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여러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이 급증하고 있다. 고령의 노인이 혼자 살 경우 사회경제적 비용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에도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행한 ‘보건복지 이슈&포커스’ 최근호에 실린 ‘노년기 독거 현황과 정책적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독거노인 수는 현재 137만9000명으로 2005년 77만7000명보다 1.8배 늘었다. 2025년엔 현재의 1.6배인 224만8000명, 2035년엔 2.5배인 343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노인에서 독거노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 17.8%에서 2035년에 23.2%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노인 4명 중 1명은 혼자 사는 셈이다.
노인이 혼자 사는 이유는 다양하다. 혼자만의 자유로운 삶을 즐기고 싶거나, 살고 있는 곳을 떠나기 싫거나, 결혼한 자녀가 출가하거나, 자녀가 별거를 원하는 등 자발적 선택이거나 아닐 수도 있다.
2012년 보사연이 실시한 ‘1인 가구 실태와 인식조사’에 따르면 건강하다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홀로 사는 것에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홀몸노인은 외로움과 경제적 빈곤이 겹쳐 여러 건강 문제를 겪는다.
홀몸노인의 24.4% 가량이 심리적 불안감과 외로움, 21.6%는 경제적 불안감을 호소한다. 실제로 홀몸 노인의 절반 가량이 최저생계비 미만의 소득으로 살다보니 결식률이 24%에 이르고 건강도 좋지 않다. 정경희 보사연 인구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건강, 소외, 무위(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등 4중고를 겪는 홀몸노인이 26.3%, 3중고를 경험하는 홀몸노인은 33.6%나 된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노인은 고혈압이나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다. 국내 독거노인의 89.2%가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55.9%는 3개 이상의 복합만성질환에 시달린다. 또 3명 중 1명꼴로 우울감을 느끼며, 31.5%는 인지기능이 떨어져 치매 위험이 높은 상태다.
반대로 가족이나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건강상 문제를 겪을 확률도 적고 기대수명도 높다.
노년기 외로움은 우울증과 직결된다. 2014년 기준 전체 우울증 환자의 약 40%가 60대 이상 노인이었다. 노인은 신체적 질병, 노화, 사별, 대인관계 단절 등 개인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다양한 요인에 자주 노출돼 우울증이 쉽게 생길 수 있다.
심한 우울증은 자살로 이어진다. 국내 노인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81.9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통계청 조사결과 국내 독거노인의 15%가 자살을 생각해 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지나면 자살을 시도하는 독거노인이 급증한다. TV에서 하루종일 가족을 만나 반갑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나를 찾는 사람은 왜 없나, 살아서 뭐하나’라는 생각에 쓸쓸하게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 있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자살시도 위험이 3배 이상 높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인은 자살성향에 빠지면 만성화될 위험이 두 배 가량 증가한다”며 “특히 자살성향이 있는 노인 중 혼자 살거나 술을 먹는 경우 자살시도 위험이 6배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독거 및 빈곤 노인의 증가와 우울증에 대한 소극적 대처가 노인 자살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며 “노인에 대한 경제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일상에서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문화와 여건을 조성하는 게 노인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정경희 연구원은 “소득수준과 건강상태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주거유형의 개발과 고령친화적인 지역사회 환경구축이 필요하다”며 “독거노인 혼자서 식사준비, 청소, 빨래 등의 가사를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식사 및 영양, 가정관리, 수발 등에 관한 다양한 서비스의 개발과 지원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외부활동 부족으로 인한 비타민D 결핍도 독거노인의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의학계에서는 혈중 비타민D 농도가 부족한 남성 노인은 정상 노인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본다.
김창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과 교수에 따르면 혈중 비타민D 농도가 결핍상태(10.0ng/㎖ 미만)인 노인 남성은 우울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정상 상태(30.0ng/㎖ 이상)보다 2.8배 높았다. 비타민D 부족상태(10.0~19.9ng/㎖)일 때에도 우울증상을 보일 확률이 2.5배 증가했다.
김 교수는 “비타민D가 면역기능과 염증반응의 균형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유해 활성산소로부터 뇌신경을 보호하기 때문에 결핍 상태가 되면 우울증상의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노년기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지키려면 활동적인 삶을 유지하는 게 좋다. 노인이 된 뒤에는 체력적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외부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가벼운 운동을 하는 것은 자존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낮 시간 동안 외출해 햇볕을 쬐면 비타민D가 합성돼 우울증 예방에 도움된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면 정신건강 향상에 효과적이다. 단백질은 행복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이는 트립토판이라는 물질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체중 1㎏당 단백질 1~1.5g을 섭취하는 게 적당하다. 콩, 견과류, 닭가슴살 등은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이다.