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 전자기기의 사용이 늘면서 와이파이 등 전자파로 인해 피곤함과 두통 등을 느끼는 전자기과민성증후군(EHS), 일명 ‘와이파이증후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프랑스 툴루즈 법원은 와이파이증후군으로 일을 그만두고 시골로 떠난 마린 리차드(39)에게 3년간 국가가 매달 장애수당으로 800유로(약 106만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마르세유 출신으로 전직 라디오PD였던 그는 수년간 휴대전화, TV, 컴퓨터 등에서 나오는 전자기파 때문에 심한 두통과 어지럼증 등을 앓았다고 주장했다. 증상이 심해지자 일터를 떠나 프랑스 피레네 남서부 산악지대의 한 오두막집에 머물고 있다.
법원의 승소 판결이 내려지면서 그는 세계 최초로 ‘와이파이 장애수당’을 받게 됐다. 이번 사례처럼 전자기파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잇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세계보건기구(WHO)는 와이파이증후군에 대해 ‘겉으로 피해 증상이 뚜렷이 나타나지 않고 개인의 신체적 특성에 기인하는 병’이라고 언급할 뿐 이 질환이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파이에 의한 전자파 노출 수치는 최대 권고치의 0.002~2%에 불과한 데다 TV나 FM라디오에서 받는 전자파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불인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자기과민성증후군을 공식적인 질병으로 인정하는 국가도 스웨덴과 미국 등 일부에 불과하다.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전자기장이 인체에 해롭다는 과학적 증거를 인정하지 않아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전자기과민성증후군은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들이 내뿜는 전자파와 마이크로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반응을 일으키는 전자기기는 휴대전화, 텔레비전 화면, 전구 등 다양하다.
과민증 환자는 전자파 근처에서 심장이 뛴다거나 피곤함이 가중되는 증상을 느낀다. 무선인터넷 라우터(휴대용 데이터 송수신 장치) 근처에 있을 때도 동일한 증세를 경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와이파이는 전자파의 일종으로 주로 2.4GHz 대역의 주파수를 사용하며, 휴대폰이나 라디오보다는 전자파 노출 수치가 낮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외 사례에 따르면 와이파이증후군이 심하면 와이파이가 설치된 쇼핑몰이나 레스토랑을 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중교통도 이용하기 어렵다. 굳이 외출해야 할 땐 전자파를 막는 재질의 의상을 착용하는 등 일상생활에 심각한 불편을 겪게 된다.
하지만 상당수 의과학자들은 와이파이증후군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이 질환으로 고통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실제 존재하긴 하지만 증상이 전자기파 때문에 발생한다는 근거가 없다는 게 이유다.
오히려 이같은 이상반응이 전자기장 자체보다는 전자기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와이파이 설치 공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이로 인해 고통을 호는 환자가 적지 않은 만큼 해당 증후군에 대한 장기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들은 전자파가 실질적으로 특정한 사람들의 신경을 과민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지, 심리적인 문제에 불과한지 파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마그다 하바스 캐나다 트렌트대 교수는 “전세계 도시민의 35%가 과민증상을 호소하고 있고 2025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50%가 전자파 과민증상을 호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 보건국의 사무엘 밀햄 박사는 “성인병의 대부분은 먹는 것보다 전자파가 더 큰 인자라고 확신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초 일본에서는 무선인터넷 와이파이가 정자의 운동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내과의사인 쿠라하라 유는 29명의 건강한 남성에서 정자를 채취해 두 군으로 나눈 뒤 한 개는 와이파이에 접속한 PC에서 3㎝ 떨어진 곳에서, 다른 한 개는 PC가 없는 방에 두고 생존율과 운동속도를 비교했다. 연구 결과 생존율은 차이가 없었지만 운동능력은 PC 옆 정자가 68.7%, PC가 없는 방 정자는 80.9%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와이파이를 포함한 전자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막연하게 인체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으니 노출을 최소화하는 게 좋다고 권장할 뿐이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암관리정책학과 부교수는 2009년 ‘휴대전화 사용과 종양의 위험성’이라는 연구논문을 통해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종양 발생률이 더 높으며, 10년 이상 사용한 경우 암 발생 가능성이 30%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지만 전자파는 열작용, 비(非)열작용, 자극작용 등을 통해 인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열작용은 조직세포 온도를 단시간에 비정상적으로 상승시켜 세포의 기능이상 및 파괴를 유발한다. 주파수 100㎑ 이하 전자파는 신경계기능 이상, 10㎒~10㎓ 전자파는 과도한 열스트레스나 국부 가열현상을 일으킨다. 10㎓~300㎓ 전자파는 인체 내부에 깊이 침투할 수 없어 신체 표면에서 피부질환을 유발한다. 열작용 피해가 가장 큰 신체 부위는 뇌세포 등 조직세포, 수정체, 생식기 등이다.
비열작용은 대사 관련 이온물질 및 멜라토닌 등 호르몬 분비이상을 초래해 두통, 기억력 감퇴, 백혈병, 불임, 뇌종양 등을 유발한다.
자극작용은 1㎐~100㎑ 저주파가 교감신경이나 근육을 지속적으로 자극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