년부터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설치 및 운영하고 있다. 심리부검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핀란드의 경우 1987년 모든 자살사고에 대해 심리부검을 실시, 1990년 10만명당 30명에 달했던 자살률을 2011년에 16.4명으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다. 대대적인 심리 부검으로 예방정책을 펼치고 유가족 정신건강관리에도 힘쓴 덕이다.

반면 가족의 자살을 밝히기 꺼리는 한국 문화상 심리부검 사업이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심리부검을 하려면 가족의 동의와 협조가 필수인데 유족들은 “왜 죽은 사람 얘기를 꺼내냐”며 말문을 닫기 쉽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가족에게 데이터 수집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데다 유가족에게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며 “자살을 외면하는 문화가 또다른 자살의 위험을 높이는 악순환을 끊으려면 자살에 대한 완고한 인식과 금기 영역(터부)부터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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