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하루에 담배를 한갑 반 정도 피웠던 윤모 씨(39)는 2년 전 담뱃값 인상 후 금연을 시도했다. 혼자 힘만으로는 흡연 욕구를 참기 어려워 금연보조제인 니코틴껌을 구입해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씹었다. 턱이 쉴 새 없이 니코틴껌을 씹으면서 당장 금연에는 성공했지만 한달이 지난 현재 니코틴껌에 중독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흡연자가 금연을 위해 금연보조제를 사용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보조제 없이 순수한 의지로 담배를 끊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가 1995∼2006년 건강검진센터를 방문한 뒤 담배를 끊은 308명을 9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보조제를 사용했을 경우 재흡연 위험이 2.9배 더 높았다. 재흡연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담배를 끊는 대신 금연보조제 자체에 중독돼 건강이나 비용 면에서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한다.
금연보조제는 담배 대신 몸에 니코틴을 공급해 흡연량을 줄이거나 금단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니코틴패치, 니코틴껌, 사탕, 부프로피온 서방정, 바레니클린(챔픽스) 경구약물이 등이 있다. 껌은 9종, 트로키제 6종, 패치제는 19종이 유통 중이다. 일반의약품이므로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다.
부작용을 예방하려면 패치는 하루 한 개만 붙이고, 껌·사탕은 한 번에 한 알씩 먹어야 한다. 하지만 사용자 중 일부는 패치 여러 장을 한 번에 붙이거나 동시에 여러 개의 껌·사탕을 먹는 식으로 과다 사용한다. 금연보조제를 오·남용할 경우 두통이나 구역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청소년, 정신질환을 가진 흡연자, 임산부, 심혈관계질환 환자 등은 대체제 사용 전에 의료진 상담을 받는 게 좋다.
니코틴패치는 흡연할 때보다 니코틴이 점진적으로 흡수돼 뇌에서 느리게 작용하고 효과는 오래 지속된다. 담배서 나오는 니코틴처럼 자극적이고 기분 좋은 효과는 일어나지 않지만 체내 니코틴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돼 금단증상을 없앨 수 있다.
국내에서 유통 중인 제품으로는 ‘니코스탑(한독)’ 등이 있으며 흡연량에 따라 용량을 조절해 약 12주 동안 부착한다. 하루 10개비 이상 피우는 사람은 대용량 패치를 2~4주간 붙인 뒤 중간 용량 패치를 2~3주, 낮은 용량을 2~3주 더 부착한다. 10개비 이하를 피우는 사람은 중간 용량으로 치료 가능하다. 구역, 구토, 두통 등 니코틴 과농도 증상이 나타날 경우 낮은 용량으로 바꾸면 된다.
니코틴패치를 사용하면서 담배를 피거나, 과도하게 자주 몸에 붙일 경우 혈중 니코틴 농도가 증가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심혈관질환 등 이상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혈압이 높아지면서 협심증·심근경색 같은 심혈관질환 위험도 커진다.
니코틴은 미량일 경우 각성효과와 함께 말초신경계 자극, 심박수 및 혈압상승 등 미미한 영향을 끼친다. 담배를 피워도 당장 몸에 큰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고용량의 니코틴이 지속적으로 체내에 들어올 경우 치명적인 독극물이 될 수 있다. 외국에서는 니코틴패치를 18개나 몸에 붙여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임신부나 수유부가 니코틴패치를 사용하면 니코틴이 태반을 통과하거나 모유로 분비돼 아기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니코틴은 태반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에 태아에게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발육에 문제가 생긴다. 또 니코틴이 모유에 섞여 분비되면 아기가 니코틴에 중독될 수 있다.
3개월 이내에 심근경색을 경험했거나 심혈관계질환, 뇌혈관성질환이 있는 사람도 사용을 삼간다.
니코틴껌은 흡연 충동이 있을 때 천천히 30분 정도 씹으면 입안 점막을 통해 니코틴이 흡수되는 원리를 이용한다. 1만원~1만5000원 정도로 비싸다 보니 니코틴껌을 사는 데 한 해 150만~200만원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20개피 이하 흡연했던 사람은 한 번에 2㎎, 그 이상 피웠거나 2㎎ 껌으로 실패한 흡연자는 4㎎가 권장된다. 알 수로는 제조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하루 15알 미만이 적당하다. 껌을 과도하게 씹으면 떨림, 정신혼동, 신경반응장애, 턱관절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중독 위험을 줄이려면 껌을 30분에 걸쳐 천천히 씹어야 한다. 너무 빨리 씹으면 니코틴이 뇌에 작용해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보상’이 빨리 이뤄져 중독증상이 나타난다.
사탕이나 과자로 니코틴 금단증상을 이겨내려하다보면 충치나 잇몸질환으로 유탄을 맞는 경우가 적잖다.
보통 니코틴 분해속도가 빠른 사람은 경구용 약, 느리면 패치 사용을 권한다. 금연보조제 경구약은 혈중 도파민 농도를 올려 담배를 피웠을 때와 비슷한 쾌감·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담배를 피워서는 도파민 농도가 높아지지 않게 만들어 흡연 욕구를 떨어뜨린다. 금연보조제 약은 쪼개지 말고 통째로 삼켜야 하지만 일부 사용자는 약값을 아끼기 위해 약 한 알을 쪼개서 여러 번 나눠 먹는다. 금연보조제 약 상당수는 고함량의 성분이 조금씩 흘러나와 몸에 서서히 흡수되게 만든 서방정 형태여서 이럴 경우 약 성분이 한꺼번에 몸에 흡수돼 두통·불면·구토·발작 같은 부작용 위험이 커진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하루 10개 이상의 담배를 피웠거나 니코틴 의존도가 심하거나 과거 여러 번 금연 시도에 실패했다면 금연클리닉 의료진에게 상담 및 약물치료를 받는 게 좋다”며 “6개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보통 금연 성공으로 보지만 흡연에 대한 갈망은 몇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고 ‘한 대쯤이야’라는 생각에 흡연 재발의 위험이 높아 마음을 다잡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달리 금연클리닉의 모 교수는 아예 금연보조제에 의지하지 말고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끊으라고 강조하고 있다. 잦은 사용으로 인한 내성 발현이나 부작용에서 자유롭지 않은 데다가 비용 대비 효과도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게 그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