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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왕따 천국? 의료계 집단따돌림·폭력 천태만상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6-02-01 01:04:14
  • 수정 2016-02-10 14: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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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 다루는 고강도업무 특성상 스트레스 과잉, 따돌림 잦아 … 결혼·출산 관련 자기결정권도 침해

직업별 집단따돌림(왕따) 피해를 입었다는 응답률은 의료계 종사자가 9.5%로 교육(4.5%)이나 금융업(3.5%) 등 다른 직종에 비해 2~3배 높았다.

지난해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던 전공의 A 씨는 병원을 나오는 순간까지 선배들의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단지 후배라는 명분으로 선배들의 온갖 부당한 요구와 폭언을 견뎌야 했고, 휴식 시간에도 선배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선배들의 무시가 계속되자 동료 전공의들도 하나둘씩 등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풀어진 모습을 보이면 폭행이 이어졌다.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더 가혹한 폭행이 이어졌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정도의 욕을 연이어 들었다. 선배들에게 폭행을 당한 A 씨는 전치 3주의 상해를 입기도 했지만 쉬쉬하는 병원 측의 반응에 크게 실망했다.

몇년 전부터 지적돼 온 의료계 집단따돌림 및 폭력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행위에 집중해야 할 의사들이 이같은 문제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환자의 건강이나 생명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보건사회연구’ 최신호에 게재된 ‘직장 내 집단따돌림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문화와 반 따돌림 대처 효과’ 논문에 따르면 의료계 종사자 10명 중 1명은 집단따돌림을 경험해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 종사자는 집단따돌림 피해를 입었다는 응답률이 9.5%로 교육(4.5%)이나 금융업(3.5%) 등 다른 직종에 비해 2~3배 높았다. 따돌림 유형으로는 동료 의사나 선배 의사들이 업무성과를 좌우하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특정인에 대한 험담이나 좋지 않은 소문을 직장에 퍼뜨린 경우가 많았다.

따돌림 문제는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특히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폭력에 자주 노출된다. 지난해 경찰청 조사결과 의대생의 24.5%가 ‘직접 당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 폭행을 당하는 학생을 본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전공의의 경우 65.8%가 언어적 폭력을 경험했으며 신체적 폭행을 당한 비율도 22%에 달했다. 또 11.5%는 교수와 지도전문의로부터 논문 저술 과정 및 저작권자 결정 과정에서 부당한 억압이나 협박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유계숙 경희대 가족학과 교수는 “의료업 종사자들은 생명을 다루는 고강도 업무 특성상 높은 수준의 집단따돌림을 경험하는 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왕따나 폭력 행위가 횡행하다보니 자신의 기본적인 생활이나 의사결정권이 침해받는 일도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게 결혼이다. 군대보다 엄격한 위계질서 안에서 결혼은 당연히 선배에게 우선 순위가 돌아간다. 한명이라도 빠지면 업무 공백을 나머지 레지던트들이 메꿔야 하기 때문에 1~2년차 레지던트 입장에선 자리를 비우기가 쉽지 않다.

서울 소재 종합병원에서 근무 중인 레지던트 2년차 오모 씨는 “사귄 지 3년이 다 돼 가는 여자친구가 결혼을 보채도 당최 결혼 생각이 없는 선배 레지던트들을 보면 결혼을 결정하기가 어렵다”며 “간호사들처럼 직접적으로 말로 표현하거나 서약서를 쓰지는 않지만 남자 레지던트 사이에서도 결혼은 선배 먼저라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의료계 관계자는 “임신과 출산마저 자기결정권이 없는 스트레스가 지속된다면 의료종사자들의 업무능률이 떨어져 의료서비스의 질적 저하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의사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출산이나 결혼은 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업무강도가 센 여성 전공의의 경우 결혼이나 출산을 모두 기피하는 분위기다.
2010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출산에 따른 여성전공의 수련환경 실태와 개선방안’을 조사한 결과 여성 전공의의 33%가 자녀를 원하지 않았고, 57%는 한 명의 아이만을 갖겠다고 응답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초중반이 대부분인 인턴이나 레지던트의 경우 출산·결혼 기피 경향이 더 심하게 나타났다. 아이를 잉태했다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유산하는 경우도 적잖다.
상당수의 여성 전공의들이 수련 기간 중 임신이나 출산할 경우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시간이 더 줄고, 자신의 교육 스케줄도 엉망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동료 전공의들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것도 임신 및 출산을 꺼리는 주원인 중 하나다.

특히 간호사들의 집단따돌림은 상상을 초월한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태움은 선배 간호사가 후배에게 폭언 및 폭력을 행사하거나 왕따를 만드는 가혹행위다. 단순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의료계 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사실 간호부는 대학병원에서 일종의 자치구로 봐야 한다”며 “그들만의 문화와 자체적인 규율과 제도가 있어 함부로 터치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간호학회 관계자는 “태움 문화의 원인으로 감정노동, 직무스트레스 등 열악한 근로환경을 꼽을 수 있다”며 “악습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병원 노동자를 위한 근로환경과 고용조건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병원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신규 간호사만 끊임없이 배출하는 대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했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병원 내 폭력 관행은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습으로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은 타파해야 한다”며 “의료계 약자인 전공의와 의대생은 국민 건강을 책임질 국가적 인재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는 환자나 보호자에 의한 의료진 폭행 사건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병원 내부에서 발생하는 의사간 폭행 문제에는 적극 나서지 않는다”며 “의사단체의 ‘가재는 게 편’ 식 미온적 대응은 병원 내부 폭력 사건의 근절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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